마오리당 피터 샤플스, 공동대표직 사임, 정계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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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당 피터 샤플스, 공동대표직 사임, 정계 은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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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샤플스가 마오리당 공동대표 사퇴를 선언하면서 마오리당의 미래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이로인해 존 키 총리 역시 다음 총선에서 정부구성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당의 단합을 위해 공동대표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서 18개월의 마오리당 내분이 끝이 났습니다.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오리당을 위해 옳은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아왔는데 앞으로 당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마오리당의 내분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분은 지난 총선 후 테우루레아 플래블이 대표직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샤플스는 플래블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죽을때까지 대표를 계속 할 것입니다."
"저는 마오리당과 마오리당 대표를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이카로아 라피티 보궐선거 결과는 마오리당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결과였습니다.

"저는 압박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당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존 키 총리는 정부구성을 위해 마오리당이 필요하지만 현재 노동당 마오리 의원들의 지지율이 회복하고 있어 마오리당도 의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샤플스가 대표직을 떠나면 노동당이 더 기세를 높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오리당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봅니다."
"마오리당은 이제 국민당을 떠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호네 하라위라는 마오리당이 국민당과 분리해 마나당과 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마오리당과 관계없이 다음 총선에서 국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반을 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연립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오리당은 국민당을 떠날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당이 마오리인들의 생각과 다른 정책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플래블은 2주 후 마오리당 대표로 선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2014년 국회 진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7년간 국회의원을 지낸 샤플스는 국민의 코마투아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샤플스가 마오리당의 하락세를 이끌었다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2004년 피터 샤플스는 해저해안관련법 반대 집회를 이끄는 전사로 등장했습니다. 샤플스는 마오리당을 창당하며 공동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헬렌 클락을 거부하는 과감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장관직을 맡았습니다.

"정부구성원이 되는 것이 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마오리인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와이탕이에서 결국 분란이 일었습니다. "따뜻한 환영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11년 국민당을 혐오하던 호네 하라위라는 마오리당을 떠나 마나당을 창당했습니다.

"국민당 거대 괴물이 우리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오리부 장관이 된 샤플스는 국민당을 통해 마오리인들을 위한 10억 달러의 예산을 획득했다며 설득시켰습니다.
"협상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샤플스는 정계 입문 전부터 마오리인들을 위한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저의 꿈은 이 땅에서 시작된 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71세가 된 샤플스는 내년 은퇴 후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가진 시간들은 제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2005년 2만 명의 당원으로 거대한 목소리를 냈던 마오리당은 현재 내분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샤플스가 원하던 정계 은퇴 방식은 이 같은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피터 샤플스가 마오리당 공동대표 사퇴를
선언하면서 마오리당의 미래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이로인해 존 키 총리 역시 다음 총선에서 정부구성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당의 단합을 위해 공동대표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서 18개월의 마오리당 내분이 끝이 났습니다.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오리당을 위해 옳은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아왔는데 앞으로 당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마오리당의 내분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분은 지난 총선 후 테우루레아 플래블이 대표직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샤플스는 플래블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죽을때까지 대표를 계속 할 것입니다."
"저는 마오리당과 마오리당 대표를 지속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이카로아 라피티 보궐선거 결과는 마오리당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함을 나타내는 결과였습니다.

"저는 압박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당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존 키 총리는 정부구성을 위해 마오리당이 필요하지만 현재 노동당 마오리 의원들의 지지율이 회복하고 있어 마오리당도 의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샤플스가 대표직을 떠나면 노동당이 더 기세를 높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오리당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봅니다."

"마오리당은 이제 국민당을 떠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호네 하라위라는 마오리당이 국민당과 분리해 마나당과 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마오리당과 관계없이 다음 총선에서 국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반을 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으며 연립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마오리당은 국민당을 떠날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당이 마오리인들의 생각과 다른 정책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플래블은 2주 후 마오리당 대표로 선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2014년 국회 진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7년간 국회의원을 지낸 샤플스는 국민의 코마투아로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샤플스가 마오리당의 하락세를 이끌었다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2004년 피터 샤플스는 해저해안관련법 반대 집회를 이끄는 전사로 등장했습니다.

샤플스는 마오리당을 창당하며 공동대표로 국회에 진출했고 헬렌 클락을 거부하는 과감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장관직을 맡았습니다.

"정부구성원이 되는 것이 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부 마오리인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와이탕이에서 결국 분란이 일었습니다.
"따뜻한 환영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11년 국민당을 혐오하던 호네 하라위라는 마오리당을 떠나 마나당을 창당했습니다.

"국민당 거대 괴물이 우리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오리부 장관이 된 샤플스는 국민당을 통해 마오리인들을 위한 10억 달러의 예산을 획득했다며 설득시켰습니다.

"협상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샤플스는 정계 입문 전부터 마오리인들을 위한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저의 꿈은 이 땅에서 시작된 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제 71세가 된 샤플스는 내년 은퇴 후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가진 시간들은 제 삶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난 2005년 2만 명의 당원으로 거대한 목소리를 냈던 마오리당은 현재 내분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샤플스가 원하던 정계 은퇴 방식은 이 같은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공 TVNZ - Wtv/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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