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캔농장 임근규 대표로부터 배워보는 농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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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터뷰] 캔농장 임근규 대표로부터 배워보는 농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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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서쪽에 온실 건축교실 진행 중 

누구라도 조건없이 노하우 공유할 것

 

 


오랜 시간 뉴질랜드 내 한국 야채의 대명사로 알려진 캔농장. 20여년전 한식 밥상을 차려 먹는 게 녹록치 않았던 이곳에서 한국 야채를 공급함으로써 교민들의 고향 밥상을 실현시켜 준 곳이다.

캔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근규 김순희 부부는 지난 2001년 오클랜드로 건너왔다. 어떤 연고도 없는 이곳에 용감하게 정착한 이들은 농사를 짓는 교민들을 찾아가 뉴질랜드식 농사법을 배우고 익혀 농장일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타국에서 농장일을 하는 것이 낯설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은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20년 넘게 수십만 평의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있었기에 뉴질랜드에서의 농사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도전으로 시작된 캔농장

농사엔 일가견이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뉴질랜드 땅에 빠르게 익숙해져 갔다. 한두 해 지나 지인의 도움으로 현지인에게 농장을 빌려 본격적인 농사일에 나섰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당시 한국 야채를 판매하는 경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고, 특히 키위 야채 시장에서 한국 야채를 판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텃세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였지만 임 대표는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한국 야채를 팔아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농장의 작은 창고를 고쳐 가게를 열고 한국 채소의 판로를 개척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분명 한국 채소를 사려는 교민들의 수요가 있을 거라 믿음도 있었다. 그리곤 교민신문에 광고를 내며 한국 야채가게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비록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된 야채 가게였지만 캔농장은 순항했다.   

그렇게 땅을 임대해 농장을 일구기를 몇 차례. 20077, 임 대표 부부는 자신 소유의 땅에서 보다 풍부한 야채를 키워내기 위해 오클랜드 북쪽 데어리플랫(Dairy Flat)에 위치한 땅을 구매했다. 이후 캔농장은 한국 야채의 독보적인 구매처로 온전히 자리잡게 되면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상점의 필요성을 느끼기 되었다.  

 


한국 야채 대명사 캔마트

20097월 알바니에 캔마트란 상호로 캔농장의 직판장이 탄생했다. 캔마트는 당시 교민들에게 싱싱한 한국 야채를 구매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캔마트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국 야채를 그토록 넉넉히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뿐더러 캔마트에 들어서면 갓 수확한 싱싱한 야채들이 가판대에 줄줄이 진열돼 있었고, 외국에서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귀한 종류의 한국 야채조차 그곳에 가면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임 대표 부부만의 농사 노하우를 밑거름 삼아 재배된 농산물들이 소비자들의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었기에 이것은 곧 캔마트의 성공 결과로 돌아왔다.

 

노력의 산물이 농장의 확장으로

사업의 순항으로 임근규 대표는 데어리플랫에 있는 농장을 확장하기 위해 헬렌스빌에 있는 땅을 구매했다. 지금은 열 동이 넘는 큰 온실과 야채 농장이 자리잡고 있지만 구매 당시 황무지와 다름없던 땅이었기에 임 대표는 농사꾼의 기지를 발휘해 새로운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임 대표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도약을 꿈꾸며 데어리플랫에 정착한지 만 5년 만에 헬렌스빌(Helensville)에 있는 땅을 구매했다. 그리곤 또 다시 황무지와 같은 땅을 일구며 밤낮으로 고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임 대표는 한달 내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새 땅을 일구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일을 시작해 해가 지고 나서야 끝낼 정도로 농장일에 매진했다. 하루 종일 힘들고 지칠 법도 했지만 한 동 한 동 온실이 늘어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곤 했다.

 


초보 농사꾼들을 위한 학습의 장 마련 

무엇보다 임 대표가 뉴질랜드에서 농사꾼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를 꼽자면, 농기계를 다루는 기술이다. 농장에서 필요한 기계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심지어 용접까지 가능했기에 농기계가 고장이 나도 전문가의 도움없이 임 대표가 직접 수리해 사용한다.

이처럼 임근규 대표는 모든 일을 직접 부딪쳐 처리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단연 이 분야의 일인자라 말할 수 있다. 때때로 그는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때 그도 초보 농사꾼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자신이 작게나마 도움을 준다면 초보 농사꾼일지라도 실패를 줄이고 성공적인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이런 이유들로 탄생한 것이 온실 건축교실이다.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온실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어보며 일을 배워보는 것이다.  현장에서 일을 체험해보면 온실을 짓는 기술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온실 건축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농사꾼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온실 즉, 하우스를 알아야 한다. 오래된 농사꾼으로부터 직접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온실 건축교실은 오클랜드 서쪽 Kaukapakapa에 위치해 있다. 농장일에 관심이 있고, 온실 짓는 법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조건없이 참여할 수 없다. 임 대표는 이들에게 어떠한 노하우도 내줄 마음이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이상 힘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실 짓는 방법을 공유하고 이를 계기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듯 농사일은 쉽지 않다. 며칠 일을 하다가도 소리없이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일이다. 더구나 농사의 기본조차 모르는 이들이 함부로 덤볐다간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더 많이 나오기에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를 짓고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전과 열정을 성공비결로 꼽는다. 임 대표 역시 같은 의견이다. 도전하지 못하면 성공도 없다는 것이다. 그도 초보 농사꾼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임 대표는 늘 초보의 열정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기에 더욱 더 성공신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학습의 장을 마련하고 공유하길 바라고 있다. 도전과 열정을 더하면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 농사일에 관심이 있다면 도전과 열정을 더해 배신하지 않을 자신만의 땅을 밟아 보길 권유해본다.   

 

 

글 박성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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