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나는 왜 이런 일에 분노하는 걸까요?
철학박사 강경희 강좌 ‘쓸모있는 질문들’
현대사회에서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뉴스 속에 자주 등장한다. 흔히 이를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데, 꼭 뉴스에 나오는 사건이 아니더라도 지하철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길에서 스치듯 부딪힌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이들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화로 인한 다툼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유독 근래에 들어 분노조절장애를 비롯해 우울증, 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정신건강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힐링 강좌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곳 오클랜드에서도 분노, 불안, 사랑, 존엄성 등의 주제를 다룬 '쓸모있는 질문들'이란 공개강좌가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총 4차례에 걸쳐 East Coast Bays Library에서 개최됐다.
'쓸모있는 질문들'은 교민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인 ‘독서클럽21’의 주최로 마련되었다. 한국에서 철학박사이자 철학실천연구소 필리아 대표 강경희 씨를 초청해 진행했고, 강좌의 주제로 1. 나는 왜 이런 일에 분노하는 걸까요? 2. 특별한 걱정도 없는데 문득 문득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사랑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그래도 사랑이 좋은 건가요? 4.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구성됐다. 여러 사정으로 강좌에 참석하지 못한 교민들은 글로나마 마음의 힐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해본다.
강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각각의 주제와 내용 설명해주세요.
4주에 걸쳐 총 4개의 주제로 강연되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왜 이런 일에 분노하는 걸까요?
감정은 단순한 충동이나 생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가치평가 판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나 자신 또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부당하게 심각한 손해를 당했다는 판단과 무시당했다는 판단을 포함하는 감정이며, 이것을 갚아줘야겠다는 복수의 욕구를 동반한다는 것이 서양 고대 철학의 전통적인 분석입니다.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해 강좌에서는 세네카가 권하는 분노 예방 및 치료 방법도 소개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세네카의 대화>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여기에서는 마사 누스바움(M. C. Nussbaum)의 해법을 간략히 말씀드릴게요. 누스바움은 분노에 포함된 가치평가 판단과 복수의 욕구를 분리시키고 복수 대신 미래지향적인 선택을 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복수의 방식은 상대방의 지위를 격하하여 나의 지위를 복구하거나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어 나의 손해를 복구하는 것인데요. 이런 방식 대신 미래에 같은 피해를 겪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연민과 공감으로 연대하여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분노를 한다면 위의 내용과 같은 가치평가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하는 나의 마음을 잘 살펴보면 내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특별한 걱정도 없는데 문득 문득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일에 대한 걱정에서 오는 불안은 두려움에 수반되는 불안정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을 포함하는 감정입니다. 제가 강좌에서 다룬 내용은 어떤 구체적인 문제로 인한 두려움에 따른 불안이 아니라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불안입니다. 강좌에서 이러한 불안과 관련된 철학자들의 분석 네 가지를 말씀드렸는데요.
첫째, 알랭 드 보통의 지위 불안(status anxiety)입니다. 능력주의가 등장한 18세기 이후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를 도덕적 잣대인 선과 악에 연결시키는 인식 변화로 인해 실패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었다는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에 대해 여러 영역의 해법을 제시하는데요. 철학적 해법으로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위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과정을 재구성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불안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불안이라는 근본기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셋째, 사르트르의 실존론적 불안입니다. 실존주의의 제1원리는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게 자유가 있기때문인데요. 자유는 선택과 자신에 대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넷째, 찰스 테일러는 도덕적 지평의 실종과 그로 인한 삶의 의미 상실을 현대인의 불안 요인으로 진단합니다.
이와 같이 철학자들도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불안에 대한 이해를 달리합니다. 우리도 각자 자신의 세계관이 있고 그에 따라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달리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니 세계관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철학하기’는 자신의 세계관을 성찰하며 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3) 사랑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그래도 사랑이 좋은 건가요?
사랑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완전한 것을 향한 갈망입니다. 무엇을 갈망한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자아 속에 결핍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며 이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이 결핍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고통과 불안정을 수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랑이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본질이 아름다움을 직관하는데 있고 누구나 그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이고 능력이며 생명을 낳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능력이 있는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감싸주는 동시에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원리를 스스로 확립한다.(에리히 프롬)』 이렇게 되도록 사랑의 기술을 배워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 생명력의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겠지요.
4)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존엄성(dignity)은 존중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존엄성이 있다는 것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에게 존중받고 자신을 존중하는 세 가지 차원이 존엄한 삶의 형태를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각각은 다음과 같은 질문과 관련됩니다.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남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또한 존엄성에 어울리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정의 자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철학하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상신념을 철학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말 그럴까? 왜 그럴까?”와 같은 질문을 시작으로 하여 근본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기를 성찰하며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숙고하는 것이지요.
강좌에서 얻은 내용을 평소 생활에서 실천하고 싶다면 어떤 방법을 추천하겠습니까?
강좌 내용과 관련하여 말씀드리면, 분노하더라도 복수는 하지 말고, 사랑을 배우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사실 평소 생활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기질과 성격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각자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철학하기’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유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며 교제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합니다. 책(문학과 비문학 모두), 영화, 그림, 음악 등은 모두 작가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삶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텍스트입니다. 텍스트는 해석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런 텍스트를 접하고 해석하여 다시 우리 삶에 적용합니다. 이때 해석의 과정에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교환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텍스트를 오해하거나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아집과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요즘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만큼 분노와 관련된 뉴스들이 흔히 보도되고 있습니다. 평소 분노에 관한 고민이 많은 분들께 조언을 드린다면?
분노와 관련된 범죄는 보복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지주의 관점에서 감정론을 전개하는 마사 누스바움은 응보적 분노를 두려움이 낳은 괴물이라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분노의 배경으로 두려움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무언가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마음 밑바닥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위협이 느껴지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응보적 분노로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평소 분노가 자주 일어나신다면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고,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검토한 후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을 숙고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박사님께선 ‘철학하기’를 통해 좋은 삶을 살아가기를 꿈꾸며 탐구하는 철학실천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좋은 삶’은 달리 말하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복된 운수 또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거나 그러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개념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행복한 삶이란 자기의 고유성을 실현하는 삶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주관적인 심리적 만족만을 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고차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에 어울리는 삶이기도 합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탐구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활패턴이나 어떤 특징이 있다면?
소크라테스는 ‘검토하지 않는 삶(unexamined life)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기를 성찰하며 자기의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기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어떤 그림(picture)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을 개선하고 무엇을 유지할지 결정할 수 있을테니까요. 따라서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행복에 대한 그림’이라고 말합니다.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행복 개념 설정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 개념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한 길이 ‘철학하기’입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며 실제 삶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행복한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 나가는 과정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철학하기’를 ‘일상 신념을 철학적으로 검토하여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조형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탐구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일반화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앞선 철학자들의 통찰력 있는 글을 꾸준히 읽으며 지혜를 배운다는 것, 둘째는 행복에 대한 올바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생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자기성찰과 더불어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한다는 것, 넷째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데 실제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하기’를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로울지 궁금합니다. 생활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니 철학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지혜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가까이하면 어떤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고 현상을 넘어 본질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쉽게 예단하는 경우가 좀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유리컵을 위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 그 형태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 현상이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으면 문제의 본질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고, 따라서 덜 편파적이고 더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힐링을 얻기 위한 추천도서가 있다면.
휴버트 드레이스 & 숀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로부터 허먼멜빌의 <모비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은 물론 영화와 연극을 인용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삶의 의미에 대한 통찰도 배울 수 있고, 인용한 작품들을 읽고 싶은 호기심도 자극하고 그렇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다가 <모비딕>이 너무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거든요.
앞으로도 오클랜드에서 강연 계획이 있는지요.
이번 강좌는 독서클럽21이 주최하여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번 강좌를 진행하면서 참석하신 분들의 질문과 피드백을 통해 후속 강연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요. 저는 뉴질랜드에 1년에 두 차례 정도 방문하는데요. 제가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전달하고 철학적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독서클럽21>은 2021년 3월에 시작한 유료 독서 모임으로 매월 회원들이 합의하여 선정한 책 한 권을 읽고 East Coast Bays Library에 모여 생각을 나누고 있다. 현재 6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가입을 원하면 이메일(bookclub21@bada.co.nz)을 보내면 된다.
글 박성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