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GP 이명종
"도움이 되는, 믿을 수 있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한때 7만불이란 거액의 의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 광고를 내 화제가 됐던 이명종 학생을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당시 그는 유학생 신분으로 오클랜드 의대에 합격했으나 어마어마한 학비로 입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소식을 접한 교민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현지 회사, 학교 등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을 베푼 덕분에 그는 무사히 의대에 입학했고 실력있고 책임감있는 의사가 되겠노라 다짐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던 그가 의대 졸업 후 노스쇼어 병원과 오클랜드 병원, 미들모어 병원, 스타쉽 병원 등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노스쇼어의 한 병원에서 GP로 근무하며 지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건너온 뒤 로즈미니(Rosmini) 컬리지를 졸업하고 오클랜드 의대에 입학하기까지 농장일과 페인트 알바, 피트니스 강사, 과외 등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아왔다. 운동을 좋아하고 사교적이고 긍정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고생한만큼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로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의사 이명종을 시사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다.
뉴질랜드라는 나라로 이민을 온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가족들과 함께 2006년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뉴질랜드로 5주간 영어캠프를 오게 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항상 외국에서 살기를 원하셨고, 저희 교육과 미래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 부모님께서 이민을 결정하셨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뉴질랜드를 발판으로 미국대학 진학까지도 생각했지만 학비가 만만치않아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요?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 사귀는 걸 좋아하는 사교적인 아이였습니다. 매사 긍정적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서의 적응도 빨랐던 것 같습니다. 체육과 물리,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때 럭비팀에서 2년간 선수로 뛰면서 포레스트 밀포드 축구클럽에서도 활동했습니다. 타카푸나 도서관에서 도서관리를 하거나 Womwn's Refuge에서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거나 성당에서도 봉사를 했고 보통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이민을 왔기에 의사소통이나 학업상 어려웠던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게 영어는 항상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매일 공부하고 있습니다. 발음은 그래도 키위처럼 할 수 있지만 이제는 익숙한 단어만 사용하다 보니 가끔은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남자학교에 다니다보니 문법적인 면보다는 발음과 문화적인 차이로 다른 아이들이 놀린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최대한 빨리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책을 소리내서 읽고 뉴질랜드 뉴스와 그 외 방송들을 보면서 발음을 연습했습니다. 그중 다행이었던 것은 남자학교였기에 스포츠를 같이 하면서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있었고 영어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업상 어려웠던 것들은 그저 외우기보단 직접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학습을 추구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의사라는 직업이 장래희망이었는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요'입니다. 한국에 살 때 저는 외국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기에 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막상 외국생활을 해보니 다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직업을 꿈꾼 것이 아니라 막연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제가 의사가 안됐더라면 경찰을 목표로 했을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들을 해야 하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대학에 입학할 때는 13학년(마지막 학년) 성적만 들어가기에 고등학교 때는 사실 마지막 학년에 Biomedical Science나 Health Science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되지만 어차피 과학 위주의 과목들을 공부해야 하기에 고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기초를 쌓는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학만 공부하기보단 자신이 잘하는 과목으로 최대한 좋은 성적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오클랜드 대학 웹사이트를 보면 Health Science에 입학하려면 고등학교 때 문과계열 과목(영어, 통계, 사회 등)을 최소 하나는 들어야하고, Biomedical Science는 과목에 상관없이 충분한 점수만 받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NCEA를 공부했고, 여기선 최대한 Excellence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과목들을 듣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만 공부하기 보다는 자신이 잘하는 과목을 공부하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오클랜드대학, 오타고대학 등 두 군데에 의대가 있습니다. 의대 지원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또는 대학교 졸업 후 총 두번의 지원이 가능합니다. 일단 대학 시스템은 한국 시스템과 비슷하게 매년 해당 과 안에서 8과목을 이수해야하고, 보통 3년간 공부를 하고 통과를 하면 해당 학과를 졸업하게 됩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의대에 지원하기 위해선 Biomedical Science 또는 Health Science 둘 중 하나를 공부해야 합니다.
대학교 졸업 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학부 성적들을 모두 평가하기때문에 3년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성적을 바탕으로 인터뷰 볼 학생들이 선발되고, 이후 UMAT라는 IQ/EQ 테스트 같은 것을 합니다.
의대 졸업 후에는 국공립병원에서 최소 2년간 인턴/House Officer로서 근무해야 합니다. 세달마다 로테이션을 하고 인턴 기간동안 다른 부서들을 돌면서 원하는 부서를 선택할 수도, 원하는 부서로 진로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부서에 지원하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전문의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전문의가 되려면 그 전문학과의 전문의 과정을 들어가기까지가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이는 전문의 과정을 밟는 전공의 포지션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의 과정을 들어가기 전 최소 2~3년을 Non-training 레지던트 과정(전문의 과정에 들어가지 못한 레지던트)을 지내야 하고 매년 전문의 과정 트레이닝에 지원을 하게 됩니다. 만약 전문의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면, 최소 4~5년 간 훈련을 받게 됩니다. 훈련 후 세부 전공을 하게 될 경우 2년간 강사(Fellow)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합산해보면, 의대 졸업 후 빠르면 11~12년 정도 걸려야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도 수많은 연구와 시험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저는 사실 최소 10년 이상을 트레이닝 레지던트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GP(General Practitioner)를 선택했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GP가 되려면 앞서 말씀드렸 듯이 의대 졸업 후 최소 2년의 인턴생활을 병원에서 해야 합니다. 그후 클리닉에서 3년간 훈련해야 GP협회에서 인정해주는 GP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의대 졸업 후 최소 5년이 걸리게 됩니다.
평소 의사로서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의사로서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되자는 생각입니다.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만의 인생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는 게 힘들다보니 자신의 특별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찾을 순 있지만 이 세상에 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받은 유전자와 환경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들도 천차만별일 것이고 저는 그 능력들이 개개인이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선물을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다보면 제가 목표한 것들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능력들이 큰 힘과 자신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제 성적으로 의대에 못들어 갈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뭔가 특출함은 없었지만, 여러 방면에서 경험이 있었고 재능이 있다는 제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자신있게 인터뷰를 봤습니다. 이런 신념은 저를 항상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자신감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의사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때와 반대로 다른 직업을 선택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요?
의사로서 힘든 경우도 있지만 저는 항상 의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환자들의 증상을 고치거나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앞으로도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5년 간 의사생활을 해오면서 다른 직업을 선택할 걸 후회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재밌고 행복했습니다. 혹시라도 의사가 되고픈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의사 생활보다 실제 생활 속에선 저마다 고충들이 있고 희생하고 감내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당시의 꿈과 현실은 달랐나요? 현재 생각하는 이상향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부분을 깨닫게 되면서 저의 꿈이 더욱 구체적으로 변했습니다. 솔직히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GP로 목표를 바꾸었고, 훗날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클리닉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약이나 시술, 수술로 환자의 질환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운동과 식단 등으로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글 박성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