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예술, 나는 총감독…쇼는 계속됩니다”
이탈리아 식당 실패 뒤 한식 뷔페식당으로 재기, “팔도 음식 맛 즐겨 보세요”
‘위대한 밥상.’
오래전 이런 제목을 단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밥상’이라는 단어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한 끼 밥의 의미를 잘 담아냈다.
그 무엇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위대하다. 그 가운데서도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더’ 위대하다. 하루 세끼에 팔십 평생을 곱하면 무려 87,600끼나 된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존경스러워진다.
어렸을 때 꿈은 패션 디자이너
호익(Howick)에서 가장 바쁜 거리, 티 라카우 드라이브(Ti Rakau Dr.)에 있는 한식 뷔페식당 ‘팔도’를 찾았다. 삼십 대 중반의 류정권 실장이 나를 맞았다. 그는 내게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내놓았다. 홀 안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가 내게 보여준 쇼(show)를 이 지면에 소개한다.
정권은 1998년 가족과 함께 오클랜드로 이민 왔다.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 2년 동안 영국 옥스퍼드 유학 경험이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뉴질랜드가 싫었습니다. 영국과 비교해 너무 조용했고, 또 놀 곳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습니다. 아버지가 가죽 의류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쪽에 관심이 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거든요.”
그런 그가 패션 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요식업에 뛰어든 이유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정권은 호익 칼리지(Howick College)를 거쳐 오클랜드대학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뉴린(New Lynn)에 있는 몽골리안 비비큐(BBQ) 식당 겐기스칸(Gengis Khan)에서 일을 했다. 바로 아버지가 투자한 음식점이었다.
“그때(2002년)만 해도 오클랜드에 뷔페 음식점은 ‘발렌타인’밖에 없었습니다. 키위들과 마오리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주방 한 쪽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고기를 써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강하게 키우시려고 기본부터 다지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몽골리안 비비큐 뷔페 ‘겐기스칸’에서 일해
‘겐기스칸.’
이 뷔페 식당은 내게도 익숙하다. 먹성 좋은 세 아들놈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종종 들렀던 곳이다. 겐기스칸은 뉴린을 시작으로 타카푸나(Takapuna), 보타니(Botany), 엡솜(Epsom), 핸더슨(Henderson) 등 오클랜드 다섯 곳에 문을 열었다. 정권은 현재 그 가운데 뉴린은 프랜차이저 형식으로, 보타니는 직영점으로 관리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요식업에 본격적으로 몸은 담은 그는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AUT대학의 인터내셔널 호스피털러티 매니지먼트(International Hospitality Management)과에 들어갔다. 음식점 경영자로 자리를 잡는 게 목적이었다.
겐기스칸이 확실하게 틀을 잡자 그는 모험에 나섰다. 이탈리아 음식점을 연 것이었다.
“원래 화덕 피자를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요리사를 비롯해 스태프를 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저희가 만든 피자가 뉴질랜드 전체 3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푸드 쇼(Food Show)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그때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지금 운영하는 한식 뷔페식당으로 업종 전환을 했습니다.”
정권이 말한 요점은 이렇다.
한국 사람이 주인인 이탈리아 음식점은 외국(뉴질랜드)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예를 들면 태국 음식점의 주인이 인도 사람이라면 아무리 음식 맛이 좋고 서비스가 뛰어나도 신뢰도 면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내(정권)가 시작한 이탈리아 음식점도 그랬을 거라 본다.
올해 5월 말, ‘팔도’ 열어 한국 음식 내놔
정권은 정면 돌파로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올해 5월 말, 바로 그 자리에 한식 뷔페 음식점을 열었다. 이름은 ‘팔도’, 대한민국 팔도(八道)의 대표 음식을 현지 사회에 선보이겠다는 포부였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내가 왜 다른 나라 음식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려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늦기는 했지만, 한국 음식을 연구해 손님들에게 멋지게 내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식탁에 따로 불판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고기 뷔페가 아니라 한국 음식 뷔페 전문점이라는 뜻입니다. 대신 식탁에선 즉석 쇠고기 전골을 드실 수 있습니다.”
정권은 식당 잔일부터 경영까지 15년에 가까운 요식업 경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대학 전공도 식당 경영을 아울러 해서 한두 마디 도움말을 충분히 해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식당 일은 무척 힘듭니다. 주방 안은 덥고, 손님이 주문한 음식은 15분 안으로 나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놀 때,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기에 정신노동도 셉니다. 그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야 식당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당의 경쟁력은 디테일(detail, 섬세함)에서 나온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꼼꼼하게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나 서비스가 과연 손님이 돈을 내고 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늘 의문을 던져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권의 ‘말맛’이 맛있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너무 겸손해서 말을 아꼈다고 믿을 정도였다.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더 쇼 머스트 고우 온’(The show must go on.)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요리는 아트(Art, 예술)’라고 믿습니다. 예술가(요리사)가 만든 멋진 예술품(요리)을 관람객(손님)들에게 선보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홀은 쇼 스테이지(show stage), 주방은 백 스테이지(backstage)가 되겠지요. 저는 쇼의 총 책임을 진 감독(director)입니다. 날마다 제가 펼치는 쇼를 보러 오시는 손님들께 멋진 공연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을 예술로, 식당을 무대 공간으로 비유하는 그의 표현이 부럽다. 동시에 그 음식(공연)에 담았을 정성이 자연스럽게 전해져 왔다.
청소년 라디오 방송 진행…1세대 헌신 고마워
주제를 바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음식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손님에게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정권은 대답에 자신이 있다는 듯 금방 답을 내놓았다.
“주방장의 음식 맛은 식당 주인의 맛에 맞게 나옵니다. 주인이 싫어하는 맛을 내는 주방장은 별로 없습니다. 15년 가깝게 식당 일을 해 오면서 늘 저와 주방장은 맛의 교감에 비중을 두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방장과 달리 손님들은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이 다 다르듯 미각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음식 맛이 맘에 들지 않는 손님이 있다면, 여건이 되는 한 그분만을 위해 따로 음식을 만들어 드리기도 합니다. 모든 손님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제 나름의 원칙입니다.”
현재 팔도 뷔페의 손님은 중국 사람이 90%, 키위가 8%, 한국 사람이 2%다. 중국 사람의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키위들에게 알려지면서 한식의 ‘별맛’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시내(Viaduct Waterfront)에 한식당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나라 음식, 우리 부모와 조상이 대대로 먹어 온 한식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뜻이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내가 꼭 써야 할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말이다. 나름 겸손해서 그랬다고 보는데, 때로는 겸손이 미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
하나, 12월 11일(일) 그는 왕의 잔치(점심)에 참여한다. 통아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들이 그의 쇼를 감상할 사람들이다. 이날 공연에 자리를 함께할 관객들은 모두 1,500여 명에 이른다.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와 팔도의 야심작 고추장 삼겹살이 왕의 식탁에 오른다. 왕족 열두 명에게는 팔도가 준비한 이탈리아 음식이 제공된다. 통아 왕의 입가에 가득 찰 웃음이 벌써 느껴진다.
둘, 정권은 석 달 전부터 청소년을 위한 라디오 방송(‘쉬어가는 방송, 색다른 이야기’)을 재개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Planet FM 104.6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롯이 한인 1.5세와 2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친구 3명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는 2000년대 초반 시작됐다. 정권은 그때 5년 동안 봉사했지만 사업이 바빠 한동안 못 하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끝으로 정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부모님을 비롯해 1세대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회의 땅으로 데리고 와 주신 것도 고맙고,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제가 그 뒤를 잇는 한 사람으로 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졌다. 직접 말로 표현하는 한인 1.5세를 보며,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한식 쇼의 총감독을 맡은 그의 공연이 뉴질랜드라는 무대에서 ‘맛지게’ 펼쳐지길 바란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