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11 Orion Health 한기송 소프트웨어 개발자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11 Orion Health 한기송 소프트웨어 개발자

일요시사 1 1,745


 

자기의 한계를 깨부숴야 인류의 한계가 깨집니다

유학생으로 NZ 6년 만에 직장 잡아프로그램 개발하는 일 즐거워 

 

 웃음이 고왔다. 청년의 첫인상은 그렇게 곱게다가왔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그는 회의가 늦어졌다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예의가 몸에 밴 듯 말투와 행동에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렀다. 다들 퇴근 준비에 바빠 보였다. 수많은 컴퓨터 뒤로 화이트보드를 대신하는 콘크리트 흰 벽에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어 단어와 기호들이 빼꼼히 적혀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말로만 듣던 아이티(IT) 회사의 사무실 분위기를 맛보았다. 집게손가락을 지문인식기에 대자 회의실로 들어가는 문이 스르르 열렸다. 내게는 새 세상이었다.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Information Technology).


 

수능시험 마치고 오클랜드로 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기송.

 그는 올해 스물여섯이다. 뉴질랜드 체류 기간은 8년이 채 안 된다. 한국에서 수능시험을 마치고 삼일 뒤 뉴질랜드로 왔다.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온 것이다.

 “먼저 뉴질랜드에 와 살고 있던 누나의 권유로 오게 됐습니다. 1년을 공부하고 오클랜드대학교 헬스 사이언스(Health Science)에 입학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수업을 열 번도 안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점수는 빵점이었습니다. 의사 가운을 한번 입어보고 싶어 갔는데 제 적성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생들도 오대 헬스 사이언스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유학생 신분에, 그것도 1년이 겨우 지난 상황에서 갔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에 있을 때 공부를 무척 잘했나 보네요. 아이큐가 어떻게 되나요?”

 겉으로 보기에도 똑똑하게 보여 물어본 질문이었다.

 “머리가 좋아 보인다는 말은 종종 들었습니다.(웃음) 제 아이큐는 저도 잘 모릅니다. 아예 검사를 안 했습니다. 만약 하게 되면 거기서 제 능력의 한계를 실감할 것 같아 그랬습니다.”

 대답이 의외였다. 보통 젊은이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이 청년에게 빠져들었다.

 


오대 헬스 사이언스 1년 만에 그만둬

 기송은 헬스 사이언스를 그만두고 상대(Bachelor of Commerce)로 과를 바꿨다. 한 학기를 다니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이 인포시스(Information System)였다. 그러면서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그해 중간, 아예 전공을 인포시스와 컴퓨터 사이언스(Computer Science)로 결정했다. 인포시스와 잘 어울리는 과가 컴싸라고 생각했다.

 “3년 내내 공부만 했습니다. 헬스 사이언스를 공부할 때는 학점이 0이었는데, 인포시스와 컴싸는 8.0을 넘어섰습니다.(GPA 기준, 모든 과목이 평균 A.) 정말로 재미있게 했습니다. 제가 노력한 게 결과물로 나와 더 기뻤습니다.”

 3학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직장이 정해졌다. 처음으로 낸 이력서(CV)였다. 전화 면접, 실기 시험, 영어 시험 등 다섯 번의 검증 끝에 의료 정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다. 혈액 검사나 MRI 결과 같은 의사들이 병원에서 활용하는 프로그램이다.

 “흔히들 IT 계통은 들어갈 곳이 많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사는 꼭 필요한 사람만 뽑는다는 사실입니다. 인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아무나 뽑지는 않습니다. 전체 팀워크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송이 일하는 오리온 헬스(Orion Health) 1993년에 설립, 전 세계 30여 나라에 걸쳐 있다. 의료 정보 프로그램 회사로는 상당히 명망이 높다. 오클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오리온 헬스의 직원은 약 1,200. 그 가운데 오클랜드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은 현재 12 명이다.(인력자원부 1명 포함)

 

2년째 백 엔드 프로그래머로 일해

 기송은 2년째 백 엔드 프로그래머’(Back End Programmer)로 일하고 있다. 쉬운 말로 컴퓨터를 사람에 비교하면 두뇌나 장기를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피부나 얼굴 같은 겉모습을 만드는 곳은 프론트 엔드 프로그래머’<Front End Programmer>라고 한다.) 그는 2년도 채 안 돼 두 단계를 올라갔다.(한 단계는 지금 검토 중) 보통 4~5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이다. 기송은 자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진급이라고 밝혔다. 당당한 말투에서 앞으로 그가 올라설 자리가 더 높을 거라는 게 느껴졌다

 기송이 다니고 있는 오리온 헬스의 장점은 무엇일까?

 “흔히들 IT 회사의 장점을 자유로운 복장, 조절 가능한 출퇴근 시간으로 꼽습니다. 우리 회사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나아가 개인의 발전을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 준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저만 해도 여러 자격증을 따거나, 세미나에 참석할 때 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송은 인터뷰 내내 예의가 바르면서도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알고 답을 해 주었다. 그게 미덥게 다가왔다. 20대 중반의 청년치곤 자기 앞길을 분명히 정하고 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존경합니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 페이팔(Paypal)과 전기 자동차 테슬라, 우주선 스페이스 엑스(Space X)를 개발한 사람입니다. 그가 만약 현실에 안주했다면 더는 발전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제 삶의 본보기로 삼은 이유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깨부숴야 인류의 한계가 깨진다고 믿습니다.”

 

데미안에 나오는 아브락사스좋아해

 그는 어찌 그리도 술술 말을 잘하는 것일까?

 “책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셨나요?”

 기송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아버지가 국문학과 교수시라 자연스럽게 책을 곁에 두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하는 일과 관련된 영어책을 주로 읽고 있지만, 청소년 시절 읽은 책이 제 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가운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아브락사스.’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새는 알을 뚫고 나오기 위해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알을 뚫고 나온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기송은 아브락사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찾는 , 그가 가진 재능인 컴퓨터를 통해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가 된다.

그가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도움말이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언급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나온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60대 이상, 쉽게 말하면 인생을 어느 정도 사신 분들의 설문조사를 정리한 책입니다. 취업 문제와 관련해 이런 말이 나옵니다. ‘20대 중반에 취직을 했다면 30~40 년은 일을 해야 하는데, 과연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라는 충고였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하는 일을 좋아하든지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뜨끔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이 즐겁고, 또 앞으로도 즐거운 일만 할 겁니다.”

 

IT창조’…무생물을 생물로 만들어

기송이 생각하는 IT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일까?

저는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무생물을 생물로 만들어 냅니다. 시스템 하나 만들어 내는 게 사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시스템 안에 생명이 다 들어 있습니다. 모순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창조라는 관점을 품고 앞으로도 나아갈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었다. 몇 초 고민도 없이 나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제 실수가 너무 잦았고, 자만했기에 저 역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1~2년 정도 휴학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평생 갈 길을 조금 쉬어 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10대 말에 유학을 와 20대 중반에 안정적인 직장을 잡은 한기송. 그는 유학생 신분에서 지난 해 영주권 신분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뉴질랜드가 제2의 고국이 된 셈이다. 그는 뉴질랜드 발전을 위해 자기 능력을 백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그와 대화를 나눴다. 기송은 감기 때문에 중간중간 기침을 하면서도 소신껏 자기 얘기를 풀어 놓았다. 예의 바르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그를 보며, 이 얘기는 나만 듣기가 많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그가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야망이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칼리지 학생이나 컴싸 전공자(혹은 예비 학생)들이 그의 말을 유심히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자 한기송과 나눈 대화가 행복했고, 이 글을 써서 널리 알릴 수 있어 더 행복했다. 어느 날보다 더 기분 좋은 날이었다.

_프리랜서 박성기

Comments

Katy Han
잘생겼어요!!!!!! 이승기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