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10 Milford Denture Centre 전세훈 치기공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 10 Milford Denture Centre 전세훈 치기공사

일요시사 0 1,380


 

 

치아와 관련된 종합 병동을 세우는 게 꿈입니다

한국 할아버지·할머니들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방문해도 좋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보통 사람의 다섯 가지 복 가운데 하나가 좋은 치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한평생 사는 동안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 속담은 이제 정말로 옛말이 되어 버렸다. 자연 치아를 대신할 수 있는 인공 치아가 있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나 틀니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아직 틀니를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주위 어르신들을 보며 그 문제도 아주 먼 얘기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천 년 이어 내려온 생로병사의 법칙처럼 언젠가는 나도 틀니를 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슬프지만 그 언젠가는 닥칠 현실이다.


 

밀포드 노스쇼어 병원 앞에 자리 잡아

 오클랜드 노스쇼어 밀포드 셰익스피어 로드(Shakespeare Road)에 한인 1.5세가 운영하는 의치 병원(Milford Denture Centre)이 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가 오가는 노스쇼어 병원 바로 앞이다. 이 병원의 주인은 오랜 친구 사이인 전세훈과 김대헌. 둘 다 삼십 대 중반, 10년이 훌쩍 넘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전세훈을 만났다.

 세훈은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5월 부모를 따라 이민을 왔다. 그때 나이 열일 곱,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을 한두 달 다니다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로 옮겼다. 웨스트 레이크 보이스 하이 스쿨(Westlake Boys High School) Form 6(Year 12)로 들어갔다. 짐작하겠지만 세훈은 온종일 영어로만 하는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한 해를 겨우겨우 버티다 부모의 권유로 남섬 넬슨에 기숙사가 있는 넬슨 칼리지(Nelson College)로 들어갔다.

 “100달러짜리 종이돈에 있는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다닌 학교입니다. 19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만큼 유서가 깊은 학교라는 뜻입니다. 한국 친구가 한두 명도 안 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영어 실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다행히 졸업 무렵에는 영어에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기숙사 근처에 사시는 선생님도 성심성의껏 도와주셨고요. 그때가 가장 열심히 공부한 때였던 것 같습니다.”

 


오타고대학 치기공학과 입학

 세훈은 친구들보다 한 해 늦게 오타고대학 치기공학과(Denture Technology)에 들어갔다. 헬스 사이언스(Health Science) 1년을 거치고 3년 과정의 치기공 공부를 마친 뒤 정식 치기공사가 되어 오클랜드에 있는 키위 회사에 취직했다. 한 해를 다니다 좀 더 차원 있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오타고대학 포스트 그레쥬에이트(Post Graduate Denture Technology) 과정에 등록해 1년을 공부했다. 주로 치과에서 주문받은 것만 하던 단계에서 직접 환자와 만나 틀니 본도 뜨는 단계로까지 올라갔다.

 2010년 세훈은 호주 시드니로 떠났다. 그곳에서 3년을 치기공사로 일 했다. 차를 몰고 환자 집까지 찾아가는 방문 서비스였다. 뉴질랜드하고는 시스템이 달라 처음에는 많이 헷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안정이 됐다.

 “환자가 제가 해준 의치를 끼고 행복해하실 때 저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의치를 안 껴보신 분은 잘 모르시지만 치아가 없으신 분들은 잘 웃지도 않고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의치로 그들을 웃게 해드렸고, 또 자신감을 느끼게 해드렸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세훈은 호주에서 일 할 때 팔십 대 중반 되신 한 할아버지의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기 할아버지뻘 같은 그의 웃음을 보며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호주에서 3년 일하고 NZ 돌아와

 호주에서 보낸 시간이 삼 년쯤 되었을 무렵, 갑작스러운 의료 정책 변경으로 세훈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의료 복지 차원에서 호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주던 치과 관련 지원(8년에 총 4천 달러)이 일부 오지들(호주 사람들)의 남용으로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2014년 세훈은 오클랜드 타카푸나에 있는 한 의치 병원에 취직했다. 거기서 1년 정도 근무하다 지난해  9월 친구 대헌과 함께 현재 자리인 밀포드에 자기 이름으로 된 병원을 열었다.

 “제가 만들어 드린 의치를 환자가 맘에 들어 하실 때 제일 행복합니다. 환자들에게 일종의 새 치아를 만들어 드렸다고 자부하는데, 새 치아라는 차원을 넘어 삶의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만큼 입에 꼭 맞는, 편한 의치를 만들어 드린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훈은 한인 어르신을 위한 애정 어린 도움말도 잊지 않았다.

 “종종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서 의치를 하시고 오시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가격이 좀 더 싸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치는 무엇보다 애프터케어(사후관리, Aftercare)가 중요합니다. 차로 따지면 새 차를 샀다고 평생 한 번도 안 고치고 타고 다닐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의치 역시 적어도 반년에 한 번씩은 손을 봐 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드시면서 잇몸도 줄고,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꼭 저희 병원에서 하지 않더라도 애프터케어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성실하고 손재주도 좋아야

 그가 하는 일은 겉으로 잠깐 보기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좁은 공간에서, 온종일 의치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수고가 필요한지 짐작이 됐다. 어떤 성격이 치기공사에게 잘 어울릴까?

 “무엇보다 손재주가 좋아야 합니다. 진득하니 앉아서 하는 일인 만큼 성실함도 필요하겠지요.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혹시 치기공사가 되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치기공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도전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다른 공부와 달리 치기공은 일종의 작업을 주로 하는 일입니다. 이 점을 유념했으면 합니다.”

 세훈이 상대하는 환자의 대부분은 키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키위 현지인 치기공사보다 아시안 특히 한국 사람의 손재주가 훨씬 좋다는 것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덕분에 이 일은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저 역시 한국 사람인만큼 한국 어르신들을 위해 나름 잘해 드리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털끝만한 부담도 느끼지 마시고 언제든 편한 마음으로 찾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상담하는데 드는 비용은 따로 없습니다. 댁으로 직접 방문도 가능합니다. 또 저희보다 더 적당한 곳이 있으면 소개도 해 드리겠습니다.”

 

선후배 뜻 모아 종합 병동 세우고 싶어

 세훈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서 성실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말은 좀 느렸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중했다. 그 어떤 일이든 믿고 맡겨도 좋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30대 중반의 치기공사로서 그가 지닌 훗날 꿈은 무엇일까?

 “일종의 치아 종합 병동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 건물에 치과 병원, 의치 병원 그 밖에 치아와 관련된 모든 진료를 할 수 있는 곳을 꿈꿉니다. 선후배를 모아 함께 뜻을 이루어 보려고요. 저희 병동에 오시면 치아 문제는 원 스텝 치료로 끝나게 해 드리겠다는 포부입니다.”

 현재 오클랜드에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의치 병원은 모두 여섯 곳이다. 다른 업종에 견주면 많은 숫자는 아니다. 환자 대부분도 키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치기공사 전세훈을 이 연재물의 인물로 소개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저런 이유로 치아 의료 혜택에서 소외당한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꼭 그것이 돈으로 계산되지 않더라도,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즐기는 우리 한국 사람만의 따듯한 정이라고 믿는다.

 

 좋은 치아를 갖고 태어난 것은 다섯 가지 복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복이 아예 없었거나, 혹은 그 복을 이미 잃어버렸다면, 의치 병원에서 그 복을 얻어 즐기면 된다.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게다가 전세훈 같은 든든한 한인 1.5세대 치기공사가 있어 더 귀하게 와 닿는다.

 밀포드 덴처 센터를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먹는 즐거움만큼 더 큰 즐거움이 또 있을까?’ 하는. 내 치아에 문제가 생겨 언제 다시 전세훈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냥 든든한 이 하나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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