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15 ArchiOn 이상민 건축설계사

시사인터뷰


 

한인 사회, 다음 세대를 잇는다15 ArchiOn 이상민 건축설계사

일요시사 0 1,520

공항 설계가 제 평생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지금까지 300건 돌파한국 정서 품은 건물도 한 번쯤 도전할 계획



 

글을 쓰는 사람은 명문을, 음악가는 명곡을 남기고 싶어 한다. 화가는 명화를, 장인은 명품을 꿈꾼다. 죽기 전까지 단 하나라도 그 무엇을 만들어 낸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일명 ‘불후의 명작’.

 명작(名作)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전 인생의 결정체가 결국 ‘명작’이 되는 것이다. 문학가나 예술가 또는 건축가는 작품 하나로 평생 기억이 되는 직업이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만든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 역사에 흔적을 기록하고 간다는 것만큼 명예로운 일도 없다.

 건축설계사 이상민. 그를 만났을 때 ‘명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구보다 이 단어에 어울리는 탑을 쌓고자 노력하는 사람일 거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칼리지 때 노스 하버 농구 대표팀에서 활약

 이상민은 1993 2 20일 낮 12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나이는 고작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왔다. 그는 도착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무 해가 훨씬 지난 그날을 기억하는 게 내게는 좀 신기하게 다가왔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조곤조곤 얘기하는 그의 표정 속에서 철부지 어린 시절이 연상됐다.

 상민은 초등학교(Primary School),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칼리지(College)를 거쳐 2002년 오클랜드대학 건축학과(School of Architecture)에 들어갔다. 그 전에 잠깐 언급하고 싶은 것은 10대 시절, 그가 왕성하게 활동한 운동 관련 얘기다. 그는 칼리지 때 노스 하버(North Harbour) 농구 대표팀 선수(가드)로 뛰었다. 쉽게 말해 엘리트 아마추어 선수라고 보면 된다. 웬만큼 뛰어난 실력이 아니고서는 들어가기 힘든 팀이다. 운동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다. 상민은 그 밖에도 골프와 볼링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한때 프로 골프 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중간에 접었다. 조금은 빈약한(?) 체구 탓이었다.

 한일 월드컵 축구가 열리던 해 상민은 대학에 입학했다.

“월드컵 경기를 보느라 열심히 놀았어요. 당연히 학점도 형편없었지요. 그다음 해 휴학하고 중국으로 떠났어요. 1년간 중국어도 배우고, 배낭여행도 하며 견문을 넓혔어요. 백두산 천지를 갔을 때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그곳에서 태극기를 펼쳐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지요. 그 감격이 놀랄 만큼 컸어요. 대한의 아들이라는 자부심도 가졌고요.

 

<삼국지> 40번이나 읽어…조조 제일 좋아해

 여기서 상민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를 꺼냈다. 바로 <삼국지> 소설.

“초등학교 때부터 칼리지 마지막 학년(Year 13) 때까지 이문열이 쓴 <삼국지>를 모두 합쳐 40번 읽었어요.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은 사람과는 얘기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두세 번밖에 안 읽은 하수(下手)인 나는 판에 박힌 질문부터 꺼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누가 제일 맘에 들던가요?

 상민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조조요. 그는 무척 합리적인 인물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합리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상민은 <삼국지>에 나오는 도시를 다 돌았다. 낙양, 성도, 곤명, 장강 등…. 나중에 중국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보다 상민이 더 많이 중국 여행을 했다고 할 정도였다.

 한 해 놀고, 또 한 해를 ‘더 열심히’ 놀았다. 이제 본격적인 공부를 할 시기였다. 2004~2005년 두 해를 집중해 공부한 뒤, 2006년 파트 타임으로 돌렸다. 풀타임 일은 건축 설계 관련 일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셋, 앞날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뒤 3년을 현장에서 일을 했다.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 일도 했어요. 시청에서 나온 나이 많으신 검사관들이 저를 특히 예뻐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많이 배웠고, 내 사업을 차려도 좋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여기서 잠깐, 나는 내가 늘 하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후배들에게 무슨 도움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상민은 되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럼요”라고 했다.

“칼리지 학생이 건축설계사 꿈을 꾸고 있다면 말리고 싶어요. 공부에 투자한 시간에 견줘 가장 돈을 적게 버는 직업이거든요. 건축학과 대학생이라면 돈보다 작품을 꿈꾸며 일을 하라고 하고 싶어요. 저는 명예를 더 중요하게 보거든요.

 

2009년 스물여섯 나이에 아키온 창립

 2009 1, 상민은 ‘아키온’(ArchiOn)이라는 건축설계사 사무실을 차렸다. 하버브리지를 건너다가 ‘건축(Architecture)을 단단하게 쌓겠다(On)’는 뜻의 상호가 떠올랐다. 번듯한 회사는 아니었다. 집 한구석에서 하는 일인(一人) 건축설계사 사무실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8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 그의 홈 오피스에는 상민을 포함해 건축설계사 일곱 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서른 중반도 안돼 틀을 잡았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상민이 해온 건축 설계는 300건이 넘는다. 초창기에는 단독 주택 설계나 개보수 설계 혹은 상가 관련 일을 많이 해왔다. 최근 들어 경력이 늘면서 맡은 일도 굵직한 일로 변했다. 50~150세대 아파트 설계만 벌써 여덟 번째다.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입소문이 나면서 특별히 광고를 하지 않아도 손님이 찾아와요. 흔히들 건축설계사 사이에 이런 말이 있어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건축가는 건물을 남긴다’는 말이요. 오랫동안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 내려고 해요.

 건축설계사로 그가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공항이요.

 상민은 내가 질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입술에서 ‘공항’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공항을 꼭 한번 설계해보고 싶어요. 그것만 하면 더는 안 해도 된다는 마음마저 있어요. 제 마지막 꿈이니까요. 세계 어딘가에 제 이름으로 된 공항 하나가 생기리라 믿어요.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쌓다 보면 그 언젠가 꿈을 이룰 날이 올 거예요.

 

열정 떨어지는 때가 바로 ‘정년’이다

 상민의 말은 이어진다.

“건축설계사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에요. 정년은 바로 열정이 떨어질 때죠. 저는 정년의 위기가 없었어요. 20대 때는 정말로 죽기 살기로 일만 해 왔고, 지금은 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제가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경력이 10년을 넘은 만큼 그것에 맞게 포부를 가지려고 해요.

 상민은 그러면서 야심 차게 또 다른 포부를 밝혔다.

“제가 은퇴하기 전 뉴질랜드에서 ‘올해의 최고 건축가상’(Best Building of the Year) 같은 것을 받아보고 싶어요. 아직 서른 번 정도는 더 기회가 있으니까 꼭 이루어지라 생각해요.

 그는 목소리가 차분했다. 내 말에 추임새를 잘 넣었고, 싱글싱글 웃는 모습이 정겨웠다. 나는 그게 편하게 다가왔다. 꼭 손님에게도 그렇게 대할 것 같았다.

“집이나 건물을 짓겠다는 예비 손님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상민은 이렇게 답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건물이나 집을 많이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진도 찍어 두시면 좋고요.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최소한 수십 채의 집을 구경해야 해요. 더 봐도 되고요. 그래야 그중 손님이 원하는 장점만 모아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요.

 

신조는 ‘약간 손해 보듯 살자’

 한인 1.5세로서 한국 정서가 묻어 있는 건물을 설계할 계획도 있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한국을 잘 몰라요. 하도 어릴 때 와서 이제는 한국이 좀 가물가물해요. 그래도 제가 한국 사람의 피를 물려받은 만큼 그 언젠가는 한국풍의 건물을 꼭 지을 거에요. 그렇지만 결코 흉내만 내는 일은 안 할 거예요. 때가 되면 한국에 몇 달 배낭여행을 다녀오려고 해요. 그리고나면 꿈도 이룰 수 있겠죠.

 상민의 신조는 ‘약간 손해 보듯 살자’다. 그게 결국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른다. 그는 인터뷰 끝 무렵 내게 조금은 뜬금없는 얘기를 건넸다.

“저는 답이 없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분명코 답은 있죠. 답이 없는 일을 하면서 답을 찾고 있는 게 즐거워요.

 <삼국지> 40번이나 읽은 상민은 내게 그 말을 던지며 살짝 웃음을 건넸다. ‘그 웃음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수(下手)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 답은 독자의 몫이다.

 

건축설계사 이상민.

 그의 취미는 여행이다. 그것도 아주 단출한 배낭여행. 올해 말 그는 아내와 함께 아이슬란드로 떠난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다. 그가 그 황홀한 빛에서 어떤 영감을 얻을지 내심 기대가 크다.

 그의 사무실은 알바니 한적한 주택가에 한 집을 차지하고 있다. 밖에는 간판도 없다. 안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머리에서, 그의 손끝에서 ‘불후의 명작’이 설계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_프리랜서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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