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원국악원(KCS), 스무 살 어른이 되다

시사인터뷰


 

국원국악원(KCS), 스무 살 어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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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흰 구름의 나라(아오테아로아),

5천 년 이어 온 우리 가락과 우리 흥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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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20년을 한국 문화 알림꾼으로 활동해 온 백효순 원장한 사회에 문화가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얼과 혼이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사진 레이휴 스튜디오)


 한국 문화, 그 가운데서도 수천 년 이어 내려온 전통문화를 말과 풍토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은 힘들어도, 아주 많이 힘든 일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하기 어려운 그 일을, 스무 해 넘게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해온 민간단체가 있다. 국원국악원(Korean Culture Society, 이하 KCS)이 바로 그곳이다.

 1990년대 초중반 뉴질랜드에 한인들의 이민 붐이 거세게 불었다. 오클랜드와 크라이스트처치, 해밀턴 등 뉴질랜드 주요 도시에 하루가 다르게 한인 숫자가 늘어갔다. 그중 오클랜드에 백효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그의 이민짐에는 남들과는 좀 다르게 독특한짐이 몇 개 들어 있었다. 가야금과 징, 장구 등 한국 전통 악기였다.

 

애국심 차원에서 전통음악 보급 나서

 백효순 씨는 이민짐을 풀자마자 우리 전통음악 보급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키위들은 대한민국이 지구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국에 대해 무지했다. 한국 문화, 그것도 전통문화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다부진 결심을 했다. 애국심 차원에서라도 한국의 전통음악을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였다. 백효순 씨는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0여 년을 간호장교로 근무했다. 한인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옛날 직업도 직업이지만 가야금 연주자는 한인 사회에서 더 눈에 띄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가야금에 빠졌어요. 얼마나 독하게 연습을 했는지 저를 가르친 선생님이 웃으시며 효순이 너는 끝까지 하긋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 이민 오기 전까지 삼십 년이 넘게 가야금은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충주 시립 국악연주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긍지를 느꼈어요. 이민 짐에 가야금을 가장 먼저 실을 정도로 애정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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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앞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 가르쳐

 백효순 씨는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키위 사회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냈다. 한국의 전통문화도 중국 문화를 넘어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만방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자기 돈과 귀한 시간을 들여 한국 전통음악의 민간 홍보 대사 역할을 자임했다.

 오클랜드 노스쇼어 글렌필드에 있는 한 차고 앞에서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가야금을 가르쳤다. 연습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실력이 늘어 백효순 씨와 함께 연주에 나섰다. 자연스럽게 단원들도 늘었다. 키위 사회에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가, 부채춤의 형언할 수 없는 화려함이 퍼져 나갔다.  

 2년 뒤인 1996, 백효순 씨는 코리언 트래디셔널 뮤직 앤 컬쳐’(Korean Traditional Music & Culture, KTMC)로 이름을 정하고 원장을 맡았다. 

 그 뒤 KTMC라는 이름을 내걸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어온 아름다운 발자취는 뉴질랜드 전국 방방곡곡에서 빛났다. 한국을, 한국 문화를, 한국의 전통 문화를 키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전통 공연을 볼 때마다 원더풀”, “뷰티풀”, “러블리를 연발하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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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학교·도서관 등 어디든 달려가

 KTMC한국 전통음악의 전도사였다. 현지 사회가 주최한 여러 문화 행사에 단골로 참여했다. 뉴질랜드 정부나 시()가 주도한 행사는 물론 초중등학교, 도서관, 각종 커뮤니티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 전통미를 맘껏 뽐냈다.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지역이나 요일과 상관없이 동참했지요. 지금까지 크고 작은 행사에 800회 가깝게 참여한 것 같아요. 저도 이제 60대 중반을 넘어 섰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저 저의 작은 몸짓이 키위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2006년 뉴플리머스시()가 주최한 행사에 30여 개 다민족 팀이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KTMC 1위의 영예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양로원을 찾아 위로 공연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가야금, 아쟁, 한복 같은 것을 선보여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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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에 전통문화 강좌 시간 마련해

 KTMC는 한인 사회를 위해서도 여러 방면에 이바지를 했다. 먼저 1997년부터 시작한 한국학교(북부, 서부, 동부)를 주축으로 한 전통문화 보급을 꼽을 수 있다. 이 단체는 자라나는 세대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칼리지 학생과 10대 청소년·대학생들에게도 가야금 등 여러 전통 악기를 가르쳤다. 한 주 두세 시간씩 지도해 조금은 미숙하더라도 전통 악기 연주의 흐름을 이을 수 있도록 했다.

 KTMC는 한인들의 주요 행사가 있는 곳에는 늘 함께 있었다. ‘한인의 날’, ‘광복절 행사같은 한인 사회와 두고 온 고국을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소소한 행사에도 기쁨으로 참여했다. 

 KTMC의 업적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국악 관련 공연이 펼쳐질 때, 가장 먼저 접촉한 곳이 바로KTMC였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씨의 공연,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 그 밖의 숱한 공연이 KTMC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전통문화의 가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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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가야금을 만나 반세기를 넘게 한국 전통문화와 함께 살고 있는 백효순 원장.

(가운데는 헬렌 클라크 전 총리)


전통문화를 이으려고 애쓴사람으로 기억되길

 KTMC의 역사는 뉴질랜드 안의 한국 전통문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민 초창기, KTMC와 유사한 성격의 단체가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사라져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유일한 단체로 남아 있다.

 백효순 원장은 그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좀 거창하게 말하면 애국심으로 버텼어요. 제가 군인(간호 장교) 출신인 만큼 군인 정신으로 지켜왔다고 해도 되고요. 한국의 전통문화가 뉴질랜드 땅에 계속 이어져 가도록 하겠다는 마음은 제가 뉴질랜드에 살면서 쭉 가지고 온 신념이에요. 훗날 뉴질랜드 한인 역사에 가야금에 미친’, ‘전통문화를 이으려고 애쓴사람으로 기억되면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거예요. 제가 지금도 가야금하면 자다가도 눈을 뜨거든요.”

 2009 KTMC코리언 컬쳐 소사이어티’(Korean Culture Society)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한국 문화에 방점을 찍었다. 전통문화와 함께 한국 문화 전반을 한인 사회와 키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때에 맞춰 뉴질랜드 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 보조금도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울러 재외동포재단에서도 작은 힘을 더해 주고 있다. 명실공히 한국 문화의 기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09 KCS로 이름 바꿔 활동 영역 다양화

 ‘한국문화원이라는 이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KCS는 최근 들어 활동 영역을 다양화했다. 기존의 전통문화 공연과 전수 외에도 태권도, 붓글씨 같은 한인들이 비교적 편히 접근할 수 있는 분야까지 확대했다. 모름지기 한국 문화의 둥지로 그 소임을 다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후계자 양성이 급하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전통문화나 악기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백효순 원장 한 개인이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인회와 한인 사회 등 모든 한인이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전통문화는 우리 대()에서 명맥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백효순 원장은 그동안 이 단체를 운영하면서 받은 숱한 기관과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단체를 묵묵히 지켜준 성정미 선생과 새 힘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몇 해 전 동참한 양철권 회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 밖에도 시간과 돈을 써가며 각종 공연에 자리를 함께 한 단원들과 어린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1, 2 년도 아니고, 5년이나 10년도 아닌 무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20년을 한국 문화 알림꾼으로 활동해 온 KCS는 한인 사회 문화계의 보석 같은 존재다. 한 사회에 문화가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얼과 혼이 그 안에 다 있기 때문이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18-01-09 09:33:53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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