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 따라 방 따라 금배지 운명 ‘오락가락’?

한국뉴스

층 따라 방 따라 금배지 운명 ‘오락가락’?

일요시사 0 6220 0 0

여의도 의원회관 별별 풍수 기행 

 
이쪽 방은 ‘다선 의원’ 저쪽 방 가면 ‘중도 낙마’
4층은 ‘死층’, 7층은 로열층…당선·낙선방 ‘꼭꼭 숨어라’

재벌가의 집터나 사옥 등 풍수지리가들에게 ‘명당’이라 불리는 곳이 정치권에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기가 세기로 남부럽지 않은 299명이 모여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바로 그 곳. 그중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의원회관은 각 방마다 선거에서 당선이 잘 되는 방과 낙선을 하게 되는 방 등이 따로 있다는 게 풍수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를 두고 대부분은 “무슨 시대착오적 발상이냐”며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지만 의원회관을 거쳐 간 이들의 사연은 선뜻 내젓는 손길을 막는다.

국회 의원회관이 지어진지 20년을 넘기면서 각 방마다 쌓인 사연도 하나둘 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연은 선거에서 당선이 잘 되게 해준다는 일명, ‘명당’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국회를 조용히 떠돌고 있다.

의원회관 건물 중 국회의원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층은 1층부터 8층까지다. 이중 1층은 로비가 있어 민원인들이 자주 오가는 만큼 소회의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의원 사무실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의원 사무실이 있는 2층부터 8층 중 의원들의 선호도가 높은 층수는 7층이다. 국회의사당 본관과 잔디광장은 물론 한강까지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층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고층인 8층이 복사열까지 막아주니 쾌적할 수밖에 없다는 게 7층에 자리 잡고 있는 의원실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방마다 쌓인 사연
‘명당설’에 살 보태

8층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8층은 전망은 좋지만 여름에는 복사열 때문에 온도가 높아져 의원들이 기피하는 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8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의원들끼리 ‘의원회관 최고위층 모임’이라는 친목모임을 결성, “잘 몰라서 그렇지 옥상 단열이 잘 돼 있어 사무실 여건이 좋다”며 예찬론을 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실 근무 여건은 ‘명당’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7층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거물급 인사들을 다수 배출하며 명당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7층에 명당 팻말을 걸어줬던 한명숙 전 총리와 신기남·천영세·노회찬·심상정 전 의원 등 굵직한 인사들이 다수 낙마하면서 ‘명당’ 팻말을 내려야 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도 강삼재·김상현·이부영·강창희·서청원 등 중진 의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바람에 정몽준 전 대표만 자리를 지켰을 정도다.

18대 국회 들어 한나라당 정몽준(720호), 정두언(728호)·이혜훈(730호)·원희룡(726호)·박진(725호)·홍사덕(736호) 의원과 민주당 원혜영(722호)·박상천(721호)·이강래(719호) 의원, 자유선진당 권선택(717호) 의원이 입주, 체면을 살렸다.

17대 국회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3층이 주목받았다. 임태희(301호)·주호영(313호)·김문수(316호)·이방호(333호)·이재오(338호)·전재희(339호) 의원 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임태희 의원은 대통령실장, 김문수 의원은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은 특임장관을 맡고 있고 주호영 의원은 특임장관, 전재희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현 정권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다.

또한 문희상 의원(323호)은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조순형 의원(324호)도 18대 국회 최다선인 7선 의원으로 30년 가까운 의정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5층이 ‘명당’으로 주목받고 있다. 5층은 특별히 명당으로 꼽히던 곳은 아니지만 재보선을 거치면서 여야 주요 인사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명당’의 조건을 채워나가고 있다.

원래 5층의 터줏대감들은 대부분 여성 의원들이었다. 풍수적으로 여성 의원에게 좋다는 말 때문인지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545호)를 비롯해 박순자(532호)·나경원(515호) 의원이, 민주당에서는 추미애(528호)·신낙균(529호)·박영선(504) 의원 등이 5층을 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나경원 의원은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돼 화제를 모으는 등 이력도 범상치 않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5층은 음기가 강해 여성 의원들의 기가 살아나는 것을 돕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 여성 의원실 관계자는 “원래 다른 층을 신청하려했으나 풍수지리를 잘 아는 분이 ‘의원회관 5층이 여성에게 기가 좋다’고 해서 자리를 잡게 됐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의원실측은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부터 쭉 545호를 사용하고 있다”며 “당시 1996년 총선에 당선됐다가 중간에 사퇴한 김석원 쌍용그룹 전 회장이 쓰던 방이 비어 있어서 배정받은 것”이라고 풍수지리적 시각과는 거리를 뒀다.

재보선으로 새롭게 둥지를 트는 이들이 나타나고 전당대회·원내대표 경선 등을 통해 여야 지도부가 바뀌면서 5층은 또 한번 시선을 모았다. 지난해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동영 의원이 522호에 둥지를 틀었고 지난 7월 재보선 후에는 이재오 의원이 519호에 자리를 잡았던 것.

18대 중반 지나며 5층으로 ‘쏠림현상’

또한 지난 전당대회를 통해 한나라당의 당권을 쥔 안상수 대표(507호)도 5층 사무실을 쓰고 있다.

5층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야 의원들의 처지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 흥미를 모으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우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된 정진석 의원(519호)과 특임장관으로 활약 중인 이재오 의원, 나경원 최고위원 등 당의 주류가 대부분인 데다 박근혜 전 대표는 비주류라고 해도 차기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반면 민주당은 당내 비주류로 손꼽히는 추미애·정동영·천정배(512호) 의원이 모두 5층에 입주해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정가 한 인사는 “민주당 10월 전당대회가 변수”라며 “전당대회에 도전장을 던졌던 이 중 추미애 의원은 컷오프를 넘지 못했지만 정동영·천정배 의원은 본선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정동영·천정배 의원이 모두 차기 당지도부에 합류하면 5층은 여야 지도부가 모두 자리하고 있는 ‘명당’으로 자리매김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명당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배출한 방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328호실은 15대부터 김근태 의원이 물려받아 내리 3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5대 때 사용했던 638호실은 16대 때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이 잠깐 사용한 뒤 17대 때 같은 당 서상기 의원이 넘겨받았다. 이 방 역시 최근 4대에 걸쳐 한 번도 낙선자를 배출하지 않았다.

15대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사용했던 방은 312호실로 16대 때부터는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이 사용하고 있다. 이 덕분인지 정 의원은 내리 3번이나 당선됐다. 최근 20년간 ‘당선운’만 있었던 셈이다.

‘다선 국회의원’의 방도 다음 총선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6선)은 초선 때부터 지금까지 4·19혁명을 뜻하는 419호를 사용하고 있고, 정몽준 의원(6선)도 15대 때부터 12년째 720호실을 쓰고 있다. 문희상(323), 정세균(610) 의원 측도 “자리가 좋아서인지 계속 당선되는 것 같아 계속 방을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원내대표, 비상대책위 대표가 된 박지원 원내대표는 6·15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살려 615호방을 쓰고 있다.

의원들이 선호하는 층이 있으면 기피하는 층도 있다. 사(死)자를 의미한다고 해서 내켜하지 않는 4층이 그 주인공이다.

실제 15대 국회 때 4층 사무실을 이용하던 김복동·남평우·제정구 의원이 임기 중에 작고하고 노승우 의원은 지독한 허리병으로 임기 내내 고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이 기피하는 층이 됐다.

4층은 기피층?
낙마 괴담 떠돌아

428호와 444호는 한때 ‘낙선방’이라고 불렸다. 428호는 민주당 인사들과 인연이 깊다. 17대 국회에서 이 방을 사용했던 한화갑 전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홍업 전 의원이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이 방을 물려받았지만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444호에 대한 이야기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관련돼 있다. 16대 국회 때는 김낙기 의원이, 17대 국회에선 정종복 의원이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것. 정종복 의원은 지난해 4월 재보선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입주한 의원마다 중도에 짐을 싸서 나간다는 괴담이 붙은 방도 있다. 16대 국회 때 643호에 둥지를 틀었던 박주선 의원은 임기 5개월을 앞두고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방을 나서야 했다. 17대 국회에선 이철우 의원이, 18대 국회에서는 홍장표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방을 비웠다.

하지만 1989년에 지어져 20여 년동안 되풀이돼온 의원회관의 징크스도 18대 국회로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제2의원회관 신축과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라 19대 국회가 출범하게 되면 새로운 방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장미란 (pressmr@ilyosisa.co.kr) 기자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