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군 의문사' 애끊는 눈물
"심장에 소금 뿌린 고통 속에 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그들이 물었다. 왜 10년도 지난 일에 아직도 미련을 두느냐고. 그러나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한 순간 유족의 시간은 멈췄다. 그들은 아들이 죽던 날의 끔찍한 기억을 수백번 아니 수천번이고 복기하면서 무관심이라는 또 다른 벽과 싸우고 있다.
여름의 찌는 듯한 햇살이 머리를 내리쬐던 지난 6일. 경기도 화성에서 만난 고 강태기 상병의 유족은 담담히 기자를 맞이했다.
장례 못한
유족의 고통
벌써 10년도 지난 일. 하지만 유족의 쓰라린 상처는 그들의 가슴에 10년째 응어리져있었다.
"내 심장을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린데도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강 상병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강 상병은 지난 2003년 1월12일 육군50사단 123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중 의문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헌병대 정모 중사 등은 강 상병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자살의 원인은 애인의 변심, 그러나 강 상병에게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헌병대는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으로 자살 원인을 수정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0년째 평행선을 긋고 있다.
유족 측은 당국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당시 주번 사령,사관,하사의 보고 내용이 하나도 없던 것은 물론 아들의 죽음을 우리가 확인하자 '빨리 부검을 해야 한다'고 말한 군 관계자의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부검에 입회한 외삼촌의 진술서 등 관련 자료를 보면 유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가질만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강 상병은 목을 매달아 숨진 것으로 돼있는데 외삼촌은 "자살이라면 목 턱부터 귀 밑으로 밧줄 자국이 있어야 하지만 뒷머리(뒷 목덜미)에 밧줄 자국이 선명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헌병대가 자살의 증거로 제시한 나일론 밧줄 역시 매듭이 엉성해 누군가 사고 후 자살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외삼촌은 "부검 당시 위에서 확인된 내용물이 사건 당일 부대가 제공한 점심식사 메뉴와 달랐다"며 사망시간과 사건 당일 고인의 동선 일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제3의 의료기관을 통해 감정한 강 상병의 경추 상태는 그가 자살자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정형외과 등 복수 의료기관이 X-RAY를 통해 판독한 고인의 목에서는 '1번 경추 골절' 및 '황인대' 파열이 발견됐다.
감정서에 따르면 목을 매 자살할 시 (심한) 추락으로 인한 견인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골절 또는 황인대 파열의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 조건 하에 골절이 발생한다고 하여도 스스로 목을 매면 '1번 경추'가 아닌 '2번 경추'가 골절되므로 고인은 자살 후의 일반적인 외상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진단됐다.
오히려 담당의는 "(고인에게) 외부로부터의 급작스런 충격이 가해져 두부(머리)에 황인대 파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황인대 파열은 사고 후 2~3시간 내외의 신속한 수술만 있어도 생존할 수 있는 증상으로 의사는 설명했다.
아울러 기자가 확인한 돌연사 혹은 타살의 증거로는 ▲생전 고인의 유족, 선후임, 지휘관 등 모두가 어떠한 자살 징후나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점 ▲고인과 함께 군생활을 했던 한 병사가 "그곳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며 "시체를 옮긴 뒤 자살로 조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유일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짝사랑하는 여자의 변심'을 조사기관인 헌병대 스스로가 오판했다고 인정한 점 ▲사체가 의사(縊死)했을 시 동반되는 배변이나 사정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헌병대는 "타살 가능성 및 안전사고의 가능성이 없음으로 자살로 수사를 종결한다"며 유족 측이 제기한 의혹을 일축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살 경위는) 태기(고인)와 신만이 알고 있다"는 답변으로 뭉뚱그렸다.
타살과 자살
명예가 달렸다
강 상병의 시신은 지금 국군수도 병원 영안실에 보관돼 있다. 정식 명칭은 영안실이지만, 실은 차가운 냉동고다. 이 어두컴컴한 냉동고에서 강 상병의 육신은 오늘도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강 상병처럼 화장도 못한 채 냉동고에 보관돼 있는 시신은 모두 23구. 그마저도 진실을 밝힌다며 부검을 해 온전히 수습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모두 146기의 유골이 매장을 거부한 채 이승을 떠돌고 있다.
강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올해도 네 번을 갔다 왔는데 아직도 그곳에 가면 숨부터 막히더라"며 "자식의 부검 사진을 받아든 내가 어떻게 맨 정신으로 10년을 버텨왔는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 상병 사건처럼 과거로부터 군내 사망사고가 자살로 둔갑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군 의문사 의혹이 점화된 도화선이자 산 역사로 불리는 '김훈 중위 사망사건'도 어느덧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15년을 맞았다.
사고사를 자살로?…10년째 뒷짐 진 국방부
사인 두고 유가족 제기한 의문점 수두룩
냉동고 보관 시신 23구…매장도 못한 유골 146기
그동안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입법,사법,행정부의 판단에도 끝내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8월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볼 수 없음으로 순직처리를 해야한다"는 권고를 냈다.
하지만 국방부는 "자체 보강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뒤 이면으로는 김 중위의 자살 증거를 모으는 등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조사본부가 작성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재조사 추진경과'에 따르면 군은 "(김훈 중위의)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에만 조사 초점을 맞췄다. 또 정신과전문의, 심리학자를 관련 전문가로 섭외, 사실상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난 1998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 중위가 타살됐다"는 의미 있는 증거들을 모두 무시했다. 그가 사망한 1998년 2월24일, 국방부가 수사 시작도 전에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브리핑한 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이 아무 의심도 없이 땅 속에 묻혔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구슬픈 비가 내리던 7월의 주말. 서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산더미 같은 자료를 일일이 설명하며, 국방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앞서 복수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된 것처럼 김 중위는 누군가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인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중장은 "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고인에 대한 순직처리와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일부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김 전 중장은 아들의 순직처리와 관련한 국방부의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3월 "김 중위를 순직처리 하겠다"고 브리핑했다가 돌연 말을 바꿨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김 전 중장에게 돌아갔다.
김 전 중장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엄청 많은 사람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순직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국방부가 또다시 유족에게 상처를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은 애간장
국방부는 모르쇠
지난 7월5일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주관한 '군에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승장래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이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승 전 본부장은 "법률 전문가들도 (김 중위의) 자살을 인정했다"며 김 중위의 순직처리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승 전 본부장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순직을 군내에서 가장 끈질기게 반대하는 세력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김 중위 사망 당시 JSA 경비중대장으로 재직한 김익현 대위는 ▲자신의 지휘 부대가 북한과 긴밀히 내통했고 ▲최전방에서 부하가 사망했으며 ▲고인이 된 부하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음에도 일체의 징벌 없이 최근 대령까지 진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과거 김 대위(대령)와 함께 JSA에서 근무했던 모 병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김 대위는 음주가 금지된 판문점에서 만취 상태로 목격되는 등 지휘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훈 사건'과 함께 김 대위는 오히려 탄탄대로를 걸었다. 군 의문사 책임자가 오히려 더 인정받고 있는 꼴이다.
김 전 중장은 "4개 국가기관은 물론 대한민국의 99%가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 오직 국방부 일부 책임자들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제 다시는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살이냐 아니면 오발이냐'고 묻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훈 중위 순직 15년째 모르쇠
책임자 '떵떵' 유가족 '피눈물'
기자가 확인한 '김훈 중위 부하 병사 진술서'에 따르면 사건 직후 병사들의 증언이 자살과 타살로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진술을 자살로 조율하는 건 수사관들. 한 병사는 군에서 원하는 진술을 해주는 대가로 용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적인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폭언이나 폭력은 기본이고, 동료 부대원들을 포섭해 따돌리기까지 하니 "정말 죽고 싶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한 번 고민이 시작되면 결국 다른 동료들의 진술에 맞춰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앞서 언급한 '강 상병 사건' 역시 핵심 증인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며 침묵을 선택해 사건이 장기화된 케이스다.
그리고 이 같은 비극의 궁극적인 원인은 군이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채 사건의 초점을 자살로 몰고 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의 경우 처음부터 군 당국이 타살을 의심하고, 사건을 면밀히 수사했었더라면 유족이 피눈물을 흘린 시간은 진실을 규명하는데 걸린 26년이란 시간보다 훨씬 짧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승원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 어머니의 15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이 아니었다면 '이 일병'을 향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 성추행 등의 범죄행위는 '자살'이란 은막 속에 그대로 감춰졌을 것이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고상만 김광진의원실 보좌관은 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원의 의료사고처럼 군 사망사고의 입증 책임을 군 당국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즉 "자살이 아니다"라는 논리적 정황을 유족이 아닌 군이 직접 입증하란 것이다.
고 보좌관은 "신체검사 때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죽은 채로 나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는 것"이라며 "유족이 군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민,관,군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편성, 재조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의문사 해결
입증을 군에게
그리고 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건 바로 군 사망자에 대한 예우개선이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예우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진실규명 역시 어렵기 때문.
김광진 의원실이 현재 입법을 검토 중인 '의무 복무 중 사망 군인에 관한 특별법(가안)'을 보면 "의무 복무중인 사병,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기간에 있는 부사관 및 장교에 대해 의무 복무 중 사망했다면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 처리된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망 군인에 대해서 특별법에 의거, 현행 국가유공자법에서 부여하는 보훈 혜택으로 똑같이 예우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안을 관통한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필요해 데려갔으니 무사히 나오도록 책임을 지는 것도 결국 국가의 몫이란 것.
이 특별법안은 본래 9월 정기국회서 입법이 예고됐으나 여야가 대치중인 관계로 조기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입법 취지가 상임위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고른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긴 전쟁을 치른169명의 유족들이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려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척 장군의 공개 편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께 요청합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241GP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아버지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그 이유는, 군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국가와 군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젊은 장병들이 군에서 사망하였을 경우, 국가가 관리를 소홀히 하고, 형식적인 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군에서 사망한 장병들을 개인이 나약하여 군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군부적격자로 낙인을 찍어 자살자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에서는 3일에 1명씩 자살자로 처리되고, 그 인원은 1년이면 100여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매년 수백명의 유족들이 피눈물을 뿌리면서 슬픔과 고통, 불명예 속에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들을 군의문사 유족이라고 합니다.
(이런 유족들이 있다는 건) 많은 국민들이 매우 불행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훈 사건에서 보듯이 지난 15년 동안 입법부인 국회국방위원회, 사법부인 대법원, 그리고 행정부인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4대 국가기관에서는 군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김훈 중위는 자살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타살의 증거를 갖고 있지만 범인을 지목할 수 없어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발 벗고 나서서 전우의 명예와 국민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부당하게 일체 근거도 없이 자살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을 항거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국방부가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국방장관에게 12번이나 내용증명을 보내고 올바른 재수사와 사건조작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국가가 의무만 강요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따르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런 군의문사 사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조치해주시면 국민의 행복, 국가의 안보력이 크게 증진 될 수 있습니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