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권자 우롱하는 재보선 후보자들
"안녕하십니까? 기호O번, OOO후보입니다."
최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근처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선 이 같은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는 29일은 서울 관악을, 강화·인천 서구 등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29재보궐선거일이다.
선거 특성상 후보자나 후보자 가족들이 현장에서 유세 및 선거활동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인력시장 등을 통해 모집된 인원들이 선거 유세활동을 한다. 이들은 후보자의 번호와 이름이 적힌 각종 피켓을 들고 선창자의 외침을 그대로 복창한다.
그나마 육성을 통한 선거 유세는 양반이다. 인근의 유세차량을 통해 나오는 녹음된 마이크 음성은 고막을 진동하게 만든다.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합니다", "OOO만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등의 외침은 요란하다 못해 시끄럽기만 하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이 같은 주입식 선거운동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다. 기분 좋아야 할 출근길이 요란스럽기만한 이들 선거 유세로 인해 자연스레 이맛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다.
이젠 캠프에서 준비하는 마이크 발언 내용이나 유세 방법에도 변화를 줄 때가 됐다. 바야흐로 시대는 이미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데 반해 선거는 아직도 쌍팔년도식 선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OOO 아니면 정권을 교체할 수 없다", "OOO만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 등의 마이크 발언 내용을 보면 유치하기 그지 없다. 실제로 재보선으로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하는 당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초선인 경우가 많다.
3~5선의 중진급들이 즐비한 새누리·새정치민주연합에 이들이 초선 의원으로 들어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발상은 가히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당 의원총회나 연찬회 등에서 초선 의원들의 입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요, 세 말하면 입만 아프다. 애석한 일이지만, 중진 의원들의 눈치만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의견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권 교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초선 의원이 도대체 무슨 수로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말인가? 후보자가 당선자 신분이 되어 금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당장 정권이 바뀔 일은 아예 없다. 그런 논리라면, 그동안 선거 때마다 정권은 수십 수백번 바뀌었어야 했지만, 현실은 항상 그렇지 않았다.
입에서 내뱉는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니다. 더구나 지역구 일꾼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 유세과정에서의 이 같은 어불성설은 유권자들을 대놓고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다. 우선, 유권자들이 선거 자체에 관심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후보자가 나왔는지, 무슨 공약을 내놨는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유세 기간도 짧은데다 후보들이 자신의 비전과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이면서 동시에 능률적으로 알린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어렵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고찰은 결국 후보자나 후보자 캠프의 몫이다. 무턱대고 지나가는 바쁜 사람에게 후보자의 명함만 건네거나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시끄럽기만한 마이크 유세는 지양해야 한다.
후보자들은 유세 마이크의 음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유권자들의 불쾌지수도 함께 높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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