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세계를 엿보다⑥
최근 국회법 개정안 거부와 관련하여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나아가 새누리당과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몰아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을 살피자 절로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필자가 정당판에 있던 1990년도 초중반의 일이다.
그 때는 전국에 있는 시·도당을 비롯해 전 지구당에 사무실 임대료며 인건비까지 모두 중앙당에서 내려 보냈다. 그에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어마어마했다'고 표현하자.
그런데 그 돈의 출처가 어디였을까. 당연히 최고의 권력, 즉 당 총재였던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항상 대통령이 직접 줬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줄 때도 있었지만 그 권력으로 자금이 충당되었으니 그게 그거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후보자에 대한 공천권도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총재인 대통령은 그야말로 제왕의 위치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대목에서 그를 입증하는 흥미로운 사연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자. 1995년 서울시장선거와 관련해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경선 없이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단일후보로 내보내려 했다. 아울러 실무진에서는 정원식 전 총리를 단일후보자로, 서울시장후보자추대대회를 이끌 준비를 하는 중에 느닷없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그럴 수 없었다. 본인이 사적으로 서울시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원식 후보보다 앞선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경선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청와대로부터 일명 ‘오더’가 내려왔다. 정원식 ‘7’ 이명박 ‘3’을 만들어 그 괘씸죄를 물으라고. 즉 개망신을 주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당시 당외인사였던 정원식 전 총리보다 당내인사인 이명박 후보가 실무진들에게 더욱 어필하고 있었다.
하여 실무진에서는 7:3은 너무 심하니 이 전 대통령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6:4로 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입장은 완고했다. 하여 실무진이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그 절충점인 6.5:3.5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그 실무진 중 한사람이 필자였음을 밝힌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보자. 당시는 모든 자금과 권한이 당 총재인 대통령에 의해 좌지우지됐었다. 그러니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시쳇말로 산천초목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지금부터 20년도 더 지난 상황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인데 그 일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재현되는 듯하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 혹여 새누리당에 소요되는 재원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원해주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런데 그건 절대 아닌 것 같다. 현재 새누리당 총재도 아닌데 그리고 과거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에 대한 그녀의 행적을 살피면 쉽사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에 대해 왜 그렇게 고자세를 유지하는 걸까. 그러다 새누리당에서 출당조치를 취하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 새누리당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정치하수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생존전략을 정확하게 설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능사라고. 그 길이 자기를 나아가 제1야당을 살리는 길임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 그를 알고 있는 다른 의원들도 그래서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새누리당까지 등지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배신이 판치는 곳이 정치판인데, 그저 또 배신 운운할 것인가.
그래서 임금을 넘어 황제의 사고를 지니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한마디 한다.
‘황제 폐하, 고정하시옵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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