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국정 교과서,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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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시사펀치> 한국사 국정 교과서, 심히 우려된다!

일요시사 0 1116 0 0

한국사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6월 국사편찬위원회와 신라사학회가 개최한 ‘삼국통일의 현재적 의의’ 학술회의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다.

“우리 국민이 단일민족으로서 한 정부를 최초로 이룩한 신라 통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그런 그가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이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라의 통일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보려 한다”고 일성을 터트렸다.

그의 지난 해 발언 그리고 최근 발언을 살피면 불현듯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떠오른다. 아울러 일전에도 김부식의 그릇된 역사관에 대해 짧게 지적했듯이 심한 우려가 일어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김부식처럼 상당히 편협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단일민족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신라의 통일 문제를 부각시키겠다고 한 부분이다. 먼저 당시 사회가 단일민족이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우리 집, 즉 황(黃)씨의 족보 속 내용을 들여다보자.

『황씨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의 한학사(漢學士) 황락(黃洛)의 후손들이다. 황락은 사신으로 월국(越國, 베트남)을 다녀오던 도중 표류하여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 경상북도 평해 월송정 인근에 상륙하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이후 황씨는 경상북도 울진의 평해를 터전으로 이 나라에 퍼져 살며 창원, 장수 등 여러 곳에 중간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런데 우리 집안만 이런 게 아니다. 이런 상황과 관련, 동 문건에 실려 있는 다른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겠다.

더하여 우리 황씨 모임은 이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돌아가며 개최하고 이 땅에 거주하는 황씨 종친회는 매년 타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황씨 대회에 전세기를 세내어 대표단을 파견하고 있을 정도다. 참고로 대만에서는 황씨가 3대 성씨 중 하나로 그 위세가 대단하다.

안타깝지만, 우리 황씨의 뿌리는 명백하게 중국이었다. 다시 언급하여, 비단 이런 상황이 우리 집안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여타의 문중도 이와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당시 사회가 단일민족이었다니. 도대체 신형식 명예 교수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역사를 어떻게 배웠는지 아연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정말 우려되는 부분은 이런 사고를 지닌 사람이 신라의 통일을 크게 부각시키겠다고 한 부분이다. 사실 당시의 상황을 두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접근 자체가 잘못이다. 아니 우리 역사에서 삼국통일이라는 용어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

당시 실정을 냉정하게 살펴보자. 당나라와 신라가 고구려를 멸한 시기가 668년이다. 그러나 당나라는 신라와 한 약속을 저버린다. 즉 당태종과 김춘추 간에 있었던, 고구려를 멸한 이후 대동감 이남을 주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다.


하여 결국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과 힘을 합쳐 676년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힘겹게 대동강 이남을 차지한다. 바로 그 무렵에, 신라가 대동강 이남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북에서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발해라는 엄연한 국가를 세운다.

엄밀하게 살피면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신라의 그릇된 행동으로 삼국에서 발해와 신라의 두 나라로 재편된다. 실상이 이런데 어떻게 신라의 삼국통일 시대라는 표현이 가당한가. 당연하게도 발해와 신라의 이국 시대로 기술해야 한다.

다시 부연한다. 역사, 엄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견, 그것도 경직된 사고를 지니고 있는 인사가 대표 집필자라니, 그래서 심히 우려된다는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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