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보이스피싱 ‘오명균 수사관’ 잡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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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보이스피싱 ‘오명균 수사관’ 잡고 보니…

일요시사 0 1183 0 0
 
순진한 백수 꼬셔 ‘돈뜯는 교육’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어설픈 보이스피싱 시도가 들통나자 폭소하는 음성 녹음파일로 화제가 됐던 자칭 ‘오명균 수사관’과 그가 속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해당 대화 녹음파일이 ‘보이스피싱과 즐거운 대화’라는 제목으로 자막과 함께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SNS 상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고하십니다 서울중앙지검에 오명균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전화를 받은 여성 A씨는 웃음을 터뜨린다. 옆에서 박장대소하는 A씨의 어머니 웃음소리까지 들린다. 그는 비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웃으세요?”

A씨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답했다.

“자꾸 검찰이라면서 전화가 와서요.”

이 말을 듣자 오 수사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전에도 이런 전화 받으셨어요?”

모녀는 이 말을 듣고 또 박장대소를 했다.

“네, 지금 네 번째인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제압하려고 말을 이어갔다.

“아…우리 여성분 검찰 전화는 처음 받으시죠?”

“여러번 받았다니깐요. 또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요?”

폭소영상 인기

결국 양쪽 다 웃음이 터졌다. 그때서야 포기했다는 듯이 “아, 겁나 웃겨”라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A씨는 “아침부터 고생이 많다”며 서로 인사까지 나누며 전화를 끊었다. 이 대화 내용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퍼져 나가며 조회수 50여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온라인과 SNS에서 화제가 됐던 일명 ‘오명균 수사관’과 그 일당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오명균 수사관 목소리의 주인공인 유모(28)씨를 붙잡았다. 유씨는 중국에 콜센터를 차리고 전화금융사기를 벌여온 보이스피싱 총책 조모(43)씨 밑에서 조직원으로 일해왔다. 경찰은 유씨와 조씨 외에도 조직원 14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조직원 일부가 적발된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경찰이 한 조직의 한국인 총책을 모두 검거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드문 일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통해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신원을 확인해 중국 공안과 공조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중국 길림성 용정시에 위치한 콜센터에서 합숙을 하며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질렀다. 총책 조씨 밑으로 경찰·검찰 수사관을 사칭하는 1차 작업팀과 검사 등 고위직을 사칭하는 2차 작업팀이 있었다.

1차 작업팀은 피해자들에게 제일 처음 전화를 걸어 “본인 명의의 대포통장이 개설됐는데 공범인지 피해자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겁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2차 작업팀이 겁먹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정보를 입수하는 식이다. 주로 가짜 검찰청 사이트를 알려주고 계좌번호와 보안카드 번호 등을 입력하게 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는 20여명이고 피해금액은 3억원에 달한다.

  
 



경기 부천에 살던 유씨는 뮤지션을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집에 음악 장비를 들여놓고 전자음악 습작을 만들며 꿈을 키웠다. 꿈은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당장은 돈이 필요했다.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만 했다.

온라인·SNS 화제 모았던 일당 검거
조선족 유혹에 넘어가 전화기 들어

그 러다 조선족 지인의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꼬아버렸다. 중국의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일하면 한 달에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유씨는 2014년 12월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모씨가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에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며칠간 합숙 교육을 받고 1차 작업팀에 투입됐다.

그러다 조선족 지인의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꼬아버렸다. 중국의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일하면 한 달에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유씨는 2014년 12월 중국으로 건너갔다. 조모씨가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에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며칠간 합숙 교육을 받고 1차 작업팀에 투입됐다.

이곳에서 그는 검찰 수사관이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당신 이름으로 대포통장이 개설돼 가해자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을 속이는 역할을 맡았다. 유씨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2차 작업팀의 검사나 금융감독원 직원이 다시 전화해 허위 검찰청 사이트에 계좌번호 등 금융정보를 입력하도록 속였다.

이후 한국의 인출책이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전달받아 은행에서 돈을 뽑아갔다. 한 번 범행에 성공할 때마다 유씨는 7%를 챙겼다. 그렇게 매달 150만원 정도를 꾸준히 벌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속이는 데 성공하면 피싱범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해진다고 한다.

계기는 조금 달랐으나 유씨도 갑자기 피싱범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해 4월 한 여성을 속이려다 실패하는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다. 녹음 파일에서 유씨는 자신이 ‘서울중앙지검 오명균 수사관’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으나 돌아온 것은 키득거리는 상대방의 웃음소리였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아 본 상대방은 “왜 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며 오히려 농담을 했다. 사기 치기를 포기한 유씨도 “아∼ 겁나 웃겨”라며 당황하지 않고 이 상황을 즐겼다.

마지막에 “인제 그만 웃고 끊어요”라고 여유를 부릴 정도로 담대한 유씨의 성격 덕분일까. 유씨는 검찰 수사관에서 2차 작업팀의 검사로 ‘승진’도 했다. 2차 작업팀원들은 한 달에 평균 4000여만원의 고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는 자신이 1차 작업팀에서만 일했다고 했으나 복수의 공범들이 그가 나중에는 2차 작업팀으로 옮겼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션 꿈꾸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국내에 들어온 콜센터 관리 총책 조씨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현지에 전해지자 유씨를 비롯한 조직원들은 불안한 나머지 일을 그만두고 국내로 돌아왔다가 줄줄이 경찰에 붙잡혔다. 유씨는 “잘못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며 반성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씨는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17일 구속됐다. 결국 큰돈을 만져 보려던 유씨의 꿈은 1년 만에 끝났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보이스피싱의 진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수법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가로채거나, 집안에 보관된 현금을 훔쳐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청은 19일 이러한 ‘대면편취형’과 ‘절도형’보이스피싱 피해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올해도 비슷한 수법의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했다. 대면편취형은 지난해 상반기 23건이었지만 하반기에 147건으로 6배 이상 급증했고, 절도형도 상반기 32건에서 하반기 94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피해자 연령별로는 20대 32.1%, 30대 24.5%, 40대 14.9%, 50대 12.5%, 60대 8.8%, 70대 7.1% 등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이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사회 경험이 적고 인터넷 뱅킹에 익숙한 젊은 층에 범행이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지난해 보이스피싱 수사 강화로 1만1534건에 1만 6180명(구속 173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4년에 비해 검거 인원은 160%, 구속 인원은 441% 증가한 것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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