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vs 민주당 '호남 고지전'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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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vs 민주당 '호남 고지전'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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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4회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 심포지엄-2013 한국민주주의 위기진단과 재민주화를 위한 모색'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무소속 안철수 의원(사진 왼쪽)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안철수의 '진짜 적'은 새누리 아닌 민주당?

[일요시사=정치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호남지역 실행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사실상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독자세력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이라는 평가다. 특히 안 의원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부터 실행위원 명단을 발표한 것을 두고는 안 의원이 민주당에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읽혀지고 있다. 안 의원이 제일 먼저 호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 의원과 민주당 간의 '호남 고지전'이 시작됐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정치 세력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새다.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은 지난달 29일 전북도의회와 광주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호남권의 정치세력화를 담당할 호남권 지역 실행위원 68명(광주-전남 43명, 전북 25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했다. 이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의 호남권 간부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일'의 윤석규 선임조직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차 실행위원에는 시민사회단체와 중견 활동가, 법조·의료·노무·교육분야 전문직 종사자, 노동·농민단체 활동가, 군 예비역 장성, 전·현직 지방의원과 전직 고위공무원, 중소기업인 등이 망라됐다"며 "호남에서 일당 독주체제를 극복하고 정치혁신을 바라는 시·도민의 열망을 대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일'은 이번 1차 실행위원 발표를 계기로 안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내일'은 또 이날 김성호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이근식 전 행정자치부 장관,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포함된 총 23명의 자문위원 명단과 무소속 송호창 의원을 위원장으로 강인철 변호사, 금태섭 변호사 등 지난 대선캠프 시절부터 안 의원과 함께해 온 인사들을 주축으로 총 38명에 이르는 기획위원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새 인물?
반 민주당

안 의원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본격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서면서 민주당은 불안감과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실행위원들의 면면에 대해 '이삭줍기' '민주당 기웃 인사' 등이라며 평가절하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안 의원이 호남지역 실행위원 68명을 발표한데 대해 "만약에 야권분열의 단초가 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권교체를 하지 못한다면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또 안 의원이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호남 방문 하루 전 실행위원 명단을 공개한 것을 놓고는 김 대표의 호남 방문 효과를 반감시키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술'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광주와 전남 해남·목포 등을 돌며 전국 순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안 의원이 전격적으로 실행위원 명단을 발표한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처럼 호남을 둘러싼 안 의원과 민주당의 신경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밀리면 죽는다" 호남 두고 사생결단
불쾌한 민주당 "결국 야권분열 될 것" 

사실 호남을 둘러싼 안 의원과 민주당의 신경전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안 의원은 지난 4·24 재보선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한 후 첫 지방일정으로 광주를 선택했었다. 이후 안 의원은 꾸준히 호남지역을 공략해왔고 민주당 역시 안 의원에 맞서 호남민심 다잡기에 애를 써왔다. 특히 일부 여론조사에서 아직 창당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의 호남지역 지지도가 민주당을 뛰어넘기도 하자 호남을 사이에 둔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과열되어 왔다.

지난 대선에서 안 의원과 한 배를 탔던 민주당은 안 의원이 호남 공략전에 나선 이후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안 의원은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영남 독점 구도를 깨주는 데 앞장서야만 야권이 연합연대해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며 "그런데 (안 의원은) 민주당의 구도를 깨려고 호남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안 의원이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세력화의 첫 장소로 호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호남의 중요성
제2의 김대중?

우선 가장 큰 이유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꼽힌다. 안 의원의 세력은 현재 호남에 집중돼 있다는 평가다. 내일은 타 지역 실행위원에 대해서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다.

안 의원은 전국적으로 세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권은 대전에서만 실행위원들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경상도에서는 안 의원의 고향인 부산에서만 실행위원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안철수 신당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과 경기도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호남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 의원의 인재풀이 매우 빈약하다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호남지역 실행위원들의 면면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전북 실행위원에는 민주당 정동영(DY) 상임고문 사람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 실행위원 인선 실무를 맡은 정기남 위원(전 안철수 후보 비서실 부실장)은 DY의 보좌관을 오래 한 측근 출신이다. 또 DY의 전주고 후배로 1996년 초대 보좌관을 지낸 김관수씨는 기획위원에 이름을 올렸고, DY 조직을 총괄했던 이학노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배병옥 ㈜하늘드림영농조합법인 대표, 김상복 전 전북도의회 부의장, 최만열 전북희망조합 회장, 이영호 전 전주 국제발효식품엑스포 추진단장 등 다른 DY계 인물들도 실행위원에 포함됐다.

광주·전남 지역의 43명 실행위원에도 전 민주당 광주시당 조직국장, 전 민주당 대표 정무특보, 민주당 소속으로 지방의원을 지낸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인물들을 보면 이미 민주당 당직을 가지고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다수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에서는 정치원로로 평가받으며 때만 되면 지역 단체장이나 광역의원 자리를 노리고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상당수는 실행위원 명단 발표 때까지도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명단 발표 하루 전에야 민주당에 탈당계를 낸 인물들도 있었다.

호남 고지전
밀리면 끝장

때문에 일부에선 안철수 신당이 겉으로는 전국 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새 정치를 표방하던 안 의원이 결국 지지율이 높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택함으로써 '안전제일주의'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반면 안 의원이 사실상 제1야당의 지위를 노리고 민주당에 정면승부를 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차기 대권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은 안 의원의 경쟁상대가 새누리당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을 공략함으로써 민주당과의 경쟁에 더욱 공을 들일 것"이라며 "호남은 민주당의 정치적 뿌리다. 야권의 심장이라 불리어 온 곳에서 선전한다면 현재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는 민주당이 안 의원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의 경쟁은 그 다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안 의원이 호남을 집중공략하더라도 호남당으로 치부되지는 않을 것이며 호남을 발판으로 수도권은 물론이고 영남까지도 공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단 민주당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코 다음 대권 도전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안 의원이 지난 대선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이 안 의원의 호남 진출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패하고 나면 사실상 이빨 빠진 제1야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호남지역의 경우는 오랜 기간 민주당이 일당독재 수준으로 집권을 해오면서 선거 때만 되면 공천과정 등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생해왔다.

게다가 지난해 총선과 대선 패배까지 이어지자 지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염증은 극에 달했고, 민주당을 대신할 새로운 정당에 대한 열망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러한 지역의 분위기를 재빠르게 읽어낸 안 의원 세력이 호남 공략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인물선정 잡탕? 인선 실패했나?
호남 기반으로 대권까지 직행?

또 호남에선 친노계가 장악한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크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동교동계가 박근혜정부로 대거 이동하면서 무주공산이 돼버렸다. 이런 틈을 노려 호남지역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을 경우 향후 정치행보에서 무엇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내일의 윤석규 선임팀장은 "호남의 지지세가 가장 강하기 때문에 호남을 제일 먼저 선택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안 의원의 조직 구성원의 면면이 호남세가 너무 강해 자연스럽게 호남에서부터 세력화를 꾀하게 된 것일 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호남에서의 지지세가 좋은 상황에서 호남에서부터 세력화를 시작한 것은 다소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었다"며 "안 의원이 전국정당, 새로운 정당을 표방하면 절대 호남에서 먼저 세력화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남 태풍?
호남 미풍?

특히 이번 호남지역 인선을 놓고는 "일부 인선의 경우는 새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됐다. 안 의원조차 내부 조직의 알력다툼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며 "호남을 자신의 첫 정치세력화 지역으로 선택한 것도 이와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의원과 민주당의 호남 고지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다. 이들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야권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향후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 의원과 민주당의 호남 고지전은 지독한 소모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자칫하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야권 정치지형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호남 고지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 되는 요즘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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