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해?’ 유행하는 졸혼의 이면어차피 따로 사는 거 ‘예쁘게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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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해?’ 유행하는 졸혼의 이면어차피 따로 사는 거 ‘예쁘게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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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헤이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옛 사람들은 결혼을 가리켜 ‘인륜지대사’라고 했다.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 것이다. 결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지만 최근에는 개인의 우선순위서 조금씩 밀려나는 모양새다.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졸혼’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졸혼’이라는 단어가 대중 사이를 파고들고 있다. 졸혼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펴낸 소설 <졸혼을 권함>서 유래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경험서 비롯됐다. 작가는 마흔 무렵 남편과 갈등으로 고민하던 중 딸의 권유로 따로 살게 됐다. 이후 각자 상황에 맞춰 부부 관계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했는데, 졸혼은 그 과정서 나온 개념이다.

이혼보다 졸혼

졸혼은 일본에선 이미 10여년 전부터 크게 유행한 문화다. 교육과정을 마친다는 뜻의 졸업처럼 결혼 생활을 합의하에 마무리하고 자유를 찾아 떠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자체를 끝내는 이혼과 달리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부 상태를 유지한다. 

다시 말해 불화 등으로 인한 결별이 아닌 긍정적인 느낌의 별거라는 인식이 있다.

한국에선 중견 탤런트 백일섭씨가 예능 프로그램서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백씨는 지난 2월 KBS2 <살림하는 남자들>에 출연해 아내에게 졸혼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졸혼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백씨는 <살림하는 남자들>을 통해 혼자 밥을 먹고 TV를 보거나 강아지와 노는 모습을 보였다. 백씨의 아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점은 그에게 맞춰있다. 가장의 삶이라기보다 졸혼 선언 이후 백씨의 ‘홀로서기’를 좇는 방식이다.

일본서 10년 전부터 화제
예능 프로그램으로 전파

졸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실제 연예인 부부의 별거 생활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도 제작됐다. E채널의 <별거가 별거냐>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연예인 부부가 별거 기간 동안 잊고 있던 꿈을 찾아간다는 기획 의도로 시작됐다. 

MBN의 <졸혼수업> 역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놓치고 있던 각자의 소중한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부부관계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 드라마서도 졸혼이라는 단어가 대사를 통해 나왔다. 지난달 25일 KBS2 주말연속극 <아버지가 이상해>에 출연 중인 남편 강석우가 아내 송옥숙을 향해 “우리 졸혼해. 결혼 생활 졸업해”라고 말한 것. 

해당 대사가 나온 이후 포털 사이트에는 졸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관심을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는 졸혼을 두고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최근 현실과 잘 맞는 신개념 트렌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2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의 이혼을 뜻하는 ‘황혼 이혼’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27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총 이혼건수 10만7300건 중 20년 이상 함께한 부부의 이혼 비율이 30.4%로 가장 많았다. 

이혼 부부 10쌍 중 3쌍이 황혼 이혼인 셈이다. 자녀가 다 자란 후 갈라서는 경우라 갈등이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혼소송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황혼 이혼의 경우 재산분할 관련 기여도 산정이나 연금재산 분할 등에서 갈등이 상당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졸혼이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혼 이혼이나 졸혼은 중년 기혼자들의 선택 사항 중 하나지만 졸혼의 경우 법적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복잡한 다툼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다시 말해 제도권 틀 안에서 남남처럼 살 수 있는 ‘결혼을 한 것도, 안한 것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다.

결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온전히 둔 채 단점으로 지적되던 부분만 보완했다는 지적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일부 누리꾼들은 졸혼을 두고 ‘도장만 안 찍은 황혼 이혼에 불과한데 방송서 대단한 것처럼 포장한다’ ‘남들 시선 때문에 이혼 도장만 못 찍고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실제 이혼 대신 졸혼을 선택할 경우 이혼 도장을 찍음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시선서 차단된다.

이혼을 주저하는 중년의 부부 가운데 재산이나 자녀 문제보다 ‘다 늙어서 무슨…’이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혼이라는 단계를 거치고 난 뒤 자신에게 돌아올 사회적 시선을 우려하는 것이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견해는 2012년 47%서 지난해 40.2%로 줄어들었다.

이혼의 단점 보완
합법적 외도 조장?

5년 새 7%포인트가량 감소했지만 국민 10명 중 4명은 여전히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단어 대신 돌아온 싱글을 뜻하는 ‘돌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서 이혼은 여전히 사회적 낙인과도 같다. 

이런 상황서 등장한 졸혼은 이혼이 주는 숙제와 리스크를 교묘하게 넘어선 묘수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우아하게 포장된 졸혼 문화의 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결혼 관계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서 ‘합법적 외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혼 이혼을 한 중년층은 재혼을 원할 때 친자녀나 상대의 자녀 등 눈치를 봐야 할 존재가 있다.

반면 졸혼은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상대를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졸혼을 선택한 기혼자들은 한 달에 1~2번 정기적으로 만나 가정의 대소사나 자녀 문제를 두고 의논하는 등 떨어져 있어도 부부의 도리를 다한다고 항변한다.

지난해 5월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부부의 날을 앞두고 회원 548명을 상대로 진행한 졸혼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면 꽤 적나라한 결과가 드러난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은 결혼 후에도 싱글 라이프를 꿈꾼다고 답했다. 

특히 남성(54%)보다 여성(63%)서 졸혼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이 높았다. 졸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응답자의 과반(57%)은 ‘결혼 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22%), ‘사랑이 식은 상태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것 같아서’(18%)가 뒤를 이었다.

사라질 트렌드?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서 졸혼 문화는 금방 사라질 트렌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뿐 별거나 쇼윈도 부부 등 졸혼과 비슷한 개념이 이미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졸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여전히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등장한 완곡한 해체 방식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또 중년 여성층서 졸혼에 대한 갈망이 더 높은 이유가 불균형한 가사 노동시간 등 사회적 문제와 맞닿아있다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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