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세계를 엿보다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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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시사펀치> 박근혜 대통령의 의식세계를 엿보다⑦

일요시사 0 1023 0 0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며 우리 역사에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신라시대의 두 여왕, 선덕과 진성을 떠올려본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에 초석을 다진 인물로, 반면 진성여왕은 신라를 패망으로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먼저 선덕에 대해 살펴본다. 고구려와 백제가 침략하면 사절들에게 조공을 바리바리 싸들려 당 태종 즉 이세민에게 보내 고자질을 일삼고, 백성들의 곤궁함은 ‘나 몰라라’하면서 토목공사에 주력하였다.

다음은 진성에 대해 살펴본다. 그녀는 보위에 오르자 엄연히 가정과 부인이 있는 유부남 위홍을 임금의 권력을 이용하여 궁으로 끌어들여 사랑을 나누며 초기에는 그런대로 국정에 의욕을 보인다. 그러나 이듬해에 위홍이 죽자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미소년 세 명을 몰래 궁으로 불러들인다.

처음에는 쉬쉬하며 환락을 즐기다 급기야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전면에 내세우며 나라의 정사를 맡긴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국가기강이 문란해지고 또한 도처에서 반란이 발생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두 여왕이 보위에 있을 당시의 행적을 살피면 그야말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아울러 선덕을 통일과 연계시키는 부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한 진성의 경우 그 엽기적 행각이 현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듯하다.

이제 두 여왕의 말년을 살펴보자. 역시 선덕이 먼저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선덕이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킨 한참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김부식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김부식은 선덕의 죽음을 난과 결부시키지 않았는데, 필자는 선덕의 행위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비담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이를 심층적으로 다룬 소설을 출간한 바 있음) 김부식은 자신의 핏줄인 선덕에 대해 차마 진실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맞물려 내친 김에 김부식의 그릇된 역사관을 엿본다. 신라가 대동강 이남 땅을 차지하자 고구려 유민들 중심으로 발해가 들어선다. 김부식이 정말 올바른 역사관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면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발해와 신라, 즉 두 나라의 역사를 함께 기록해야 했다. 그런데 신라의 후예인 김부식은 오로지 신라에만 국한해 우리 역사에서 발해를 지워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여하튼 선덕과 관련하여 조선조 석학 중 한명인 율곡 이이가 ‘내 전신은 김시습이었다’고 대놓고 주장했던,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천재요 문학가이며 사상가였던 매월당 김시습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가 경주에 머물면서 선덕왕릉을 둘러보고 지은 선덕왕릉시(善德王陵詩) 중 일부다. 

『신라 여주 선덕이라 이름 하니 
좋은 정치 소문 없고 간특함만 좋아했네.』

뒤이어 김시습은 그녀의 생전의 행위에 대해 조목조목 질타하면서 결론짓는다. 간특함만 밝히고 남에게 의지하려는 그 썩은 사고 때문에 후일 신라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또한 그는 덧붙인다. ‘죽을 때도 마음 못 고쳐 도솔천에 묻혔다’고.

이제 시선을 진성에게 돌려보자. <삼국사기>에 실린 그녀의 마지막 변이다.

“근년 이래로 백성의 생활이 곤궁해지고 도적들이 봉기하니, 이것은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어진 자에게 왕위를 넘겨주기로 나의 뜻을 결정했다.” 

이어 그녀는 효공왕에게 보위를 넘기고 조용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두 여인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를 내려 보자. ‘죽어도 마음 고쳐먹지 못한 여인’과 ‘자신의 능력을 절감하고 스스로 보위를 넘기고 조용히 삶을 마감한 여인’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판단은 박근혜 정권에 맡기며 이 시리즈를 끝낸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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