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성완종 수사 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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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성완종 수사 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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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산 권력 살리고 죽은 권력 두번 죽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이른바 '특사 의혹' 수사로 방향을 튼 검찰이다. 수사팀의 칼끝은 참여정부를 겨누고 있다. 리스트에 적힌 친박계 6인에 대해선 일찌감치 면죄부를 내렸다. 정치권에선 '청와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불거지자 엉뚱하게도 '정치개혁'을 주문했다. 검찰로서는 올해 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험난한 '충성시험'을 치르는 모습이다.

정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가 6월 셋째 주를 기점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를 회복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밝힌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34.9%(신뢰수준 95%±2.0%포인트)로 나타났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20%대를 기록했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고 있다.

높아진 지지율
변수는 성완종

메르스 확산과 함께 주춤했던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를 지난 24일 소환했다. 노씨는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25일 오전 2시께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조사였기 때문에 당초 참고인 신분이란 보도도 나왔으나 실제 조사는 노씨의 금품 수수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조사를 앞두고 응한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노씨가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하 특사)을 도와주는 대가로 억대에 달하는 금품을 수수했다고 주장했다. 또 2007년 말 성 전 회장이 두 번째 특사를 받아내기 전 노씨와 접촉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알렸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평소 노씨와 안면이 있던 경남기업 전직 임원 김모씨를 통해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노씨의 자택에서 여러 차례 사면을 부탁했다. 성 전 회장이 사면을 받은 날짜는 2007년 12월31일이며, 금품 제공은 사면 전 또는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2007년 성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 관련 비리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시점은 같은 해 11월이다. 성 전 회장은 2심 직후 상고를 포기했다. 특사를 받으려면 형을 확정판결 받아야하는 까닭에 성 전 회장 스스로 상고를 포기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성 전 회장은 당초 특사 명단에서 빠져있다가 발표 직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건평 기소
물타기 전략?

검찰의 의심에 대해 노씨는 "성 전 회장 측에게 사면 부탁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김씨의 소개로 성 전 회장을 두세 차례 만난 건 사실이지만 청탁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조사에서 노씨는 성 전 회장의 사면 경위와 관련해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그러나 검찰은 노씨에 대한 기소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앞서 불구속 기소가 확정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함께 법정에 세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특사 업무를 담당했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으로부터 서면 답변서를 제출받아 분석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소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검찰은 노씨가 특사 과정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때문에 노씨가 청탁을 받고 남은 돈의 일부를 청와대에 전달했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노씨를 연결고리로 참여정부 전·현직 공무원을 옭아 넣겠다는 심산이다. 검찰은 노씨가 성 전 회장 측으로부터 금전적인 이득을 챙긴 것은 분명한 만큼 연결된 돈의 흐름을 쫓겠다는 생각이다.

검찰 특사 의혹 노건평 피의자 신분 소환
홍문종 참고인 소환 김기춘 수사대상 열외

변수는 공소시효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노씨가 2007년 12월 이전에 금품을 제공받았다면 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 단 노씨가 2008년 이후에 금전적인 이득을 챙겼다면 남은 시효가 유효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은 어떤 의도인지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임원 김씨가 노씨에게 2008년 이후 금품을 전달했다'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검찰은 잠재적 수사 대상자로 참여정부 공무원들을 지목하고, 이들에게 특가법상 뇌물죄 적용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대가성이 있는 1억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정황만 나오면 지금이라도 사법처벌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노씨의 비공개 소환은 여러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수사팀의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수사당국이 노리는 바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 곳으로 모인다. 바로 야권이다.

노씨의 소환조사는 즉각 형평성 논란을 야기했다. 같은 혐의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먼저 2012년 대선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됐다. 홍 의원은 지난 8일 검찰 조사에서 "성 전 회장을 잘 모른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특히 홍 의원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회신한 서면 답변서에서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해명을 요구했으나 홍 의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검찰은 홍 의원과 함께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연루된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에게도 서면질의서를 보냈으나 소환은 통보하지 않았다. 이날 검찰은 홍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끝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 이완구 전 국무총리

비교적 구체적으로 금품 전달 상황이 묘사된 김기춘·허태열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선 검찰이 앞장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라고 두둔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당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7년 허 전 실장에게 서너 차례에 걸쳐 현금 7억원을 줬고, 김 전 실장에게는 2006년 9월26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미화 10만달러를 전달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성완종 인터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두 '친박 실세'에 대해선 한 차례 서면조사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다.

최근엔 한 야당 의원을 통해 "김 전 실장에 대해선 서면조사조차 없었다"라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처음부터 검찰이 김 전 실장을 수사대상에서 열외하고 '공소권없음'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7억원 눈감고
2천만원 소환

허 전 실장의 경우는 더욱 수상하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허 전 실장은 '포괄적 뇌물죄'의 적용이 가능했다. 특가법의 적용을 받는 혐의 액수(7억원)로 공소시효(10년)도 넉넉히 남아 있다. 범행 장소(리베라호텔)까지 공개된 마당에 소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검찰의 선택은 허 전 실장이 아닌 노씨였다.

더불어 구체적인 액수가 공개되지 않은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변인 브리핑을 끝으로 조사를 갈음했다. 박 대통령과 직접 연결된 '산 권력'은 누구 하나 건들지 못했다. 야권에선 '슈퍼특검'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권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혹시 모를 특검까지 대비해 최대한 수사를 끌고 있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수사 결과 발표는 7월 첫 주로 미뤄졌다. 황교안 국무총리 임명과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등 외부 일정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의혹'과 관련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공식화했다. 지난 4월28일 "성완종 사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데 이어 5월4일에도 "사면제도를 전면 개선하라"라고 지시했다. 의혹의 핵심인 대선자금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언급하며 수사의 범위를 야권까지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법무부 수장이었던 황 총리는 대통령의 지시를 검찰에 전달했다.

앞서 청와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파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각각 '정보 유출' '찌라시' 등의 발언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실제 수사결과도 대통령의 '지시'와 일치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수사 역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씨의 기소가 불가피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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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특사를 대가로 돈을 챙긴 쪽이 노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대통령인수위 당시 비서실에 있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4월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이명박 전 대통령) 측 핵심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여권 인사를 겨냥한 '특사 수사'는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사 카드는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직후 국정원이 기획하고 제공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앞뒤 정황상 일종의 '물타기 아이템'이란 의심이 짙다. <일요시사>는 지난 4월20일 '성완종 게이트 ④박근혜 위기탈출 카드 포착'이란 기사에서 관련한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향후 특검이 도입되면 확인돼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노씨 외에도 지난 2013년 5월 옛 민주당 대표 경선 당시 성 전 회장에게서 수천만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김 의원은 "황당한 이야기"라며 연거푸 소환에 불응했다. 첫 번째 소환통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유력한 증거가 분명하게 있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전직 야당 대표를 소환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때문인지 검찰은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에 대해서도 소환을 통보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2000만원을 전달 받은 혐의다. 그러나 이 의원은 친박계와 친이계에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게감 역시 야당 전직 대표인 김 의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다.

법조계 일각에선 김 의원을 소환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 격으로 이 의원까지 조사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김 의원을 소환하는 숨은 의도는 참여정부 말기 특사 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 황교안 국무총리

검찰은 두 현직 의원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만 기소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나지 않아 발표가 미뤄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만에 하나 노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결정되면 반야당 성향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간 청와대는 NLL 논란 등 이른바 '노무현 카드'를 통해 정치적인 위기를 돌파했다. 메르스 사태로 떨어진 지지율에 부담을 느끼는 청와대로서는 유혹을 느낄 법한 부분이다.

청와대는 황 총리를 통해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동력은 인사권이다. 표면적으로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인사권자가 정권의 뜻에 반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김 후보자 역시 황 총리의 사법연수원 후배이며 소위 '황교안 라인'으로 분류된다.

인사권 쥐고
수사팀 장악

오는 하반기 김진태 검찰총장의 후임 내정과 함께 대규모 인사이동이 예고된 상황에서 수사팀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모조리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 반면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으로 영전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마지막 '유언'에서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나, (중략) 깨끗한 정부, 진짜 박(근혜) 대통령이 깨끗한 사람을 앞으로 내세워서 깨끗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쇼"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유서로 남긴 메모 속 인물들은 아직 건재하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서산장학재단을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했다. 산 권력엔 관대하고, 죽은 권력엔 가혹한 검찰의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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