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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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우의 시사펀치> 박정희를 위한 변명

일요시사 0 1741 0 0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필자에게 간혹 지인들이 질문하고는 한다. 우리 역사 최고 인물은 누구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내가 박 전 대통령을 우리 역사 최고의 인물로 평가하는 사유는 단순하다. 나, 즉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는 나도 당당하게 인간군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데에 따른다.

우리 역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경영하기 전까지, 아니 내가 어린 시절 이 땅에 백성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무늬만 인간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란 인물의 등장으로 이 땅의 백성들도 맹자의 지론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발현 된다’는 맛을 보게 된다. 그런 연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많은 과실이 있지만, 그에 앞서 이 대목을 우선순위에 두고 응답한다.

각설하고,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을 맞이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다. 다수의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미워했다는, 심지어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세히, 아니 그냥 대충 살펴도 천만에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왜냐. 정치 역학상으로 살피면 김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좋은 노리개 감이었기 때문이다.

호남 대 비호남 구도로 굳어진 당시 상황 하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였다. 그에 반해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버거운 상대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사시 영남 일부 그리고 야당 성향 사람 모두를 지원군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박 전 대통령의 견제가 심했고 급기야 국회의원 제명이라는 초강수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박정희 대 김대중’으로 몰아갔을까. 당연하게도 권력의 문제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에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카운터 파트’로 자리매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서 가장 빈번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두 사건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김대중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서다. 동 사건은 1971년 실시된 제 8대 총선 당시 발생했다.

호남에서 지원 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던 중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일로 김 전 대통령은 팔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아울러 이를 접한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조상호 의전비서관을 통해 화환을 보내 위로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 “박 대통령이 이렇게 따듯하게 위로해주어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육영수 여사도 이희호 여사에게 화환을 보내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 의해 ‘정부가 자동차 사고를 빙자해서 김 전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한 충돌 사건’으로 변한다. 경미한 사고가 김대중 암살 미수 사건으로 변질되었다.

다음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진실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1973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납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천만에다.

동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씨가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그를 만회하기 위해 단독으로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 일로 박정희 정권은 한동안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을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을 맞이하여, 좌측에 선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의 좌익 경력을 문제 삼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되집어 보고자, 역사 문제로 시끄러운 현실을 살피며 간략히 술회해본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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