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서 사라진 에로비디오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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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서 사라진 에로비디오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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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한 빨간딱지 테잎들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2층 기록물관리실(구 형사6부 압수물 창고)에 바로 옆 건물인 서울중앙지법의 집행관들이 들이닥쳤다. 13년 전 압수된 불법 복제 ‘에로비디오’를 대법원의 결정으로 강제집행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12월15일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검찰이 법원 명령으로 강제집행을 당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법원 집행관들은 10여분을 찾았지만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무슨 일로 같은 물건을 찾기 위해 2번이나 검찰청사가 강제집행을 당하는 ‘굴욕’을 겪은 것일까. 이는 지난 10년간 압수물 반환소송을 벌여 승소한 주모(61)씨의 신청에 따른 조치였다. ‘검찰이 돌려줘야 하고, 이를 위해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압수물은 877점의 에로비디오 테이프와 DVD였다.

압수물 관리소홀

사건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던 주씨는 불법복제 비디오테이프 대여로 단속이 돼 2749점의 테이프를 압수당했다. 그해 6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주씨를 정품 비디오물과 등급 미분류 음란물을 불법복제하고 대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주씨가 2000여점의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760차례 대여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2005년 주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 검찰은 공소사실을 축소했다. 불법 비디오테이프 수를 773점으로 대폭 줄였다. 2심 재판부는 주씨가 불법 비디오테이프 100여점으로 54차례 대여한 점만 인정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혐의에서 벗어난 압수물 2200여점은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불법성이 인정된 593점은 몰수처분 됐다.

하지만 주씨가 돌려받은 테이프는 1484점에 불과했다. 나머지 877점의 비디오테이프와 DVD는 행방이 묘연했다. 2006년 주씨는 “나머지 압수물도 돌려달라”며 압수물 환부 소송(압수한 물건을 소유자 혹은 보관자의 청구에 따라 법원의 결정으로 돌려주는 것)을 제기했다.

압수물 환부 소송은 9년이 걸렸다. 2009년 열린 항소심에서 법원은 검찰이 주씨에게 압수물 240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또 2014년 11월 대법원은 240점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확정하면서 검찰이 주씨에게 압수물 637점을 추가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지난해 5월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취지대로 주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양쪽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주씨는 현재까지 여러 차례 자신의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달라고 검찰에 요청했으나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법원 명령을 받아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집행에 나섰다.

검찰은 주씨를 기소하면서 기소의 근거가 되는 압수물을 허술하게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지도 않았다.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압수물 목록표는 작성자의 이름이 기재돼 있지 않고 <연변연가>와 <모닝XX>를 제외하면 비디오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875점은 기타(E.t.c)로 기재한 후 수량만 기록돼 있다. 제대로 된 압수물 목록이 없어서 검찰로서도 어떤 비디오테이프가 있고, 무엇을 돌려줘야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름이 특정된 2개의 테이프에 대해서도 검찰 스스로 “<연변연가> 등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십수 년 사이에 없어진 것 같다”고 인정하고 있다. 

 


주씨 본인은 명확히 특정되지 않은 압수물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됐고, 또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돌려받지도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금’ 불법복제 단속해 2749점 압수
1484점만 돌려받아…877점 행방묘연 

검찰이 주씨에게 돌려줬다는 비디오테이프 개수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2심 재판부는 ‘현재 보유 중이지 않은 걸로 봐서 이미 돌려준 것으로 추정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005년 11월 주씨가 전체 2749점 중 1200점을 이미 돌려받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씨는 596점만 돌려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먼저 돌려준 비디오물의 목록도 작성하지 않아 이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물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주씨가 ‘내 것이 아니다’라며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갖고 있는 압수물은 법원의 반환 판결 대상의 절반도 안 되는 240여점에 그친다. 이것들이 주씨의 비디오라는 증거도 없다.

주씨가 인도 청구한 비디오테이프는 압수물 목록표 상에 있는 것들만은 아니다. 주씨는 재판에 검사가 제출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되거나 사진으로 찍힌 비디오테이프 9점도 돌려달라고 청구했다. <모닝XX> <연변연가> 외에도 <모텔리어> <턱시도> <스토커> <LORD RINGS(LORD OF RINGS의 오기)> <바-이> <빨강머리 지나> 등이다.

검찰은 2점을 제외한 7점은 압수물 목록표에 없어 돌려줄 수 없다고 재판부에 답변했다. 유죄의 증거로 제시된 압수품에 대해 ‘애초에 압수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결국 재판부는 작성자가 없는 압수물 목록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압수물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압수 및 조사과정에서 주씨의 것과 다른 압수물이 섞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압수한 주씨의 비디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지난 2013년, 차관급에 해당하는 한 정부기관장이 직원들과 함께 간 워크숍 자리에서 한 발언이 큰 문제가 됐다. 검사 출신인 그에게 한 직원이 검사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 수사에 대해 묻자, 뜬금없이 “숙박업소에 설치된 ‘몰카’가 압수물로 들어왔는데, 집으로 가져가 아내랑 함께 봤다”는 발언을 했다. 몰카는 범죄사실의 증거로 검찰수사관이 압수한 것이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동료 검사와 수사관들도 다들 집에 가져가서 봤다”고 태연히 덧붙였다.

당시 해당 발언은 모 언론사에 고스란히 제보가 됐고 결국 이 기관장은 언론사에 찾아가 기자에게 선처를 구하며 보도 하루 만에 기사를 내릴 수 있었다. 당시 몰카 범죄 피해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민감한 영상을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주의깊게 관리하지 않고 되레 돌아가면서 봤다는 기막힌 사실이 외부에 드러났다. 이로 볼 때 검찰 관계자들이 주씨의 비디오를 사적으로 가져갔을 것이라는 의혹 제기도 가능한 상황이다.

누가 가져갔나

주씨는 자신의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찾을 때까지 강제집행 신청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주씨는 언론에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검찰이 내 물건을 보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검찰은 계속 압수물이 있다는 주장만 하고 내 물건이 아닌 것을 가져가라고 한다. 압수물엔 사업에 꼭 필요한 자료가 담긴 CD 20장이 포함돼 있다. 다음엔 형사6부 검사실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사건 자체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검찰 증거물 창고가 강제집행 당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 검사실이 강제집행 당할지는 중앙지법 재판부에서 판단하는 것이라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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