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4개월24일' 전두환 추징 풀스토리

한국뉴스


 

'16년4개월24일' 전두환 추징 풀스토리

일요시사 0 1134 0 0

결국 낼 걸…버티고 버티다 ‘백기’

[일요시사=사회팀] 전두환씨 추징금 환수작전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재산은 29만원 뿐, 공식적으로 땡전 한 푼 없던 빈털터리 전직 대통령에게 이 돈을 받아내는데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가 갑자기 ‘백기투항’한 이유는 뭘까. 그동안의 과정을 되짚어봤다.


1996년, 뇌물수수와 반란 등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는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부과 받았다. 이듬해 12월 특별 사면됐지만, 추징금은 완납해야 하는 상황. 시작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검찰 선고 후 수사과정에서 전씨로부터 압수했던 예금 107억원과, 채권 등을 합해 312억9000만원이 추징됐다.

키우던 개도 경매

이어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이후 검찰은 3년마다 일부 재산을 압류하며 시효 만기를 연장하는데 그쳤다. 시효는 만료 전 1원이라도 추징하면 다시 3년이 연장됐다.

첫 번째 시효 만료를 앞둔 2000년 5월 검찰은 1987년식 벤츠 승용차와 장남 재국씨 명의의 콘도회원권을 압류해 시효를 3년 더 늘렸다.

경매에 넘겨진 콘도회원권은 1억1264만원, 벤츠 승용차는 9900만원에 낙찰됐다. 벤츠 승용차를 감정가 1천500만원보다 6배 이상 비싸게 주고 가져간 사람은 손삼수 전 비서관이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재무업무를 맡아 전씨의 비자금을 담당했다.

다시 3년이 지난 2003년에는 TV와 냉장고·골프채·찻잔·피아노 등 세간 뿐만 아니라 기르던 진돗개 2마리까지 경매에 넘어가는 수모를 당했다. 경매에 나온 물건들은 검찰의 재산명시 신청에 따라 전씨가 법원에 직접 적어 낸 것이다.

경매는 연희동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진행됐고, 총 1억 7950만원이 강제 집행됐다. 당시 여전히 1890억원을 미납하고 있던 전씨는 “전재산이 29만원 뿐”이라며 법정에서 판사와 설전을 벌여 ‘재산 29만원’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연희동 자택 별채를 경매에 부쳤다. 전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처남 이창석씨가 16억4800만원에 낙찰 받았다.

이듬해에는 부인 이순자씨가 자신이 관리하던 채권, 현금 등 130억원과 친인척에게 모은 70억원을 합해 200억원을 ‘대납’했다. 검찰이 자신과 아들 재용씨 등에게 전씨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잡고 수사하자 추징금을 억지로 내놓은 것이다. 얼마 뒤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재용씨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같은 해 전씨가 서초동 일대 토지를 장인과 공동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검찰은 서초동 일대 전씨 지분을 압류했다. 이 토지가 경매에서 1억1939만원에 낙찰되면서 지금의 1672억원이 남게 됐다.

2008년 6월 검찰은 은행 채권 추심으로 4만7000원을 추징해 시효를 다시 3년 늘렸다. 2010년 10월에는 전씨가 “강연으로 소득이 발생했다”며 처음으로 강연료 300만원을 자진 납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한 만료를 앞두고 강제집행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난만 받았다.

지지부진한 추징금 집행이 급물살을 탄 건 올해 제정된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일명 전두환 추징법) 덕분이다. 올해 10월 11일 추징 시효 만료일을 앞두고 국민의 여론이 악화되자 국회는 전씨 일가친척 재산까지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면서 환수작업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97년 추징금 2205억 확정…3년마다 연장
질질 끌다 ‘전두환법’ 통과로 환수 급물살

이 법은 불법재산으로부터 유래한 재산이라면 제3자의 재산도 환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전씨의 가족 및 친지들 재산까지 환수가 가능해졌다. 추징금 환수 시효도 2020년 10월까지로 연장됐다. 대부분 비자금을 차명재산으로 은닉해 왔던 전씨로서는 치명타였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 외사부장)을 꾸려 적극적인 은닉재산 추적에 나섰다. 지난 7월, 법 시행 나흘 만에 전씨일가의 서울 연희동 자택, 장남 재국씨 회사 등 수십 곳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환수 작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십∼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고가의 그림, 조각 등 미술품 수백점을 찾아냈다.

검찰의 수사망은 다시 전씨의 재산관리인이었던 처남 이창석씨로 향했다. 검찰은 8월 이씨를 소환해 전씨의 미납추징금 관련 활동이 ‘환수’에서 ‘수사’로 본격 전환됐음을 선언했다. 검찰은 다음날 전씨의 조카 이재홍씨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이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체포했다.

다시 하루 만에 처남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검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두 달여 간에 걸친 수사를 통해 서울 한남동 부동산, 연희동 사저 등 약 800여억원 상당의 재산을 압류했다.

검찰의 압박에도 추징금 자진 납부를 거부하던 전씨일가는 지난 3일 검찰이 재용씨를 소환 조사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용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받은 다음날 노태우씨 측이 미납 추징금 230억원을 완납하면서 전씨일가의 심리적 부담은 더 커졌다.

거센 압박에 ‘만세’

이후 전씨일가가 가족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분담액을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결국 재국씨가 가족을 대표해 기자회견을 열고 추징금 완납 의사를 밝혔다. 남은 추징금은 전씨일가가 분담해 납부한다.

납부 내역은 전씨와 이순자씨 90억원, 재국씨 558억원, 재용씨 560억원, 재만씨 200억원, 효선씨 20억원, 이희상 회장 275억원 등이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된 지 16년4개월24일 만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