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기림비' 방해 세력은 누구?

한국뉴스


 

'위안부 기림비' 방해 세력은 누구?

일요시사 0 1161 0 0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미주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본격화됐던 위안부 기림비 건립 열풍이 주춤한 모양새다. 그 원인을 놓고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는 원망 섞인 탄식이 들린다.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누군가는 피켓을 들고, 또 누군가는 손수건을 들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

일본은 사과하라

지난 1992년 1월8일 위안부 피해자들과 여성단체 등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집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첫 집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수요집회는 거의 한 주도 빠짐없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제 80∼90세의 고령이 되었다.

지난 8월26일에는 위안부 피해자 최선순(87) 씨가 영면하면서 이제 남은 생존자는 56명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진실을 외면한 채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미국에서는 재미 교포를 중심으로 한 '위안부 기림비' 건립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는 모두 6개의 기림비가 세워져있다. 미국 내 한인단체가 주도한 '위안부 기림비 건립 프로젝트'는 이미 고국에서 1000번도 넘게 이어진 수요집회에 대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답이었다.

2010년 10월 미국 뉴저지 팰팍에 위안부 기림비가 해외 최초로 건립됐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의 외교적 분쟁'이 아닌 '전세계적인 인권 문제'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지난해 5월 뉴욕주재 일본총영사와 자민당 소속 의원 4명을 잇따라 팰팍에 급파하면서 기림비 철거를 도모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행정부 및 의회의 시도는 무산됐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즈>나 <FOX-TV>와 같은 현지 메이저 언론이 일본의 이 같은 조건부 매수 정황을 보도하면서 전에 없는 반일감정이 고조됐다. 더불어 미주 한인사회에는 기림비 건립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 현충원에 세워진 기림비를 비롯해 뉴저지 버겐카운티정부 청사 옆, LA 한인타운 내부 등에 차례로 기림비가 건립됐다. 또 디트로이트, 애틀란타, 시카고 등에서도 미주 한인단체를 중심으로 기림비 건립이 추진됐다. 미주 한인사회의 주요 의제로 '위안부 기림비 건립'이 논의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난 2일 한인들이 열정적으로 추진해온 '기림비 건립 프로젝트'가 잇단 악재에 휘청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널리 알려진 일본 측의 전방위 로비는 물론이고, 한인 간의 반목과 갈등, 이로 인한 협상력의 부재 등은 기림비를 갉아먹는 원흉으로 지목됐다.

얼마 전 뉴저지 포트리에서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둘러싸고 한인간의 주먹다툼이 벌어졌다. 지난달 8일 미국 현지 소식통은 위안부 기림비를 두고 뉴저지 한인회관에서 한인 간의 주먹다짐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월남전참전자회 뉴저지지회 소속 이모씨는 같은 날 예정돼 있던 뉴저지 한인단체장협의회를 앞두고 재미월남참전전우회 소속 김모씨를 폭행했다. 김씨의 언행에 흥분한 이씨가 김씨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한 것이다. 이씨와 김씨는 각각 위안부 기림비의 형태와 재미월남참전전우회 문제 등을 놓고 온라인상에서 설전을 주고받았던 인물이다.

미주 한인단체 갈등·반목 수면 위로 부상
퇴역 군인간 주먹다짐…모임 만들고 '쉬쉬'

이씨는 미국 내 기림비 건립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뉴저지에서 활동해왔다. 이씨가 소속된 월남전참전자회는 일본인의 기림비 말뚝테러를 맨 처음 발견한 것은 물론 뉴저지 버겐카운티정부 청사 옆에 기림비가 들어설 때 간사단체로 이름을 올렸던 조직이다.

하지만 기림비 건립이 한인사회의 핫 이슈로 부각되자 몇몇 단체도 뒤늦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재미월남참전전우회는 월남전참전자회에 비해 후발주자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위시해 각 한인 단체는 기림비 건립 형태를 놓고 대립양상을 보였다. 추진 단체 간에 '기림비'와 '소녀상'으로 갈려 공개석상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 뉴저지한인회 유강훈 회장 등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단체 간의 갈등은 더욱 격화됐다.

결국 뉴저지 포트리의 위안부 기림비 건립안은 이들의 주도권 다툼으로 6개월째 공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나 보편적인 인권보다 자신들의 조직 논리를 앞세우다보니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런 불협화음은 미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뉴욕 플러싱의 경우 지난해 2월 기림비 건립과 함께 세계최초의 '위안부 추모길' 지정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재 해당 사업들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당시 '기림비 붐'을 타고 추진위원회까지 발족됐지만 참여인사들은 저마다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뉴욕 플러싱 기림비 사업이 중단된 나름의 이유는 있다. 뉴욕의 경우 기림비 건립을 위해선 뉴욕 당국의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무엇보다 뉴욕 공원국에 최대 10만 달러의 관리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액수다.

그럼에도 추진위원회가 서로 간의 이견으로 활동조차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기림비 건립이 미주 한인사회 오피니언들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인사회가 내분으로 주춤한 사이 일본은 외교력을 동원,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지난 4월 디트로이트 사우스필드 시립도서관 앞에 추진되던 소녀상 건립계획이 좌초된 것을 시작으로 '기림비 건립안'이 시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부에나파크에서도 회기 내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소리가 나온다.

정치적 도구?

부에나파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알려진 6선의 아트 브라운 의원은 최근 위안부 기림비 건립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선거에서 공식적으로 브라운 의원을 지지했던 한인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 브라운 의원은 부에나파크와 자매결연 관계에 있는 포천시 방문 일정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취할 것은 한국에게 취하면서 정작 손은 일본을 들어주는 식이다.

이 때문에 몇몇 한인단체가 실제로는 일본 현지의 우익 단체와 유대관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브라운 의원을 중심으로 희미하게나마 모종의 커넥션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달 브라운 의원은 성명을 통해 기림비 건립은 한·일간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부에나파크 시에 건립되는 기림비는 이 지역의 시민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