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길 포기한' 희대의 패륜 살인마들

한국뉴스


 

'인간이길 포기한' 희대의 패륜 살인마들

일요시사 0 2179 0 0

"세상말세"라더니…툭하면 존속살인 참극

[일요시사=사회팀] 올 초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에 이어 최근 '인천 모자 살인사건'까지 터지며 패륜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작금의 패륜범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던 것일까. 세상을 경악시킨 희대의 패륜범들을 되짚어봤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 모자 실종사건'은 유력 용의자인 차남 정모(29)씨가 구속되면서 수사가 일단락된 모양새다. 정씨의 도박 빚을 비롯한 금전적 문제가 주 범행 동기로 부각된 가운데 가정 내 보이지 않는 불화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씨는 자신의 어머니 김모(58)씨와 형 정모(32)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봤을 때 차남 정씨의 실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아직 우리 사회엔 '제2의 정씨'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끊이지 않는
친족 살해

최근 경찰청이 발간한 '2012년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범죄(미수 포함)는 모두 955건. 이중 존속살인은 50건으로 전체 살인범죄의 5% 수준이다.

이는 학계에 보고된 영미권 국가의 존속살인 비율 1∼2%(영국 1%·미국 2%)보다 높은 수치로 한국 특유의 폐쇄적인 가족 문화가 범죄 발생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살인죄로 검거된 1056명의 범죄자 중 피해자와 동거친족 관계에 있는 인원은 207명이었다. 살인 전과자 5명 중 1명은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하거나 이에 준하는 범죄를 모의했다는 얘기다.

특히 피해자가 실제 사망에 이른 411건(살인미수 제외)의 '기수사건' 중 친족 살인혐의로 체포된 범죄자는 무려 117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검거자가 446명인 것을 감안하면 4명 중 1명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 혹은 자녀를 살해한 셈이다. 이는 통계상 2위를 기록한 타인(87명)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고, 애인(47명)이나 지인(42명)과 비교해도 3배에 가까운 결과다.

'인천 모자 실종사건' 차남 범행 일단락
검거 살인범 4명 중 1명은 가족 '충격'

이처럼 최근의 통계 자료는 많은 수의 살인이 가족과 혈육 간에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부모를 상대로 한 패륜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존속살인의 참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81년 5월20일, 치안본부가 발표한 보도 자료를 보면 당해 5월을 기준으로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은 모두 26명이었다. 검거된 미수범 역시 7명이나 됐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도 패륜범죄는 꽤 높은 비율로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 90년대 들어서도 패륜범죄는 줄지 않았다. 91년 29건이었던 존속살인은 92년 32건, 93년 43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존속살인 건수가 45건이었던 것을 보면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통계상으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돈을 목적으로
완전범죄 꿈꿔

그럼에도 사람들은 패륜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왜일까. 통상 특정 시기에 발생한 존속살인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충격을 안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모두를 충격을 빠뜨렸던 '희대의 패륜아'들은 묘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돈을 목적으로 한 완전범죄를 계획했고, 범행 준비에선 치밀함을, 체포 이후엔 뻔뻔함을 보였다. 수사진조차 혀를 내두르는 이들의 잔혹한 범행은 '패륜'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했다.

이제는 패륜아의 대명사가 된 박한상(당시 23세)씨는 자신의 아버지 박모(48)씨와 어머니 조모(46)씨를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994년 5월19일 벌어진 이 충격적인 존속살인사건은 당시 각 일간지 일면 머리기사에 실리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1971년생인 그는 당시 저명한 한약상이었던 아버지 박씨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상씨는 한의학과에 입학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지방 모 대학에 진학했는데 이는 다가올 참극의 싹을 틔었다.

박씨 부부는 서울 강남에 터를 잡은 100억원대 자산가였다. 부모덕을 본 한상씨는 당시 강남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고, 대학생 신분으로 차를 몰고 다니며 유흥문화를 즐겼던 인물로 소개됐다.

여타 부유층 자제와 다를 것 없이 밤거리를 활보하던 한상씨는 방위 제대 후 미국 유학과 함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공부에 소질이 없던 한상씨를 강제로 유학 보낸 게 화근이 됐다. 한상씨는 유학생활 중 학업보다는 향락과 도박에 더 열중했다. 귀국 전엔 라스베이거스에서 3만달러(당시 환율기준 한화 2400만원)를 빚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아들에 대한 심한 질책과 함께 한상씨의 귀국을 명령했다. 그리고 한상씨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줬던 신용카드를 뺏음으로써 사실상의 '경제적 사형선고'를 내렸다.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을 들은 한상씨는 3일 만에 급히 귀국했다. 하지만 한상씨의 마음속엔 이미 증오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귀국 직후 범행에 사용할 25cm 등산용칼을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서 구입했다.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8리터를 추가로 구입했다. 이로부터 3일 뒤 박씨 부부의 집에선 큰 불이 났다.

화재 직후 한상씨는 "집에 불이 났다"며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박씨 부부의 자택에서는 새까맣게 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시신이 이상했다. 두 구의 시신 모두에서 수십 차례씩 난자된 상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소변을 핑계로 밖에 나갔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도망쳤다는 한상씨의 진술을 의심쩍게 여겼다. 그러나 경찰은 친아들이 부모를 그렇게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더불어 한상씨가 갖고 있던 '미국 유학파'라는 타이틀도 무시 못 했다. 수사의 화살은 외부로 향했다.

하지만 한상씨를 치료한 병원의 간호사는 "박한상의 머리에 피가 묻었다"는 예상 밖의 증언을 했다. 또 한상씨의 친척은 "박한상의 다리에 이빨자국이 있다"는 제보를 했다. 머리에 묻은 피는 박씨 부부가 칼에 찔렸을 당시 흘린 피며, 다리의 이빨자국은 박씨가 칼에 찔린 뒤 고통에 못 이겨 한상씨의 발목을 물어뜯은 상처임이 뒤늦게 밝혀졌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한상씨는 거액의 유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질렀음을 자백했다.

94년 5월26일 경찰은 한상씨에 대해 존속살인 및 방화 등의 죄목을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이후 95년 8월25일 대법원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한상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상씨가 원했던 유산은 한상씨에게 단 한 푼도 상속되지 않았으며 남은 두 명의 동생에게 반반씩 상속됐다.

준비는 치밀하게
잡히면 뻔뻔하게

'박한상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95년 3월, 또 하나의 대형 패륜범죄가 발생했다. 대학교수였던 김성복(당시 40세)씨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덕원예고 이사장이었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이른바 '김성복 교수 사건'으로 명명된 이 패륜범죄는 피해자가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된 인사였고 가해자 역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였기 때문에 '박한상 사건' 못지않은 충격을 던졌다. 범행 당시 성복씨는 S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성복씨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아버지 김모씨의 자택에서 잠자고 있던 아버지의 목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성복씨는 자신의 살인을 강도사건으로 위장했지만 이후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성복씨는 사업 과정에서 빚을 지고 있었고 아버지가 죽으면 그 유산을 상속받아 빚을 갚으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성복씨는 수사관을 만나 "반드시 범인을 잡아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읍소했다. 노련한 수사관도 깜빡 속을 만한 뛰어난 연기였다. 그는 평소 추리소설을 탐독하며 완전범죄를 꿈꿨다. 성복씨는 체포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형사 콜롬보'에서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살인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학교에선 원칙주의자이자 신뢰받는 교수였던 성복씨. 그러나 그는 희대의 살인마였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성복씨의 범행이 재산만을 노린 단순 범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성복씨는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라도 내가 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의 진술을 토대로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대두됐다.

'패륜아 대명사' 박한상, 도박빚에 양친 살해후 방화
'엘리트 패륜아' 김성복, 추리소설 보고 치밀한 계획
'명문대 패륜아' 이은석, 가정불화가 부른 토막살인

당시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성복씨의 아버지는 기부를 자주했고 사회적으로 모범이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기 소신이 너무 강해 가족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아내와 자식들을 구타하고 외도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성복씨는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어찌 가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성복씨의 어머니도 "권위적인 남편이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법의 잣대는 냉엄했다.

96년 5월11일 대법원은 존속살인 혐의로 기소된 성복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나마 사형이 선고된 한상씨와는 달리 성복씨는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노출돼 왔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그리고 성복씨처럼 가정폭력을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패륜범은 4년 뒤 또 다시 매스컴에 등장했다.

2000년 5월24일. 수도권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도시인 과천의 한 공원. 이곳에서 아침 일찍 쓰레기 수거를 하고 있던 미화원은 봉투를 집어 올리던 중 기겁했다. 봉투 안에 담긴 사람의 발목을 본 것이다.

뒤이어 미화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연 실색했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은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나 있었다. 손과 발, 몸통, 대퇴부, 팔뚝 등이 차례로 발견됐다.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의 시신이었다.

지문 감식 결과 죽은 남자는 해병대 중령으로 예편한 이모씨로 확인됐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군인이었다. 토막 난 여성은 이씨의 부인인 황모씨. 황씨 역시 명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부부생활 내내 그리 화목하지 못했다. 황씨는 군사정권 시절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 이씨를 원망했다. 이씨 역시 집안일은 뒷전인 채 밖으로 나돌았다. 이들은 한 번 부부싸움을 하면 두세 달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차남 은석씨는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다.

은석씨는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은석씨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했고 명문 사립대 중 하나인 K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서울대를 고집했던 부모는 은석씨를 냉대했다. 또 은석씨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동안 면회 한 번 가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키도 작았던 은석씨는 속칭 '왕따'의 대상이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렸다. 전역 후 남몰래 다른 학과로의 전과를 준비하던 은석씨는 복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다. 참다못한 은석씨는 결국 침대 맡에 놔둔 망치를 집었다.

각방을 쓰고 있던 어머니 황씨, 아버지 이씨가 차례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은석씨는 부엌칼 등을 이용해 부모의 시신을 수십 조각으로 토막 냈다. 토막난 시신은 쓰레기봉투에 담겨 과천 곳곳에 버려졌다. 이중 일부는 소각됐다. 정부청사 인근 하천에선 숨진 이씨 부부의 머리가 발견됐다.

2001년 7월20일 대법원은 존속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은석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 판결했다. 은석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성복씨처럼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점이 양형에 참작됐다.

알고보면 부모가
패륜범들 키운다

앞서 밝혔듯 패륜범죄는 거의 매해 되풀이되고 있다. 2002년 미국 유학파였던 이모씨가 당시 유명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친할머니를 살해한 '교수 모자 살해사건'은 그 범행 동기와 잔혹함이 '박한상 사건'과 비교됐다.

또 2005년에는 신용불량자 남매가 거액의 유산 때문에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해 충격을 줬고, 2008년에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이 학교 선배와 짜고 친모를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 같은 패륜범죄는 2009년에는 58건, 2010년에는 66건, 2011년에는 68건으로 계속 증가하다가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에는 50건으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부모의 재산을 노린 존속살해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가족 내에 작용하면서 패륜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며 "가족끼리 경제적 이유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존속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곽 교수는 "살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산이나 보험금이지만 그 이전에 가족 사이에 갈등이 쌓여 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범죄를 결심한 시점에 그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해 수법이 잔인해지고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천 모자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장남 정씨의 시신은 세 토막난 채 발견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