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여고생 살인사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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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여고생 살인사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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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짓 하려고? 도박빚 때문에?

[일요시사=사회팀] 증거 확보에 난항을 겪던 '하남 여고생 살인사건'이 용의자 진모(42)씨를 체포하면서 일단락됐다. 사건 당일 자전거를 타고 현장 주변을 배회했던 진씨. 진씨는 그날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위치한 송파도서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최근 이 송파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최모(18)양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목격자가 없었다

최양은 경기 하남시 감일동 인근 고가도로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인은 자상에 의한 장기손상. 등과 목, 옆구리 등 4∼5곳을 찔린 최양은 피를 흘리며 112에 신고했다. 15일 오후 10시42분께 일이었다.

최양은 경찰과의 통화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칼에 찔렸다. 피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찰은 최양의 위치와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이에 최양은 "한전 근처 육교. 빨리 와 달라"고 짧게 답했다. 전화는 곧 끊어졌다.

경찰은 신고 6분만인 10시48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파출소와 사건 현장은 500여m 정도 떨어져 있었고, 119안전센터와 현장은 250여m정도 거리였다. 최양이 입고 있던 반소매 상의에는 피가 흥건했다. 119구조대는 최양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신고 접수 4시간여 만에 최양은 끝내 숨졌다.

최양이 발견된 고가도로는 감일2육교였다. 최양은 송파도서관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뒤 경기 하남시 감일동에 있는 한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현장과는 150여m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CCTV 분석결과에 따르면 최양은 버스에서 혼자 내렸다. 즉 범인이 도서관에서부터 최양을 따라온 건 아니란 얘기다. 범인은 캄캄한 어둠에서 범행 대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정류장 인근의 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은 "이 마을은 8시만 돼도 불이 다 꺼진다"며 "6시30분에서 7시30분 사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육교를 기준으로 최양의 집은 정류장 맞은 편 기업 사택가가 위치한 곳에 있었다. 최양이 집에 가기 위해선 고가도로 끝자락에 위치한 A 변전소 앞을 지나가야했다. 해당 변전소 관계자는 "변전소 주변에 CCTV가 설치돼있고, 변전소 입구에는 경비직원이 24시간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비직원은 일반인의 사택가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변전소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는 최양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해결하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최양이 귀가하던 도로에는 가로등이 없었고, 현장 주변에는 나무가 무성해 렌즈 시야를 방해했다. 도로 쪽의 CCTV는 가로등 불빛이 너무 세서 녹화상태가 좋지 못했다. 현장 주변 CCTV만으로 범인의 얼굴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은 최양이 숨진 당일 행적을 따라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150여m 구간에 설치된 모든 CCTV 기록을 발췌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들을 추려냈다.

숨진 최양의 지갑이 그대로 있었던 점, 성범죄의 흔적이 없었던 점, 피해자나 가족에게 별다른 원한관계가 없었던 점 등은 '묻지마 살인'의 가능성을 높였다. 때문에 한 주민은 "마을에 공장이 많은데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 한 명이 범인이 아니겠냐"는 근거 없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인적 드문 육교 살인사건…괴소문 무성
수사 10일 만에 용의자 검거…그는 왜?

복수 언론을 통해 용의자 특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각에선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숨진 최양의 학교 주변에는 괴소문이 횡행했고 '추석 때 범인이 사과와 배를 육교 위에 놓고 갔다더라'는 얘기까지 들렸다. 또 다른 주민은 "몇 가구 되지도 않는 마을인데 범인이 잡히지 않으니 무서워서 산책도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65명의 대형 전담반까지 꾸린 경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 경찰은 주변 주택가와 우범자 등을 대상으로 탐문수사 범위를 넓혔다. 차량 통행과 인적이 뜸한 고가도로를 범행 장소로 선택한 범인이 인근 지리를 잘 아는 인물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약 범인이 지리를 잘 몰랐다면 도주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기자가 파악한 도주로는 한 곳 밖에 없었다. 현장 주변은 경사진 낭떠러지인데다 불빛도 없어 도주 시 부상 위험이 있었다. 아울러 정상적으로 산을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산 밑에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사업장이 있어 신속한 도주가 불가능했다. 결국 민가가 밀집한 사택 반대편 도로가 도주로로 이용됐을 확률이 높아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 24일 한 경찰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단정 짓는 건 불가능하다"며 "수색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모두가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26일 경찰은 용의자가 체포됐음을 알렸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자동차 공업사 직원 진모(42)씨였다.

하남경찰서 수사전담반은 지난 25일 오후 7시40분께 최양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진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정류장 주변의 CCTV 영상분석 등을 통해 당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배회한 진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사건 발생 10일 만에 얻은 성과였다.

또 경찰은 진씨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를 압수, 범행 도구가 맞는지 분석하고 있다. 최초 "운동을 하러 갔다"며 혐의를 부인했던 진씨는 "금전적으로 어려워 돈을 빼앗을 생각도 있었고 성적 호기심도 있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돈이 없어서…

진씨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있으며 두 아이의 가장이다. 그러나 7∼8년 전부터 경륜에 빠져 2000여만원의 빚을 졌다. 급기야는 3500만원짜리 전셋집 보증금을 빼고 월세 30만원짜리 집으로 옮기는 등 생활이 궁핍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진씨는 술을 마신 뒤 잘못된 선택을 했다. 돈을 빼앗을 생각으로 최양을 흉기로 위협하다가 살인까지 이르게 된 것. 경찰 조사에서 진씨는 "최양이 학생인줄은 몰랐다. 피해자 유가족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울먹거렸다.

경찰 조사결과 진씨에게는 전과가 없었고, 평소 마을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다니면서 근방의 지리를 익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지난 27일 진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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