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만연한 권위주의 실태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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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만연한 권위주의 실태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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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감히? 나 국회의원이야"

[일요시사=정치팀] 약 10년 전인 지난 2004년 제17대 국회의 화두는 '탈(脫)권위'였다. 당시 국회의원 대부분은 권위주의를 벗고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국회의 시계는 다시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실용'과 '탈권위'는 온 데 간 데 없고 국회의원들의 특권의식만 높아진 2013년 국회의 현주소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 2003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당시 개혁당 유시민 의원이 의원선서를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오르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유 의원이 정장이 아닌 면바지에 캐주얼 재킷을 입고 발언대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현 경남도지사인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민주당 김경재 의원 등은 "여기 탁구 치러 왔나?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느냐"며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이날 의원선서는 연기됐다. 유 전 의원의 너무 앞서 나간 '탈(脫)권위' 정치실험은 대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다음해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탈권위에 대한 열망은 국회에 거세게 몰아 닥쳤다. 때문에 17대 국회의 최대 화두는 탈권위가 됐다.

사라진 탈권위?

17대 국회에서는 관용차로 경차를 선택한 의원들도 등장했으며, 직접 자가운전을 해 국회에 등원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원하는 의원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남색 점퍼를 걸친 단병호 전 의원과 한복 차림의 강기갑 전 의원이 등장한 것도 17대 국회였다.

하지만 약 10년이 지난 19대 국회의 풍경은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놓은 느낌이다. 국회의원 특권의 상징이던 국회의원 전용승강기는 17대 국회 개원 초인 2004년 없어졌지만, 회기 중에만 의원 전용으로 운행한다는 단서를 달아 2010년 부활했다.

회기 중 10분 이상 승강기를 기다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지각하게 되는 의원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17대 국회에서 의원 전용승강기 제도를 없애는 데 앞장섰던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당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전용)승강기 이것이 비민주적이다 어쩐다 하지만 의원들이 대화하다가 승강기 타서 대화가 연장될 수 있는데 만약 들어선 안 될 대화를 해서 정보가 새나간다든지, 뭐 그래서 승강기 타면 말 안하고 가만히 있고 이런 점도 좀 고민"이라며 의원 전용승강기 제도의 부활을 적극 옹호했다.

하지만 의원 전용승강기의 부활 이후에도 국회의원들의 지각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또 보안을 위해 의원 전용승강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원들은 수많은 언론 카메라가 즐비한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인사청탁을 받다 발각되는 황당한 보안의식을 보여줬다.

국회 내 의원 전용공간은 이외에도 많지만 대표적인 문제공간으로 지적되는 곳은 국회도서관에 있는 의원 전용열람실이다. 의원 전용열람실은 100평이 훨씬 넘는 규모지만 국회의원들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의원 전용열람실을 이용하는 의원들의 수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직원 한두 명을 상주시키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일반인들과 함께 책을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왜 국회의원들만 따로 열람실을 마련해줘야만 하는지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의원 전용열람실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국회는 이를 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국회가 정부의 에너지 절감시책에 동참하기 위해 1948년 개원한 이후로 처음으로 '노타이 본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권위주의를 벗은 모습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이날 새누리당의 모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양복 윗도리를 벗으려다 국회 사무처 직원으로부터 제지당했다.

여전히 국민에게 문턱 높은 국회
경제민주화보다 국회민주화가 시급

이미 정부 각 부처에서는 착석 시 윗도리 탈의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의원들의 웟도리 탈의와 관련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엄격한 격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이 "와이셔츠는 속옷"이라며 "속옷만 입고 국민 앞에 서란 말이냐"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선 노타이에도 반대하며 여전히 넥타이를 매고 본회의장에 출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선시대 벌어졌던 '예송(禮訟)논쟁'이 국회에서 재현됐다고 비판한다. 예송 논쟁이란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임금(효종)이 승하했는데, 계모인 대비(인조의 계비)가 얼마나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를 두고 무려 20년간이나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사건이다.

게다가 본회의장 방청석에 대한 각종 격식은 더욱 엄격하다.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잡담도 하고 덥다고 부채질도 하지만 방청석에서는 이 같은 행동이 모두 금지되어 있다. 냉방온도 규제 때문에 방청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부채질을 하면 의사진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제지를 당한다.

17대 국회에서는 탈권위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때 의원들 사이에선 자신의 가방은 자신이 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국회를 출입하며 마주치는 언론을 의식한 탓이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그런 모습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는 보좌진들이 의원들이 차에 올라탈 때 문을 열어주느라 달려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7대 국회에서 화제를 낳았던 경차 관용차도 17대 국회를 끝으로 명맥이 끊어졌다.

국회 본청의 구조도 탈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본청 정문은 출입증이 있는 국회 관계자들만 이용할 수 있고 일반인들은 국회를 삥 돌아 후문에 있는 민원실을 통해 신원 확인을 거쳐야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이 뒷문을 이용해야 하는 점은 사실상 국민들의 편의를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지만 국회는 최근 제2의원회관을 신축하면서 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최근 신축된 제2의원회관 역시 국회 정문에서 가까운 출입문은 국회 관계자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일반 민원인의 경우는 뒷문을 이용해야 하는 구조로 지어진 것이다.

결국 지난 6월 국회 운영위에서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됐지만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은 국내외 인사들의 의정관계 노출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정관계의 노출을 막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노출이 잘 되지 않는 뒷문을 국내외 인사들이 이용하게 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었을 것이다. 정 사무총장의 변명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최근 국회는 '열린 국회'를 지향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벚꽃축제 기간에 국회를 개방하고 각종 행사들을 국회 운동장에서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진국 국회와 비교하면 대한민국 국회와 국민들 간의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캐나다 국회의 경우 국회 관계자만을 위한 출입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출입구에서든 신분 확인만 하면 누구나 쉽게 출입할 수 있다. 국회 내 잔디광장은 특별한 절차 없이도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권위주의 복귀

노무현정부가 탈권위를 외쳤고 이명박정부가 실용을 외쳤던 것을 감안하면 거꾸로 되돌아간 국회의 시계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결국 국회의 자정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국회에 대한 존경은 격식을 차리고 권위를 내세운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생기는 것이 아니겠냐"며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겠다며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본회의장에 등원하고도 회의 내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딴 짓을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민들이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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