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덮칠 '강덕수 살생부' 실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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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덮칠 '강덕수 살생부' 실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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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진 질문 받는 강덕수 전 STX 회장 <사진=일요시사 DB>


'벼락부자' 회장님 비밀수첩에 정치인 빼곡


[일요시사=사회팀]  '제2의 김우중'으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이명박정부 당시 화려하게 비상했던 강 전 회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제물'로 전락하며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칼잡이(특수통을 뜻하는 검찰 은어)'의 명예를 걸고 강 전 회장을 겨누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지난 정권 실세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이제는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강 전 회장. 그가 생애 마지막 승부수로 장막 안에 가려 있던 '살생부'를 꺼내들지 촉각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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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고강도 사정작업으로 생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수천억원대 횡령·배임 의혹 수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샐러리맨 신화
구속영장 청구

지난 4일과 6일 모두 두 차례에 걸쳐 강 전 회장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사안이 중하고 STX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자금 투입 규모가 10조원에 이르는 점 등을 볼 때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변모(60)씨, 그룹 경영기획실장 이모(50)씨, STX조선해양 CFO 김모(58)씨 등과 공모해 STX중공업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등 회사에 약 3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회사자금 540여억원을 빼돌린 혐의와 회계를 허위 처리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꾀한 혐의를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3명에게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선 조사에서 강 전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상 판단이었을 뿐 고의로 손실을 끼치거나 법인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서는 실무를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CFO 김씨가 강 전 회장의 개입 사실을 일부 부인하고 있어 혐의 입증에 난항이 예상된다.

  
▲ 취재진 질문 받는 강덕수 전 STX 회장 <사진=일요시사 DB>

이날 검찰은 "STX조선해양과 STX건설 등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조3000억원을 분식회계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부품·자재·원료의 가격을 실제보다 낮춰 장부에 기재한 뒤 대손충당금을 적립하지 않는 수법 등으로 부실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강 전 회장이 분식회계를 직접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청구된 구속영장에는 분식회계(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는데 검찰은 강 전 회장 등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후 대질심문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추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구속 여부와 맞물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소문만 무성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미 검찰은 복수 언론을 통해 강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압박하는 것이 '특수수사'의 관행이라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번 수사는 기존 대기업 수사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례적 수사
로비 규명 방점

현재 검찰은 소위 '강덕수 리스트'로 불리는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기업 사정작업에서 횡령이나 배임이 아닌 뇌물 제공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정황이 확실하거나 혹은 다른 의도가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어느 쪽이 됐든 강 전 회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인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지난 6일 검찰은 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와 관련해 강 전 회장이 관리하던 공무원 100여명이 포함된 선물리스트를 확보했다고 알렸다. 같은 날 검찰은 강 전 회장을 불러 선물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검찰은 이들 중 일부 공무원이 강 전 회장에게 사업상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선물을 받았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 수천억 배임·횡령 구속영장 청구
정관계 로비 의혹…MB정권 실세들 거론

강 전 회장은 그간 각종 기업 인수전에 뛰어들어 몸집을 불린 뒤 회사를 키워 부채를 갚는 경영스타일을 고집했다. 때문에 선물을 받은 공무원 중 일부는 대출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드러난 로비 규모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강 전 회장은 검찰이 STX그룹을 압수수색했을 때 디가우징(Degaussing) 기술로 컴퓨터 파일들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력을 이용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전문가를 동원한 고도의 증거인멸인 셈이다. 이는 강 전 회장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을 증폭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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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수 전 STX 회장 <사진=일요시사 DB>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강 전 회장이 직접 로비에 개입했거나 가담한 증거를 남겨뒀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이 사정기관의 타깃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년인데 그 사이 (금품로비에 대한) 방어는 다 끝나지 않았겠냐"고 의문을 표했다. 예컨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STX그룹이 세계 유례가 없는 수직성장을 한 배경을 놓고 그간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복수 언론 관계자는 "STX 관계사 직원으로부터 정·관계 로비 리스트와 관련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중 특혜가 의심되는 거액대출 및 해외건설 수주와 맞물린 의혹은 이명박정권 실세들에 대한 로비설로까지 확대됐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강덕수 리스트', 실체가 있을까.

우선 강 전 회장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까지 오른 나름 자수성가한 오너다. 널리 알려진 대로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 순위 10위권에 안착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100배 이상 늘었다.

강 전 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다. 그는 굵직한 매물을 먹어치우면서 사세를 키웠고, 한때 한국 부자순위 20위권에 들기도 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존경받는 구루'였던 강 전 회장. 그러나 강 전 회장의 숨길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바로 '인맥'이었다.

태생적 한계
로비로 극복?

지난해 한 재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강 전 회장 주변에 유명한 인사가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상고 출신에 순수 국내파인 강 전 회장은 주류 재벌가와 동떨어진 성장환경 탓에 재계 내부 입지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 취재진 질문 받는 강덕수 전 STX 회장 <사진=일요시사 DB>

그런 그가 이명박정부 들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경제단체에 입성한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이어 한국무역협회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명문 유치원에 다닌 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안면을 익힌다.

또 해외유학 등 '스페셜 코스'를 밟으면서 본인들만의 탄탄한 인맥을 형성한다. 하지만 강 전 회장은 이른바 'SKY' 출신도 아닌데다 말단부터 시작해 속된 말로 '밑천'이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룹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강 전 회장은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경제단체 임원직에서도 물러났다. 서로가 경영권을 챙겨주는 재벌가 풍속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STX그룹 한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강 전 회장이 줄을 댄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정권 실세들과 STX그룹 간의 묘한 관계다. 표면상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차례 수행하는 등 정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12년 STX그룹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 2300억원을 융통했고 산업운용자금 1800억원도 긴급 확보했다. 다른 민간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유독 '퍼주기'로 STX그룹을 도왔다. 지난 정권 비호설이 나온 주된 배경이다.

공무원 대거 포함된 '선물 리스트'
2년 전부터 내사…정치권 좌불안석

그간 산업은행은 각 정권마다 최측근이 수장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정부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계열사들이 모두 나서서라도 (STX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강 전 회장의 독자적인 판단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찌됐든 강 전 회장은 지난 정권으로부터 마지막 호의를 받았으나 끝내 정치권은 그를 버렸다. 생각만큼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 전 회장의 공식적인 입장은 "난 로비를 하지 않았다"이다. 그는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묻자 "해외 출장이 많아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강 전 회장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로비를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그 누군가로 의심 받는 사람이 바로 이희범 전 산업부장관이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영입한 이유를 수상히 여기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을 지냈다.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인사이면서 2010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해 이명박정부와도 인연이 깊다.

검찰은 당시 그룹 안팎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강 전 회장이 이 전 장관을 로비창구로 영입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는 이 전 장관을 통해 '검은돈'이 정치권에 살포됐다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이 전 장관의 신분이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도 점쳐진다. 강 전 회장과 등을 돌린 뒤 LG상사로 둥지를 틀었던 이 전 장관 입장에선 이만한 악연이 없는 셈이다.

키맨 이희범
윗선은 박영준?

강 전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과 맞물려 또다시 등장하는 인물은 '왕차관' 혹은 '미스터 아프리카'로 알려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다. 앞서 STX그룹은 아프리카 가나의 국민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봤다.

'가나 하우징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사업은 정권 실세인 박 전 차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현지 기공식에 참석한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측근 중 1명이다. 여러 정황상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가 의심됐다. 이명박정부가 주도했던 자원외교의 한 축이 STX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강 전 회장 측은 '박 전 차관이 프로젝트를 주선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한 바 있다.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내사에 들어갔지만 아무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손을 털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정부는 정국의 고비 때마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사정작업으로 난맥상을 돌파했다. CJ와 효성 등 지난 정권과 연분이 깊었던 기업들은 예외 없이 '칼잡이'의 제물이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기업과 정치권을 동시에 친 특수수사는 없었다. 이번 수사 결과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수사의 남은 성패는 강 전 회장이 쥐고 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명백히 밝힐 사람은 권력에 남은 빚이 없는 강 전 회장뿐이다. 재기가 어려워진 강 전 회장 입장에서 '플리바게닝'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줄도 끈도 다 떨어진 그가 내밀 '마지막 카드'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진태호' 첫 대기업 수사
강덕수 수사는 물타기?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에 대한 사정작업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개시되는 대기업 수사다. 그러나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검찰 안팎의 시선은 기대만큼 곱지 않다. 이유가 있다.

강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부터 예고됐다. 각종 사업과 관련한 투서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문제는 조용하던 검찰이 뜻밖의 시점에 칼을 빼들었다는 점이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수사 의뢰 7일 만에 압수수색을 하는 등 초고속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것만 봐도 그렇고, 일부러 피의 사실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것도 그렇고, 살아있는 오너가 아닌 죽은 오너를 겨냥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국면전환용 '물타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으로 메가톤급 역풍을 맞았던 검찰이 정·관계 로비 수사를 발판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때문에 검찰이 '실체 없는 로비 의혹으로 변죽만 울리다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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