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천하’로 끝난 ‘한예슬의 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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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천하’로 끝난 ‘한예슬의 난’ 진짜 이유

일요시사 0 2359 0 0
한예슬의 ‘돌출행동’이 한국 드라마 제작현장에 일침을 가했다. 문제는 ‘생방송 연출’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한국드라마 제작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촬영당일에 나오는 ‘쪽대본’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연예인들 제작환경에 솔직한 심경 토로
영화 한편 일주일 만에 찍는다는 비판도

한예슬의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 촬영 거부 및 미국 도피 소동으로 인해 열악한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 관심이 다시 모아지고 있다. 쪽대본이 난무하고 며칠 밤을 새워야 방송 날짜를 맞추는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은 이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악조건을 참으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제작환경

실제로 한 연예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셋째주가 되면 대부분의 드라마에 쪽대본이 등장하고 일주일에 3~4일은 밤샘작업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라며 “이렇게 찍지 않으면 도저히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한예슬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한예슬이 제기한 불만은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의 총제적 문제이고, 언제 건 다시 터질 수 있는 ‘화약고’라는 점에서 한예슬이 총대를 멨다고 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예슬 같은 경우는 언론을 통해서 제기된 문제였을 뿐 실제 신세대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은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과연 한예슬 파문이 단순히 이기적인 철없는 여배우의 돌발행동이었을까? 결론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제작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한예슬은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대신해서 총대를 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예슬 사건을 두고 연예인과 작가들은 그동안 쌓아왔던 드라마 제작 현실에 대한 자신만의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배우 권상우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적어도 15부까지는 완벽하게 나와야 한다며 드라마 전체의 70∼80%의 대본이 완성돼야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관련법이 마련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의 대부분은 대본이 늦게 나오거나 그 대본을 둘러싸고 손발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기획 때 캐스팅과 투자가 원활하도록 기획안과 초반 3부까지의 대본까지만 신경 쓰는 몇몇 제작진도 봤다. 한예슬씨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남자인 나도 매일 밤샘 촬영을 하면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라는 한계를 느낀 때도 있다”라며 드라마 제작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드라마작가 A씨도 “작가들도 분명 각성할 부분이 있다”라며 “환경만 탓하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쪽대본 ‘생방송 드라마’라는 신조어에 작가들이 일조한 사실을 인정하고, 배우들이 대본을 숙지할 수 있도록 집필활동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사전 제작을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전 제작 드라마를 ‘이미 식어버린 음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시청자 피드백을 의식한 대본과 드라마를 원한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작가의 순발력 역시 필요한 때이다”라고 역설했다.

'3일 천하'로 끝난 '한예슬의 난'은 열악한 환경을 받아들였던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많은 연기자들은 촬영 펑크 및 미국 도피라는 한예슬의 초강수에 대해서는 비난하지만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는 동조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과연 살인적인 드라마 제작 시스템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드라마 관계자는 현재 지상파 3사 경쟁구조 속에서는 힘들다며 지상파 3사가 시청률을 위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반영하는 한국적인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실제로 현재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드라마의 줄거리와 결론을 바꾸곤 한다. 또한 외국처럼 사전 제작제를 시행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이에 한 드라마 관계자는 "지상파 3사 편성을 받아야 촬영을 시작할 수 있는 열악한 한국 드라마제작사 여건상 사전 제작제는 이상적인 주장이다. 일단 만들어놓고 편성을 제대로 못 받으면 몇 십억 원이 되는 손해는 제작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없다?

일례로 김하늘 ‧소지섭 주연의 <로드 넘버원>은 30억원에 육박하는 제작비로 사전 제작해 한 자릿수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에 제작사는 “사전제작은 모험을 감수해야한다”면서 “시청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즉, 50분짜리 드라마를 주1회 방송하는 일본이나 제작기간이 우리보다 훨씬 여유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 시청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예슬은 이 점을 문제 삼고 싶었겠지만 그 표현 방식이 ‘유아적’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한 문화평론가는 "1주일 70분짜리 2회를 방송해야 하는 현재 같은 시스템이라면 제2의 한예슬이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 한편을 1주일에 찍는 셈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지상파 방송사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1주일에 한편만 방송하든지 아니면 시간을 50분으로 제한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드라마를 단순히 수익구조로 보지 말고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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