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풀린 ‘1억달러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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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풀린 ‘1억달러 수수께끼’

일요시사 0 2277 0 0
재계에 놀라운 사건이 회자되고 있다. 모 기업의 회삿돈을 빼돌린 범행인데, 그 전모가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끈다. 병상에 누운 회장과 악랄한 그의 후처,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가신 등이 주인공. 스토리 또한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치매 오너’ 정신 오락가락하자 후처-비서 짜고 횡령
1300억 빼돌려 자산가 행세…전처 자녀들 고소 덜미

A사장은 몽골에서 잘 나가는 한국인 사업가다. 몽골 한인상공인회장, 몽골 한인회 부회장 등의 대외 직함을 맡았고, 지난해 6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몽골 교민 투자자문관으로 위촉할 정도로 몽골 교민사회에서 유명인사다. 현지에서 부동산 개발업체 M사를 경영한 A사장은 몽골 최고층 빌딩의 시행을 맡아 더욱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성공 이면엔 놀라운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돈으로 몽골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사업가 행세를 한 것이다. A사장이 추악한 두 얼굴을 드러낸 시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골서 ‘이중생활’

2001년 A사장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홍콩 등 해외에 거점을 둔 H해운 B회장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B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신임을 얻은 A사장은 B회장이 병상에 눕자 숨겼던 본성을 드러냈다.

B회장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세가 악화돼 치매 증세까지 보였고, 이 사이 A사장은 회삿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외국계 은행 홍콩지점에 2개 회사명의로 예금계좌가 있는 것을 이용, 예금 인출 서명권자 명의를 바꿔 이 홍콩지점에서 인출하는 수법으로 B회장이 병상에 누워 있던 2001∼2005년 4년 동안 회사자금 1억1500만달러(당시 약 1330억원)를 빼돌렸다.

A사장은 이 돈의 일부인 3000만달러(약 350억원)를 가지고 몽골로 건너가 호텔, 골프연습장 등 여러 사업을 벌였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한인상공인회장, 한인회 부회장 등을 맡아 한인사회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의 이중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B회장이 2007년 75세로 사망하자 상속권자인 자녀들은 재산 분배 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증발한 사실을 알게 됐고, 갑자기 연락을 끊은 A사장을 의심했다. 자녀들이 수차례에 걸쳐 사실 확인을 요구했으나 A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들은 결국 A사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몽골에 있던 A사장에게 여러 차례 귀국할 것을 종용했지만 이 역시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인터폴을 통해 A사장을 수배하고 몽골 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몽골 외국인관리청은 지난 5월 A사장을 체포해 검찰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지난 6월 H해운에서 1억1500만달러의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A사장을 구속했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A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3000만달러는 B회장이 나한테 주기로 약속한 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인출된 예금액 1억1500만달러 중 A사장이 사업에 쓴 3000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8500만달러(약 980억원)의 행방이었다. 검찰은 A사장과 공모한 사람이 있다고 보고 추적에 나섰고, 이 결과 A사장의 배후에 회장 후처 C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지난달 19일 A사장과 공모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C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B회장이 전처와 결별한 뒤 재혼한 C씨는 범행을 공모·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이 치매 증세로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당시 비서였던 A사장과 범행을 모의했다. C씨는 B회장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지자 회사명의 계좌 예금인출 서명권자 지위를 사임한다는 사임서와 자신을 남편의 회사 대표이사이자 새로운 예금인출서명권자로 선출하는 내용의 이사·주주합동총회 회의록 등을 위조했다. C씨는 B사장과 함께 이를 증거로 삼아 남편의 회사 권리관계에 관한 등록업무를 관장하는 미국 소재 L사에 권리 관계 변동을 신청해 문서가 진짜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악랄한 계략으로…

C씨는 인출한 돈 가운데 3000만달러를 B사장에게 주고, 나머지 8500만달러를 스위스 등 해외 은행 10여 계좌에 나눠 예치한 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의 한 자산관리회사에 재산 관리를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C씨는 빼돌린 돈의 일부를 자신의 성형비용 등으로 사용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B사장과 C씨의 공모 여부를 수사 중이나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사장은 “C씨 주도로 예금 인출 서명권자 명의를 바꿨다”고 말한 반면 C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모두 B사장 혼자서 한 일”이라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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