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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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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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법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정도를 넘어섰고, 국회의 사법개혁 의지는 요원하다. 사법개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지난해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 판사는 그 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발령 후 이 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 좋은 취지로 한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판사는 이에 항의하다 겸직해제됐다.

 

하자고만 하고

요란한 빈수레

 

이 판사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법관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법농단 사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후 사법 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정운호 게이트’ 및 법원 집행관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동원, 행정처 비자금 조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특허소송 관여 ▲상고법원 추진 위한 정치권·언론 로비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 등 공무상 비밀 유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제청심판 결정 관여 등 의혹만 1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법 농단의 핵심 축으로 대법원과 행정처를 꼽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당시 행정처가 이행했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번번이 부딪혔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 ‘줄기각’이란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은 기각률이 일반 사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불씨, 사법 농단 

청구·기각 반복…법원-검찰 ‘영장 대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일,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박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다.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과 달리 일반사건은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이 발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2017년 5년간 일반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평균 90.2%를 기록했다. 

 

영장이 완전히 기각된 비율은 0.8∼1.0% 사이였고, 일부 기각률은 7.4∼10.4%로 나타났다. 일반사건에 대한 영장기각률이 약 1%인 점을 감안했을 때 사법 농단 수사서 유독 영장 발부가 이뤄지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전직 수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 횟수와 사유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 중인 차량에 한해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부장판사는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이후 검찰은 지난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아닌 주거지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소재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서다. 그러나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 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이번이 4번째였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은 대결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법원은 줄기각을 통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사법농단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 여야 의원 관계없이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을 세운 이유다.

 

 

 

지난 10일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열린 법사위 국감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농단 사태를 지적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사법 농단 의혹(법관사찰·재판거래)과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줄기각, 사법부 개혁 등을 따져 물었다. 

 

대법원장의 용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감 질의에선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검사로 일했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제가 법조 생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여태까지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정조준한 말이었다. 이어 백 의원은 안철성 행정처장에게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알고 있느냐”라고 질문했고, 안 처장은 “그런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행정처 김창보 차장과 이승련 기획조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 의원은 “이런 기각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쐐기를 박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송곳 질의를 이어갔다. 주 의원 역시 검사 출신이다. 

 

주 의원은 “법원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있어서 일반 국민에 대한 사건과는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라며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조직 보호,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 의원은 “사법농단을 밝히자는 거냐, 덮자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법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개혁하고 용퇴해야 한다. 사법부를 위해 순장하라”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평화당 박 의원은 “국민 73%가 특검 도입을, 77.5%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지지한다”라며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현재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한국당 주 의원 역시 “지금 수사로 법원에 기소하면 국민 여론과 같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긍정적이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 vs 법

힘겨루기

 

국회 법사위원들의 특별재판부 주장은 사법부 개혁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의원들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협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원 구성 합의를 쉽게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사개특위는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서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회법상 본회의서 특위구성결의안이 통과되면 5일 이내에 원 구성을 해야 한다. 지난 7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사개특위원 구성이 이번 달 안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말까지 이번 달을 포함해 약 두 달 정도 남았다. 사개특위가 다룰 현안 역시 만만치 않다. 

 

사개특위는 사법농단 규명을 비롯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개특위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회 스스로 사법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일 SNS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조 수석은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사항인 만큼 국회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며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속한 사개특위 구성을 당부한 것이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리 검토 문건 작성 사실 등을 봤다”며 “법원개혁도 피할 수 없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국감이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연말까지 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국회뿐 아니라 대법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법원은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재판 중심 사법행정’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대법원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만큼 상응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필요시 6개월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대법원 개혁 투트랙…가능성은?

상황 진척 없어, 국민적 비판 임계점 

 

위원회는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 4대 개혁과제 관련 안건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된다.

 

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일까지 총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최근까지 행정처의 사무처 변경 권고안과 법관 인사 이원화 완성, 영상재판 등 스마트법원 4.0 사업, 검찰개혁, 판결문 공개 확대 사안 그리고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 등을 도출해 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대법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향후 개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위원회에서 건의된 사항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곧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에서 법사위 국감이 열린 다음날 사회원로와 시민사회, 민중단체, 정당 등 각계 단체 인사 300여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사법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이날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사법농단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엔 기존의 재심제도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다”며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전관예우 하는 사태가 계속되면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담당 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 대표는 이어 “이번 정기 국회서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회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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