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현대판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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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다닥’ 현대판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일요시사 0 1074 0 0
고시원에 고시생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가 발전할수록 성장만큼 분배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사회의 소외된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호응을 얻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는 존재한다평소에는 사각지대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대부분의 경우 사고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다.
 

2014년 4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서 침몰했다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과 일반인 등 300명이 넘는 승객이 수장됐다전 국민은 TV를 통해 중계된 세월호 침몰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과 동시에 사회 적폐의 민낯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났다그 사이 한국 사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았다전직 대통령과 비선 실세가 진행한 일은 도려내야 할 적폐로 지목됐다사회 모든 분야서 청산해야 할 문제가 쏟아졌다.

소외되는 약자
그들만의 세상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적폐 청산을 전면에 내세웠다이 과정서 국민들은 생각지도 못한 정치사회경제 분야는 물론 생활 적폐와 맞닥뜨렸다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문제들로 사회는 진통을 겪었다.

문재인정부는 경제나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이전 정부와 노선을 달리했다문 대통령은 첫 번째 대선 출마 당시부터 포용적 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배제적 성장과 달리 성장의 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지난 9월에는 포용국가전략회의에 참석해 많은 나라들이 성장에 의한 혜택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포용적 성장을 주장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서도 포용이 보편적 가치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포용국가는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내세운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확장한 개념이다.

복지를 통해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포용적 성장은 문재인정부 3대 경제기조인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바탕 아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는 중이다이 과정서 사회의 소외된 사각지대가 불의의 사고를 통해 불거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고시원쪽방촌여관 등 공간적 사각지대에 사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 안타까움은 배가 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서 화재로 1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처음 소식이 알려졌을 때 누리꾼들은 고시원에 살고 있던 투숙객들의 안전을 빌었다안전에 취약한 고시원의 구조와 투숙객들의 상황이 맞물려 사회적 약자가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시텔 ‧쪽방촌 ‧여관 ‘신 빈민가 ’
저렴한 거주비에 목숨 내놓고 살아

당초 고시원은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시생을 위한 공간이었다고시원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던 고시생의 수요에 따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이 때문에 주로 학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고시생들에게 고시원은 주거공간인 동시에 학습공간으로의 역할을 했다.

욕실과 부엌이 딸려 있는 원룸과는 달리고시원에는 침대와 책상만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주방과 화장실은 따로 떨어져 공용으로 이용해야 하는 게 대부분이다창문이 없고 얇은 벽 때문에 옆방의 대화가 들리는 등의 문제는 고시원 투숙객들의 주요 불만사항이었다그럼에도 투숙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원룸 등과 비교해 저렴한 가격은 하루 살기 버거운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공시생이 늘어나자 일부 고시원은 고시텔(고시원+호텔)이라며 내부 환경을 개선했다돈이 더 들더라도 욕실과 화장실이 방에 딸려 있는과거보다 나은 주거공간을 선호하는 공시생들을 위한 변화였다.

그 사이 고시원을 찾는 이용자들의 연령대는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고시생들의 전유물이었던 고시원은 값이 싸면서도 당장 내 몸 하나 뉘일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곳으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각종 고시원 관련 사건사고의 피해자가 중장년층이 많다는 점은 고시원이 최근 들어 빈민층의 주거지로 변모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방증이다.
 

▲ 검거되는 종로여관 방화 용의자 &amp;amp;lt;사진=사진공동취재단&amp;amp;gt;▲ 검거되는 종로여관 방화 용의자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같은 사실은 종로 고시원 화재 사건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지난 9일 오전 5시경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고시원서 불길이 치솟았다이날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소방관 173명과 장비 52대가 투입됐고 오전 7시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됐다.

이 고시원에는 주변 사업장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화재 당시 사상자들 또한 대부분 50대 이상의 남성들이었다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사망자 중 최연소는 35최고령은 79세였다사상자는 대부분 생계형 노동자로말 그대로 일을 하고 돌아와 고시원에선 잠만 자고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계속되는
불의의 사고

해당 건물은 지상 3지하 1층 규모로, 1층은 일반음식점, 2~3층은 고시원으로 이뤄졌다소방당국은 화재가 3층 출입구 쪽에서 발생해 대피로를 막았다고 보고 있다최초 발화지점은 301호로 추정 중이다.

301호 거주자는 전기난로 전원을 켜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전열기서 불이 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옷가지와 이불로 불을 끄려 했지만 주변으로 옮겨 붙는 바람에 대피했다는 것.

문제는 이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는 점이다노후 건물인데다 과거 안전시설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던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다중이용업소 특별법에 따르면 2009년부터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나 문제의 고시원은 그 이전인 2007년에 지어졌다이번 사건으로 고시원의 실상이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시원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의 안전대책이 뒤늦게 생기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오갈 데 없는 중장년층과 외국인 노동자가 고시원으로 몰리면서 고시생 없는 고시원’ ‘(판자촌’ ‘현대판 판자촌이라는 말이 새롭게 쏟아졌다.
 

지난 6월 도시연구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151553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시원의 평균 월세는 328000가구 평균 소득은 약 180만원이었다국내 전체가구 평균소득인 371만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연달아 겪은 도심 청년층이 빈곤주거지로 밀려나고 그대로 나이가 들어 현재까지도 고시원에 사는 주요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외환위기 당시의 가난한 청년이 지금의 가난한 중장년이 됐다며 고시원의 폭증 시기는 지났지만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낙후된 시설
피해는 커져

일각에선 이미 수차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소방청의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 3035건 중 252(8.3%)이 고시원서 일어났다또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고시원쪽방 등 비주택에서 사망했다는 통계자료도 나왔다.

2004년 1월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2가 상가건물 3층의 고시원서 촛불로 인해 불이 났다이 사고로 투숙객 4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는 8명에 달했다. 2005년 12월에는 마포구 노고산동 신촌 로터리 인근 고시원서 불이나 1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2006년 7월 송파구 잠실동 고시원서 일어난 화재사건은 21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008년 10월에는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서 희대의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방화와 흉기 난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피해가 막심했다고시원에 살고 있던 A씨는 미리 준비한 지포라이터용 휘발유 2통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잠들어 있던 투숙객들은 불이야라는 외침과 연기에 놀라 방을 빠져나왔다.

A씨는 연기를 피해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심지어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부 투숙객들을 찾아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이 사건으로 6명이 사망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살기가 싫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A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언론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범행을 저지른 A씨의 묻지마 살인’ 행각에 주목했다그리고 이 과정서 사실상 무허가 숙박시설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고시원의 실상이 조명됐다사건 당시에도 언론은 고시원이 원래 용도보다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한 내부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매번 대책 세운다지만…
불 났다하면 대형사고

앞서 2008년 7월에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고시원서 방화로 인한 화재 사고가 발생했지만 스프링클러 등 장비가 설치돼있지 않고 고시원 방 칸막이가 화재에 취약했던 탓에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8년에 연달아 일어난 화재 사건으로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과거에 지어진 건물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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