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이주여성들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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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는 이주여성들의 현실

일요시사 0 1907 0 0

‘남편 손바닥 안’ 도망칠 곳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베트남 국적의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SNS가 발칵 뒤집혔다. 누리꾼들은 영상 속 여성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폭력에 경악했다. 결국 영상 속 남성은 경찰에 체포됐다. 문제는 이 같은 폭행 사건이 결혼이주여성들 사이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6일, 전남 영암경찰서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자는 베트남 국적의 A씨의 지인으로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A씨가 남편에게 심하게 폭행당했다는 내용이었다.

 

A씨의 폭행 피해 영상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2분33초가량의 영상서 A씨는 남편에게 뺨을 맞고 발로 걷어 차이고 주먹으로 머리와 옆구리 등을 얻어맞았다. 두 살 남짓한 아이가 “엄마, 엄마”를 외치며 울음을 터트리다가 폭행 장면에 놀라 도망치는 장면도 고스란히 담겼다.

 

결혼하면

 

경찰에 체포된 남편 B씨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아내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였다”고 말했다.

 

B씨는 3년 전 한국서 만난 A씨가 베트남서 자기의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자 확인 검사를 했다. 아들이 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B씨는 A씨와 혼인신고를 했고, 지난달 16일부터 전남 영암군의 원룸서 함께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베트남뉴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A씨는 B씨와 이혼한 뒤 아이 양육권을 갖고 한국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A씨는 이날 오후 자신을 찾아온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 관계자에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남편과 함께 살려고 한국에 왔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며 “힘든 이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베트남에 있는) 엄마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서 또 럼 베트남 공안부장관을 만난 뒤 자신의 SNS에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폭행에 대해 사과드렸다”며 “한국 거주 베트남 국민의 안전과 인권보호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도 A씨를 직접 찾아가 위로의 뜻을 표했다. 진 장관은 “베트남 현지 가족들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위로했다.

 

총리, 여성가족부 장관, 경찰청장까지 나서서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을 엄정히 수사하고 제2, 제3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당부했다.

 

베트남 이주여성 무차별 폭행

“아들과 한국서 살고 싶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실제 결혼이주여성의 열악한 인권 실태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사회 문제로 제기된 바 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많은 수의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필리핀 국적의 결혼이주여성이 부부싸움을 하다 살해당한 일도 발생했다. 50대 남편 C씨는 21세 연하의 30대 아내 D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르고,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 두 사람은 7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1심 재판부는 살인죄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로, 피고인은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해 사회적으로 비난이 크다”며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피해자가 고통 속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제결혼 건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2만건을 상회하고 있다. 2013년 2만5963건, 2014년 2만3316건, 2015년 2만1274건, 2016년 2만591건, 2017년 2만835건 등이다.

 

국제결혼 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의 결혼이다. 2013년 1만8307건에서 2014년 1만6512건으로 줄어들었다가 2015년 1만4677건, 2016년 1만4822건, 2017년 1만4869건으로 비슷하게 유지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6월 결혼이주여성의 실태를 조사한 외부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7년 7∼8월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결혼이주여성의 국적은 베트남 출신이 42.4%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중국·필리핀·일본·캄보디아 등의 순이었다.

 

이들은 평균 16.37년 동안 한국에 살았다. 결혼이민비자를 소지한 여성이 232명, 영주자격 취득자는 113명, 혼인 귀화자는 258명이었다.

 

조사 당시 응답자의 70.7%가 무직 상태였고, 60%는 개인 소득이 없었다. 인권위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이들 중 38%(147명)은 가정서 폭력 위협을 당했고, 19.9%(77명)는 흉기로 협박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0명 중 4명 가정폭력 시달려

사회적 인식과 법·제도 허점

 

또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7명(68%)이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등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 81.1%는 가정서 욕설을 듣는 등 심리·언어적 학대를 당했고 필요한 생활비나 용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33.3%에 이르렀다. 이들은 정신·육체적으로 학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가정폭력을 경험한 결혼이주여성 중 140명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창피하고’(35명),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으며’(35명), ‘외부로 알려도 아무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29명)를 이유로 들었다.

 

결혼이주여성 3명 중 1명은 결혼이주민을 위한 상담전화나 쉼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을 위한 주요 사회서비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물론 법적·제도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의 이현서 변호사는 지난 9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주여성들에 대한 법제도의 허점에 대해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원인으로 ▲인식 문제 ▲제도의 취약성 ▲교육의 부재 등을 꼽았다. 이어 결혼중개업체 등을 통해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성 배우자들이 아내를 결혼의 수단이나 출산의 수단 등 도구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적 취약점과 관련해서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체류자격을 가져야 하는데, 그 존부가 현재 남편에게 거의 다 권한이 쥐어져 있는 상태라 남편은 체류자격을 볼모로 권력을 휘두르고 여성은 거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남편 소유?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지난 9일 오전 현안 서면 브리핑서 법적·제도적·예산지원을 통해 결혼이주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결혼이주여성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대부분 남성 배우자로, 가정폭력으로 혼자 속앓이했던 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이어 “문재인정부는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 설치 근거를 마련했고 올해 전국 5개 기관에서 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여성의 성·가정폭력 피해 현실을 되돌아보고 결혼이주민을 옭아매는 체류권 보장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일요시사(http://ww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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