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악질’ 악녀 캐릭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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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악질’ 악녀 캐릭터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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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 최고의 남자 배우들은 악역을 통해 성장했다. 힘세고 멋있는 악역은 작품의 수준을 높였다. 주인공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악역에 대중은 열광했다. ‘나쁜 남자’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악역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최근 그 흐름이 바뀌는 추세다. 성미가 사납고 못된 여성들을 연기하는 여배우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불륜·갑질·협박·살인 등 옳지 못한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며,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여배우들을 짚어봤다.
 
 

‘불륜녀’ 이미지는 국내 여성들 사이서 가장 치명적이다. 남의 남자를 뺏는 여자를 어느 누가 좋아할 수 있겠나. 인지도가 있는 여배우들은 불륜녀 역할을 기피했고, 기회는 신인에게 주어졌다. 그 기회를 붙잡은 건 이름도 생소한 배우 한소희.

뜨려면?

최근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서 여다경 역을 맡아 열연 중인 한소희에게 다수 언론과 SNS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내고 있다. 현재 한소희가 맡고 있는 역할에 ‘과몰입’해서 또는 과거 행적을 굳이 들춰내며 ‘욕하면서 보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어찌됐든 그의 파괴력은 분명히 확인된다.

여다경은 극중 지선우(김희애 분)의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와 불륜 관계다. 결혼한 상대와 바람을 피다 못해 임신까지 했고, 상대의 병원까지 찾아가 도발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비록 지선우의 파격적인 고발로 인해, 모든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여다경은 이태오와의 결혼, 출산마저 성공했다.

여다경의 행적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자신이 불륜 상대인 걸 알지 못하는 지선우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독하게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임신 뒤 혹여 자신이 버림받을까 위태로워하다 불안감에 못 이겨 내연남을 협박한다. 자신의 가족 앞에서 모든 것을 폭로하는 지선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는 악을 지르며 흐느낀다.

결혼 이후 지선우를 향한 미안함이 조금도 없는 당당함 역시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행태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일삼는 ‘천하의 나쁜 X’를 재현 중인 한소희의 날 선 연기는 예사롭지 않다. 밉지만 계속 보게 할 뿐 아니라, 일부 시청자들은 ‘부모의 재력과 젊은 여성의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다경이 왜 불륜을 저지르는지 안타깝다’며 ‘불행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는 식의 묘한 동정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서 주목받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혜준도 악녀로서 명성을 떨친다.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진 해원 조씨 가문의 수장 조학주(류승룡 분)의 딸이자, 어린 중전이 김혜준이 맡은 역할이다.

누구보다도 강렬한 야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한 재주로 음모를 꾸미는 여인이다. 아이를 갖지 않았음에도 임신을 가장 하고, 다른 여인들의 아이를 빼앗아 딸이면 죽이고 아들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충격적인 행태를 서슴없이 벌인다.

그런 행동에 죄책감 따윈 없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아픔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록 악행의 장기적인 플랜까지는 세우지 못해, 모든 것이 발각되고 좀비가 돼 서민과 같이 날뛰는 신세가 되지만 <킹덤>서 보여준 김혜준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킹덤1>서 ‘발연기’라 불릴 정도로 연기력 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1년 뒤 <킹덤2>에서는 중전의 악함을 훌륭히 표현해내며 대중의 비판을 뒤엎었다.

특히 세도가의 딸로 태어났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한 상처로 인해 뒤틀린 욕망과 복수심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었던 중전을 향해 이례적인 공감도 쏟아졌다.

신예뿐 아니라 중견급 배우들도 품격 있는 악역 연기로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언제나 최고의 연기력을 선사하는 전도연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서 색다른 ‘살인마’로 눈길을 끌었다.

‘인기 만발’ 여배우들이 탐내는 악역
불륜·살인·협박에도 대중의 관심 ↑

<지푸라기>가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흥행에는 실패했어도, 그를 향한 평단의 호평은 뜨겁기만 하다. 극중 전도연이 맡은 연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미란(신현빈 분)을 물심양면으로 챙겨주는 것은 물론 치밀한 전략으로 일확천금마저 얻게 했던 연희는 결정적인 순간, 칼끝을 미란에게 돌린다. 미란의 온몸을 묶고 ‘큰 돈 앞에서는 아무도 믿지 말랬어’라는 대사를 던지는 연희의 얼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형사(윤제문 분)를 죽인 뒤 태영(정우성 분)에게 ‘아니 내 허벅지를 만지길래’라며 태연하다는 듯 미소 짓는 연희의 얼굴 역시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이다.

돈 앞에서 ‘인간의 존엄’ 따윈 없는 짐승의 얼굴을 그만의 해석을 통해 전에 없던 얼굴로 형상화한 전도연을 최고의 연기자로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MBC 월화드라마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하 <365>)의 김지수는 ‘사이코패스’ 연기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마치 게임을 연상시키는 이 드라마서 김지수는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11명의 인물들에게 ‘리셋’을 제안한 초대자 이신 역을 맡았다. 초반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 이신은 최근 방송분서 완전히 흑화한 얼굴로 등장했다.

주요 인물들의 생사의 운명을 알고 있는 이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을 시험하는 등 악녀의 본색을 드러낸다. 선과 악을 동시에 넘나들다 완전한 악인의 정체를 드러내며 작품의 긴장감을 극도로 치솟게 했다.
 


죽음을 놓고 게임을 벌이는 이신을 맡은 김지수는 예측은 물론 납득하기도 힘든 이신의 행태에 설득력을 불어넣으며 입체적인 악역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걸스데이 출신 연기자 유라도 악역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유라는 최근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는 콧대 높은 톱배우 고유라 역으로 특별 출연해 동료 배우 여하진(문가영  분)과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악녀 연기를 제대로 선보였다.

의상을 합의한 상황서 여하진과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나 골탕을 먹이는가 하면, 자신이 물을 맞아야 하는 장면임에도 여하진의 물컵을 빼앗아 선제공격을 날리기도 한다. 대본에는 없는 뺨을 때리는 연기를 한 뒤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얄미운 행동을 골라서 하는 역인데도, 워낙 자연스러운 연기 덕에 대중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공감대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공감대가 있는 악역을 얼마나 훌륭히 표현하는가에 따라 드라마의 성패가 갈린다. 악역이라 해서 단순히 눈을 치켜뜨거나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된다. 극의 장르와 분위기에 맞는 섬세한 감정연기가 필요하다. 선한 역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의 진폭이 넓기 때문에, 훌륭히 표현하는 경우 연기력 발전의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출처 : 일요시사(http://ww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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