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만드는 ‘대중의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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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만드는 ‘대중의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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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밈’의 시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과거에는 TV가 이슈를 선도했다. 방송에 등장한 것이 대중에게 스며드는 형태였다. 각 분야의 트렌드는 주로 방송이 선도했다. 최근 그 패러다임이 바뀌는 모양새다. 대중이 문화를 만들면 방송이나 콘텐츠 산업이 이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특히 밈(Meme) 현상서 이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누군가의 특별한 행동을 따라 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의 문화 유전 형태를 일컫는 밈은 국내 대중문화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방송인 홍진호의 게시 글에는 특별한 현상이 있다. 같은 문장의 댓글이 꼭 두 개씩 달린다는 것이다. 우승은 몇 차례 되지 않지만, 준우승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거둔 그는 숫자 2와 인연이 깊다. 이를 이해하고 있는 팬들은 홍진호의 글에 자연스럽게 댓글을 두 개씩 단다. 암묵적인 불문율이다. 심지어 숱한 준우승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다는 글에도 댓글은 두 개씩 달린다. 


특별한 현상


2009년 개봉 영화 <그림자 살인>서 황정민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은 홍진호. 이런 연유로  많은 게임 팬들이 이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별점을 1∼2점을 줬던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이 영화의 관계자들은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별점 테러’로 혼동하기도 했었다. 이 역시도 밈(Meme) 현상 중 하나로 해석된다. 


밈 현상은 이른바 ‘탑골 문화’가 발달하면서 두드러졌다. SBS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거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SBS <인기가요>를 내보내면서 시작됐다. 10대들은 당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중가요를 보면서 신조어를 쏟아냈다.


그 과정서 ‘탑골 GD’로 거론된 양준일은 JTBC <슈가맨3>를 통해 50대에 전성기를 맞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서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민예극단 출신 배우 김영철이 SBS <야인시대>에서 선보인 ‘4딸라’ 짤방(사진)은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됐다. <야인시대>를 알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은 김영철이라는 이름 대신 ‘4딸라 아저씨’로 그를 반겼고, 급기야 김영철은 버거킹 CF를 포함해 10여개의 브랜드 광고 모델이 됐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도 밈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묻고 더블로 가”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등의 명대사를 남긴 곽철용은 어마어마한 패러디를 생산했다. 버전도 상당히 많다. 최근에는 치킨과 피자 버전도 나왔다. 김응수는 본명 대신 ‘아이언 드래곤’으로 불렸으며, 한 네티즌은 곽철용의 얼굴이 담아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작품으로만 주로 활동하던 김응수는 덕분에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엄청난 인터뷰와 광고 요청을 받았다. 


최근에는 과거 SBS <순풍산부인과> 내용 중 43일간의 여름방학 일기를 미룬 미달(김성은 분)의 숙제를 대신 해치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박미선이 남긴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는 대사가 “OO은 내가 할게, XX는 누가 할래”로 변형돼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는 ‘월급은 내가 받을게. 회사는 누가 갈래?’ ‘술은 내가 마실게. 술값은 누가 낼래?’ 등으로 패러디되며 큰 웃음을 안기고 있다. 


밈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장됐다. 일본 환경상(환경부 장관)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그 인물이다.


“기후변화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한다”는 말을 남겨 ‘펀쿨섹좌’로도 불리는 그는 매우 당연한 말을 하는 화법으로 국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국내 넘어 해외로, 밈이 만든 스타들 

“비가 뜬 이유? 수용할 줄 아는 태도”


“매일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건 매일 먹는다는 것은 아니다”와 같은 발언을 일삼는다. 동어반복, 논점이탈, 순환 논법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서도 멍청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밈은 본래 학술적 용어다. 1976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서 처음 등장했다. 문화적 양식, 관습, 건축, 종교 등 인류가 축적해온 수많은 문화유산은 대부분 누군가 한가지를 모방하고 복제하며 전달됐는데, 이때 그 모방이나 복제 거리가 되는 문화 단위들이 바로 밈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 유전 형태에 조롱의 성격이 강해졌다. 특히 탈권위를 넘어 ‘탈가식’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식적이거나 허세가 섞인 행동은 곧바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 조롱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은 비다. 

 



한때는 노력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는 최근 온라인서 가장 핫한 스타다. 과거 한류스타로 불릴 때만 하더라도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 음반마저 거듭 실패한 그에게 대중의 관심은 특별한 상황이 됐다. 온라인서 소환되는 비는 조롱 그 자체였다. 


약 150억원이 투입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눈뜨고는 봐줄 수 없는 정도의 완성도로 희화화됐고, 이 영화가 기록한 17만 관객은 1UBD(엄복동의 약어)로 표현되며 하나의 단위가 됐다. 이 역시 놀림 요소가 강하다. 아울러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서 비가 ‘술 한 잔 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운을 뗀 SNS 글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후 MBC 드라마 <웰컴투라이프2>도 실패하면서 비의 이미지는 급락했다. 


그런 가운데 허세 가득한 가사와 다소 예스러운 퍼포먼스로 채워진 노래 ‘깡’이 조명됐다. 유튜브 채널 ‘호박전시현’에 처음 올라온 비의 ‘깡’ 뮤직비디오 패러디가 급작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이제는 ‘1일1깡’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너도 나도 ‘깡’ 뮤직비디오를 올리거나 보고 있다. ‘호박전시현’에 올라온 ‘깡’ 영상은 250만 조회수를 넘기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비에 대한 관심을 포착한 MBC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로 불러 ‘깡’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매우 쿨한 태도로 밈 현상을 수용한 비의 모습에 대중은 더욱 뜨겁게 열광했다.


비의 10년 팬이 올린 상소 ‘시무 20조’와 ‘깡’ 등 비와 관련한 논란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놀면 뭐하니?>는 인터넷을 잠식했다. 조롱의 대상이기만 했던 비는 놀라운 자기관리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10대 팬들에게 선한 자극을 남겼다. 


이렇듯 이슈의 주도권은 대중에게 넘어왔다. 온라인서 화제가 되면 방송이 뒤따라가는 형태다. 대중에게서 회자된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광고에 등장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조롱의 성격이 강해지긴 했지만, 꼭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롱에는 일종의 호감도 내포돼있기 때문이다.


이슈의 주도권


누군가를 놀린다는 건 꼭 밉지만은 않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대중이 N번방 가해자들을 따라하거나 조롱하지는 않는 이유는 이들을 조금도 좋게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서 대중의 조롱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비의 경우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을 기회로 이어진다. ‘인싸의 교과서’로 불리는 밈 현상의 수혜자는 누구에게로 넘어갈까. 대중 문화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로 보인다. 



출처 : 일요시사(http://ww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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