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벗어나려면? ‘왕따 마케팅’ 극성

한국뉴스

‘왕따’ 벗어나려면? ‘왕따 마케팅’ 극성

일요시사 0 1595 0 0

요즘 한국 사회는 잇따른 중·고등학생의 자살사건으로 술렁인다. ‘집단 따돌림’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사건도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소식에 '혹시나 나도 왕따의 표적이 되진 않을까?'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는 일부 학원과 병원까지 나타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OO 없으면 왕따” “일진되는 법 알려 드린다”며 업체를 홍보한다. 이런 세태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함을 낳고 있다.

“저는 6년 동안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같은 학년 아이들과는 제대로 말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친구들은 저를 바이러스 취급 하면서 피해 다닙니다. 이젠 너무 심해져서 저보다도 어린 아이들까지 절 만만히 보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 말해도 조치해 주겠다는 말만 할 뿐 달라 진 게 없고, 엄마에게 말해도 그냥 참고 친구 사귀란 말만 하네요. 전 그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인데, 왕따에서 탈출 할 수 있는 방법 없나요?”

학원·병원들
‘왕따 마케팅’ 열풍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중학교 2학년 A양(15)의 질문이다. A양은 이 같은 질문을 올렸다가 한 마술학원 관계자에게서 “우리 학원에 등록해보라”는 답글을 받았다.

마술학원에 등록하기만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겨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마술을 펼치면 주변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때문에 왕따에서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단언했다. 이 학원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인터넷 게시글에 일일이 학원 광고 댓글을 달며 이른바 ‘왕따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현재 여러 포털 게시판에는 ‘왕따 탈출법’ ‘왕따 안 당하는 법’ ‘인기 많아지는 법’ 등에 대한 학생들의 문의 글이 수백 개에 달한다. 딱히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 많은 학생들이 사이버상에서 왕따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며 해결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 역시 급증하는 학교폭력과 자살 등의 사건이 연일 보도됨에 따라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왕따 마케팅은 학생들과 부모의 이런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작고 외소한 아들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학부모 B씨는 최근 학교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걱정이 커졌다. 그러던 중 “왕따 한방에 탈출”이라는 한 무술학원의 전단지를 보게 됐고, 자신감을 키울 목적으로 아이와 함께 학원을 찾았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일부 학원과 병원은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이 같은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 한 업체는 “왕따를 벗어나 일진까지 될 수 있다”고 홍보하는가 하면 “왕따 안 당하는 법, 일진 이기는 법, 나쁜 놈 저주하는 법”이라며 볏짚인형 판매 사이트가 링크되기도 했다.

해병대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업체는 “체험캠프에 참가하기만 하면 학교에서 아무도 못 건드린다. 일진 학생이 돈을 빼앗으려 할 때 방어하는 법, 학교폭력 대처법도 가르쳐주기 때문에 왕따를 당할 염려가 전혀 없다”고 홍보하고 있다.

일부 성형외과는 중·고등학생에게 간접적으로 성형수술을 유도하는 듯한 글까지 올리고 있다. 한 학생이 인터넷 게시판에 “눈이 작고 코도 낮고 피부는 까매요. 얼굴이 못생겨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예뻐질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올리자 한 성형외과는 “10대 성형수술, 전화를 주면 수술비용과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주겠다”는 내용의 쪽지 등을 건넸다.

한 웅변학원 역시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해서 걱정이 많으셨나요? 왕따나 따돌림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왕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와 자신감을 크게 키워주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외에도 강인한 성격 길러주기, 학기 초 기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호신방법이나 자기방어술을 가르쳐준다는 ‘왕따 과외’도 등장했다.

보험업계
‘왕따보험’ 출시

한편 보험업계에서는 ‘왕따 보험’ 상품도 출시했다. 자녀들이 학교폭력이나 왕따를 당해서 정신적, 신체적인 위해를 받았을 경우 이에 대한 피해를 보상해주고 관련한 의료비 보장을 해주는 것이다.

현재 동부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등의 회사들이 학교 폭력으로 다치면 위로금을 최대 500만 원까지 지급하는 보험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 상품은 최근 사회분위기에 맞물려 학부모들로부터 문의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내용을 보면 먼저 동부화재 ‘프로미라이프 스마트 아이사랑보험’은 폭행이나 강도로 전치 4주 이상의 폭력 피해를 보면 최대 300만원 한도에서 보상을 해주고 있다.

흥국화재 ‘더플러스 사랑보험’은 폭력 피해시 최고 300만원을 보상하며 폭행으로 인한 상처로 성형수술이 필요한 경우 최고 500만원까지 지급한다.

현대해상의 ‘하이라이프 굿앤굿 어린이CI보험’은 단순 폭행은 물론이고 성폭력이 발생한 경우에도 300만원까지 보상이 가능하다. 또 유괴나 납치, 감금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최대 1350만원까지 위로금이 지급된다.

메리츠화재의 ‘우리아이 성장보험 M-Kids’도 학원 폭력 치료비 등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피해 보상금이 지급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왕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보험 계약시 ‘우리 아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왕따특약을 꼭 포함시키는 추세”라며 “보험사마다 왕따로 인한 보상 지원건수와 보상지원금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는데 이는 왕따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밝혔다.

맞지 말고 맞서자? “내 아이만 아니면 돼~”


이제 부모들이 먼저 우리 아이를 지켜야 할 때

이런 세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공교육이 부실하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분석했다. 한 전문가는 “학교나 교사들이 왕따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믿음을 심어줬더라면 학부모나 학생들이 ‘왕따 불안 마케팅’에 지금처럼 쉽게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학부모나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학교폭력이 근절되기 쉽지 않은 터라 학생 스스로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갖춰 놓아 가해 학생들의 ‘표적’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가 된다”고 말했다. 

왕따 문제가 심각하지만 정부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한계가 있다 보니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을 원하게 되고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왕따 마케팅 열풍이 부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김은숙(40·여)씨는 “정부나 학교 측에서 제 아무리 지원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그곳에선 마치 짐승처럼 힘으로 서열을 매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힘이 약한 아이는 도태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근절이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내 자녀만은 피해를 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예방’만이 최선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무차별적인
왕따 대비책?

청소년기 왕따 사건은 늘 있어왔다. 그래서 더 대수롭지 여기지 않았다. 교육시스템 역시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방치해 온 것도 사실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사태를 비로소 인식하는 듯,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지만 과연 이것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구조 변혁으로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힘든 문제라고해서 왕따 마케팅 열풍에 이용당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인식과 부모의 역할이다. 자극적인 매체나 게임 등에 노출을 삼가고 어린시절부터 부모들의 적절한 훈육을 통해 의식 있고 올바른 청소년으로 자라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이제 부모들이 먼저 우리 아이를 지켜야 할 때이다. 아이들의 행동에 변화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가해 혹은 피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