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비문(非文)캠프 사람들’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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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비문(非文)캠프 사람들’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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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 실패해 여의도 떠도는 수많은 ‘백수들’

  

[일요시사=조아라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경선이 문재인 후보의 평정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언론의 조명은 당연히 최종승자인 문 후보의 거취와 향후 행보에 집중됐다. 하지만 자신이 '옹립한(?)' 후보를 위해 최전방에서 불철주야 땀을 흘린 비문(非文)캠프 인사들은 여전히 조명 밖에 있다. 수장이 '승리' 하면 뜨고, '패' 하면 지는 대선캠프 인사들의 이야기를 <일요시사>가 담아보았다.    
     
분주하던 민주통합당의 경선캠프가 하나 둘 문을 닫으며 정리절차를 마쳤다. 비문 진영 캠프도 한때는 여의도의 중심이었다.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조문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조문도 안 간다’더니 패자의 캠프는 곧바로 발길이 뚝 끊겼다.

고단한 수장은 휴식을 취하러 잠시 초야에 묻힐 수 있겠지만 갈 곳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 놓고 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손·정, 조용한 해단식 가져

지난 일주일간 비문 진영 캠프의 해단식이 차례로 열렸다. 지난 17일 손학규 전 후보 캠프가 가장 먼저 해단식을 가졌다. 손 캠프의 해단식은 조용히 진행됐으며, 다음날 사무실은 어느 정도 정리돼 해체되는 캠프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같은 날 정세균 전 후보의 캠프에서 세 명의 캠프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텅 빈 사무실의 모습에 대해 캠프 관계자는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직원들이 주말까지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는 캠프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것"이라며 "지난 3개월 동안 주말도 없이 날마다 일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우선 잠깐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어 시원섭섭하다"라고 마음을 털어놔 그간 그들의 고된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 캠프 해단식은 지난 21일 저녁 캠프 인근의 여의도 식당에서 정 전 후보와 캠프 식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이와는 반대로 김두관 전 후보의 해단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해단식은 한 시간가량 진행됐으며, 김 전 후보가 캠프 식구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마무리됐다.

이날 김 전 후보가 한 캠프 관계자와 악수를 하며 "(앞으로)줄 좀 잘 서세요"라고 웃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김 전 후보가 그동안 자신을 위해 뛰어준 고마움과 대선후보로 선출되지 못한 미안함을 캠프 관계자에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여의도에는 '줄서기'에 실패해 국회 담장 밖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정치권 최고의 전략가로 손꼽히는 일부 정예부대 인사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다. 일찌감치 그들을 모셔갈 '꽃가마' 행렬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주요 요직을 맡으며 명성을 날린 인사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아도 그만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캠프가 문을 닫아도 별 영향이 없다.

학업을 중단한 채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한걸음에 여의도로 달려온 학생들도 그나마 형편이 낫다. 해외파 명문 유학생이나 국내 대학원생은 휴학이 끝나면 복귀해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오랫동안 정계에 몸담아 정당에 뿌리가 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당으로 돌아가 행정을 맡거나 당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생업이나 직업을 버리고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갈 곳 없는 패잔병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게다가 주요 인력이 아닌 경우 보수나 활동비는 기대하기도 어려워 이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기도 한다.

10년차 여의도 재·삼수생 부지기수
무임금, 중노동에 '패' 하면 목 댕강
김두관의 농 "앞으로 줄 좀 잘 서요"

반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경우도 있다. 모시던 후보가 청와대든 정당이든 깃발만 꼽아준다면 여의도에 입성하는 것은 시간문제. 하지만 그 시간이 길게는 십 수 년이 걸릴 수도 있어 여의도 입성이 거의 장원급제와 다름없는 셈이다.

지난 2000년부터 여의도 담장 옆에서 정치인의 꿈을 꿨던 한 캠프 관계자는 이를 두고 "국회의원 되는 것. 고시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라고 푸념했다.

그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배지 달려면 최소한 100: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99명이 여의도 문을 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다 지쳐 떠난다.

물론 끝까지 끈을 잡고 놓지 않아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지만 그게 하늘의 별 따기다. 정치판에서는 운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직책이 있으면 뭐하나. 군대 없는 장군이지. 캠프 떠나면 거의 다 당분간 백수 신세”라고 토로했다. 

여의도 바닥에 어느 정도 명성을 날렸지만 그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이나 낙마를 지켜보고 겪어야 했던 비운의 캠프 관계자도 있다.

누구보다 패배의 쓴맛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내가 줄만 서면 다 떨어진다. 나만 피하면 돼"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정당인의 길을 선택해 여의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비노(非盧) 의원들과 함께 김민석 전 의원의 편에서 그를 도왔다.

김 전 의원은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지만 막판에 정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단일화를 철회해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김 전 의원이 민주당으로 돌아와 재기를 노렸지만 자기 당 후보를 흔들고 권력을 좇았다는 이유로 총선에서 참패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 비서실직 제안을 마다하고 2004년에 총선에 출마했지만 44.9%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아깝게 분패했다. 그리고 2006년 지방선거, 2008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2010년 민주당 대표경선에서는 당시 손학규 후보의 상대편인 정세균 후보를 돕다가 손 후보의 승리를 지켜봤다. 2011년 서울시장선거를 앞둔 야권단일화 과정에서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 합류했지만, 박원순 후보가 이겨 또 다시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복불복 정치인생

2012년에도 그의 비운은 계속됐다. 지난 6월에 있었던 민주당 대표경선에서 초반 대세론을 점한 김한길 후보를 지지하며 전국을 누볐지만 이해찬 후보에게 막판 승리를 넘겨줘야 했던 것이다.

연이은 패배 탓인지, 그의 정치내공은 권위적이고 전략적인 다른 정치인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무작정 정치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에 대해 "밖에서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뛰어들면 너무 어려운 것이 정치판이다. 정치하려면 나라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기본적인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자리하려고 덤벼들었다가는 금방 나가떨어지고 휘청거린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의 실패는 고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승률을 계산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사람을 보고 뜻을 보태다 보니 연이은 실패에도 정치일선에서 동력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선거판에 뛰어들 만큼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확고한 뜻이 있는지, 성급히 여의도에 입성했던 많은 사람은 멈추어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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