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나는 아웃도어의 불편한 진실

한국뉴스


 

불티나는 아웃도어의 불편한 진실

일요시사 0 852 0 0

동네 뒷산 가는데…등산복은 히말라야 스타일

[일요시사=경제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이보다 절묘하게 어울릴 수 있을까. 식을 줄 모르는 아웃도어 열풍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젠 누구나 하나쯤은 필수로 가지고 있는 국민아이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각 브랜드마다 고기능성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현혹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웃도어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봤다.

국내 아웃도어(outdoor·등산 등 야외활동) 시장 성장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경기침체로 다른 의류들은 성적이 부진한데도 2000년대 초반 이후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왔다. 아웃도어 시장에 뛰어든 업체만 10곳을 넘고 브랜드만 100여개에 이를 정도다. 올 초에는 삼성그룹 계열 제일모직까지 뛰어들었다. 그만큼 황금알을 낳는 노다지 산업이란 얘기다.

황금알 낳는
아웃도어 시장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웃도어 의류와 각종 용품은 전문 산악인이나 이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등·하교나 출·퇴근길에서 아웃도어 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웃도어 룩’이라는 패션 장르가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아웃도어시장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주5일제 도입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일어났고 복장 자율화 기업이 늘어난 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실내 여가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삶의 여유가 늘어나면서 등산, 캠핑, 하이킹, 트레킹 등의 아웃도어 활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 이 흐름에 맞춰 큰 인기를 끈 KBS2TV<해피선데이-1박2일>이라는 여행 프로그램도 한 몫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수도권에 명산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자기 개발 시간으로 가장 합리적인 ‘등산’이라는 운동의 전성시대가 온 것”이라며 “때문에 브랜드 아웃도어 의류를 찾는 고객 수도 늘었고 또 한 고객이 사는 옷의 숫자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불황에 다른 옷은 안 팔려도 없어서 못 팔 지경
비싸야 잘 나가?…가격 거품 논란에 짝퉁 주의보

실용성 있는 제품력도 성장률을 증가시킨 원인이다.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실용성 제품의 출시는 ‘아웃도어는 등산복, 남성용’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각 브랜드마다 아웃도어가 단지 등산이라는 개념을 탈피해 바이크, 트레킹 등에 적합한 다양한 제품라인을 선보였고 심지어 캐주얼 의류를 대체하는 평상복 영역까지 흡수하기에 이르렀다. 

업계관계자는 “원래 아웃도어는 등산 같은 야외활동을 돕기 위해 제작된 기능성 제품이지만 이젠 많은 사람들이 평상복처럼 입고 다닌다”라며 “10대 청소년들에게 선풍적인 인기인 ‘바람막이 점퍼’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소비자의 연령층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전문 산악인을 모델로 하던 아웃도어 업계 상식을 깨고 ‘스타마케팅’을 도입한 것도 인기 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노스페이스는 빅뱅, K2는 원빈, 휠라스포츠는 차승원, 블랙야크는 조인성, 아이더는 이민호와 소녀시대 윤아, 밀레는 엄태웅, 빈폴은 수지와 김수현 등 스타급 연예인들이 광고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이들의 이미지를 끌어와 젊은 층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는 가파른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급성장한 외연 뒤로 아웃도어는 잇따른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양복 한 벌 값을 훌쩍 넘는 고가격 논란이 그 첫 번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 나와 있는 유명 아웃도어 제품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장만하려면 100만원이 가볍게 넘어가는 것은 우습다. ‘노페 교복’으로 통할 만큼 중·고교 학생들 사이에 교복 같은 필수품이 된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 가격은 높게는 50만∼100만원에 달한다.

터무니없는 가격
‘등골 브레이커’

이 때문에 이 점퍼를 사주느라 학부모들의 등골이 휜다는 의미로 ‘등골 브레이커’ 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 가격대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노스페이스 계급도’가 인터넷에 나도는 등 고가의 아웃도어 제품 갖기 경쟁이 과열되면서 착용을 금지한 학교도 생겼다.

그러다 지난 2월 서울YMCA는 국내 아웃도어 제품 가격이 해외에 비해 50% 이상 높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3번만 세탁하면 기능이 뚝 떨어지는데 값은 일반 제품의 2배나 된다는 소비자 조사 결과도 나왔다. 소비자들은 거세게 비난했다.

주부 김모(38)씨는 “해외보다 훨씬 비싸게 파는데도 브랜드만 보고 산 한국 소비자들은 모두 봉”이냐며 “다른 제품에 비해 기능적으로 좋은지도 따져보지 않고 구입하려면 차라리 아웃도어 업체에 기부하는게 낫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인 박모(45·남)씨도 “소비자들의 명품심리를 이용한 고가 마케팅 전략은 이제 버려야 한다”며 “국민아이템이 된 만큼 그에 걸 맞은 기능과 가격을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짢아했다. 

가격 거품논란 속 짝퉁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주로 해외 명품 브랜드 상표를 베껴 팔던 ‘짝퉁(가품)’이 이젠 ‘블랙야크’ ‘코오롱 스포츠’ 등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무턱대고 싸다고 샀다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특허청 상표권특별사법경찰대는 가을 단풍 나들이 철을 맞아 ‘짝퉁’ 아웃도어 의류에 대한 집중수사를 통해 위조상표 제조ㆍ유통업자 4명을 적발, 이 가운데 1명을 구속했다고 지난달 21일 밝혔다.

유명제품에 독소…
정력 감퇴 위험도

특허청은 이들로부터 의류 완제품 총 8600여점(정품 7억원 상당)을 압수했으며 이중 5000여점이 ‘블랙야크’ ‘코오롱스포츠’ 등 국내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상표권 특별사법경찰대 이병하 대전사무소장은 “최근 아웃도어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어 짝퉁 브랜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값이 싸다고 해 인터넷 쇼핑몰 등을 이용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정품 매장에서 구입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자연을 벗 삼기 위해 입고나가는 아웃도어 의류가 오히려 화학물질 범벅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세계 유명 메이커들의 아웃도어 의류가 정작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로 오염돼 있다고 발표했다.

그린피스는 독일 등지에서 구입한 ‘잭울프스킨’, ‘바우데’, ‘노스페이스’, ‘마모트’, ‘파타고니아’,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여성과 아동용 방수 재킷, 방수 바지 등 14종의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모든 샘플에서 과불화탄소(PFCs)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과불화탄소는 내분비 체계에 혼란을 유발하고 생식 기능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방수 의류 내·외부를 건조하게 유지시키는 기능을 위해 이 물질을 쓰고 있다고 그린피스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산악 호수와 북극 빙하에서 해저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지역에서 과불화탄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며 아웃도어 의류와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또 “과불화탄소는 환경에서 제거하기 매우 어려운 물질”이라고 지적했다.

비바람 막는다더니 정력감퇴에 환경오염 덩어리
못 믿을 브랜드…건전하고 개성 있는 소비해야

이에 대해 노스페이스는 “한국에서 시판되는 제품 중에는 해당되는 제품이 없다”면서 보고서에 포함된 제품은 독일에서 판매 중인 제품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유럽 국가들처럼 의류에 사용되는 플루오르 화합물을 규제하고 있지 않아 남의 일처럼 방치할 게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특히 아동용 의류의 경우 아이들이 옷이나 옷을 만진 손을 입에 넣을 우려가 높고 플루오르 화합물은 체내에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국내에서도 해당 제품들을 검사해 실태를 파악한 뒤 적절한 규제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웃도어 열풍은 여전히 끝이 없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올해도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거품 가격이나 마케팅 혈전, 한국인의 명품 선호 등의 다양한 문제도 있다. 이러한 아웃도어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잘못된 소비문화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네 뒷산을 올라도 장비만큼은 브랜드로 갖추고, 신발도 명품으로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보온 파카만 하나 더 구비하면 북한산을 오르는 사람의 절반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명품 고집 소비자들
과시욕에서 벗어나야

한 심리학과 교수는 “고가의 아웃도어 시장이 확산되면서 낳은 부수적인 문제는 명품에 집착하는 소비자들의 소비행태가 만들어 낸 것”이라며 “남에게 내 수준과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과시욕에서 벗어나 합리적 소비태도를 가져야 한다. 건전하고 개성 있는 소비 교육도 필요하다. 아웃도어 의류업계 역시 가격에 걸맞은 효용과 안전성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잊어선 안 된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