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귀 막은 한국수력원자력 배짱 스캔들

한국뉴스


 

눈귀 막은 한국수력원자력 배짱 스캔들

일요시사 0 1019 0 0

곪을대로 곪은 원전 '이러다 펑 터질라'

[일요시사=경제팀]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 원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한수원이 재발 방지와 쇄신을 약속하면서 버릇처럼 내뱉은 말이다. 직원 22명이 조직적 납품 비리를 저질러 구속 기소 될 때도 그랬고, 마약 스캔들 때도 그랬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와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원전 부품 품질보증서가 몇 년간 위조됐는데도 한수원은 '까막눈'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한수원은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해 <일요시사> 편집국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보낸이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3호기 공사에 참여한 A씨였다. 5장으로 구성된 편지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편지에 따르면 A씨는 2009년 9월12일부터 11월7일까지 약 두 달간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 3호기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당시 A씨는 일반 가정집도 붕괴될 수준의 부실공사 의혹을 현장 관계자들에게 제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해고당했다.

안전 이상무?

A씨는 편지를 통해 "ㄷ자 모양으로 제작되어 나오는 철근을 ㄱ자로 만들어서 시공을 하는 등 너무나 날림으로 공사를 했다"며 "다른 것도 아닌 원자력 발전소를 부실 공사 한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질 않는다"고 전했다.

ㄷ자 철근은 '유바(U-bar)'로서 원자력 발전소 등 주요 구조물의 내진성능을 높이기 위해 수평근과 수직근 사이에 60∼100cm 간격으로 설치된다. 이 유바가 부실 시공될 경우 건물에 휘어짐이 발생하고 균열이 생기는 등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유바를 일부 절단해서 ㄱ자 모양으로 만든 뒤 철근 사이에 고정시키지 않고 걸쳐만 놓았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신고리 3호기 건설 현장 측은 'A씨의 악의적인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이들은 "설계도면상에 '유바를 사용하되 필요시 이를 절단해 사용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140만 kW급 신고리 3호기는 내년 9월경 가동 예정이다. 안전 여부를 검토하는 데 아직 시간이 있는 것. 더 큰 문제는 최근 불거진 '짝퉁 부품'이다.

원전 부품을 납품하는 8개 업체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해외 품질검증기관의 품질검증서 60건을 위조했고, 짝퉁 부품은 총 237개 품목, 7682개 제품, 8억2000만원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짝퉁 부품은 영광 3·4·5·6, 울진 3호기 등 5곳에 이미 사용됐다. 특히 영광 5·6호기에 약 5000여 개 부품(98.4%)이 집중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영광 5·6호기를 연말까지 가동 중단시켰다.

이번 짝퉁 부품 스캔들은 지난 9월31일 외부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한 부품업체 직원이 "일부 업체가 평균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해외기관에서 보증서를 받아온다"고 한수원에 제보 했고, 한수원은 이때서야 조사에 착수해 위조 사실을 확인했다.

1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수원도, 감독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잡아내지 못했다. 지난 3월 울산지검의 납품비리 수사도 음료수 상자에 현금을 담은 장면을 목격한 시민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내부 검증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품질검증서 위조 짝퉁 부품 파문 '신뢰에 금'
납품비리·직원 마약 등 잇달아 '관리 구멍'

한수원의 내부 검증 시스템에 대한 논란은 올해만 해도 수차례 불거졌다. 지난 3월 터진 한수원 납품비리로 한수원의 모 처장은 본사 감사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납품업체를 등록시켜 주거나 수주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 울산지검은 이 처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원전 비리와 관련해 기소된 한수원 직원 가운데 가장 높은 직책이었다. 또 한수원 본사간부 6명과 지역 원자력발전소 간부 16명 등 모두 22명의 한수원 간부를 구속 기소했다.

고리원전과 영광원전에서 구매담당자가 뇌물을 받고 원자로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중요 부품을 순정품 대신 모방품으로 쓴 일이 드러났고, 지난해에는 버려진 부품을 빼돌려 수리한 뒤 다시 원전에 사용한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한수원이 짝퉁 부품을 아예 '몰랐다'고 하기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10년 동안 1곳도 아닌 8개 회사가 품질검증서를 위조하고, 납품업체가 이를 제보할 정도로 관행화됐기 때문이다. 한수원의 조직적인 묵인이 시도됐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도 부품보증증서를 위조해 미검증품을 한수원에 납품한 업체 8곳을 압수수색 하는 한편, 한수원 영광원자력본부와 울진원자력본부 관계자를 불러 납품업체와 공모했는지를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문제가 된 곳들은 수입 대행 업체들로 품목당 300만원이 소요되는 검증 비용과 국외 체류 비용, 검증 시간 등을 아끼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것 같다"며 "부품이 납품되면 수량·외관 검사와 서류 검사는 하지만 업체들이 위조한 서류를 제출한 것까지 파악하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해명했다.

지식경제부와 한수원은 이번에도 역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지난 5일 긴급 브리핑에서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은 모두 방사능과 관련된 원전의 핵심안전설비에는 사용할 수 없는 부품"이라며 원전 사고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영광 5·6호기 중단에 대해서는 "방사능 유출과는 상관없지만 국민들에게 불안을 줄 소지가 있어 전력 공급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국민 불신 팽배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수원이 원전 관련 사고가 터질 때마다 재발 방지와 쇄신을 약속해왔기 때문이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원전의 잦은 고장이 짝퉁부품과 한수원 내부의 비리와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밖에 없어 그저 경악할 뿐"이라며 "그동안 한수원에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모두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는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또 "때마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의식을 계도해왔는데 정작 계도해야 할 사람들은 한수원에 모두 모여 있는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