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질문 트라우마' 겪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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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질문 트라우마' 겪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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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인데 질문은 하지 말라고?"

[일요시사=정치팀] 야권 단일화가 이번 대선의 최대이슈로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연일 정책발표를 이어가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 박 후보가 준비한 기자회견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아예 질문을 받지 않거나 질문을 받더라도 답변은 박 후보가 아닌 측근들이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질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박 후보의 사연을 추적해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질문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박 후보는 지난 6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쇄신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오후에 있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단일화 회동에 대응하는 차원의 카드였기 때문에 정치권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발표가 끝난 후 박 후보는 쫓기듯 현장을 떠났고 질의응답은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대신했다. 그 후로도 박 후보의 정책발표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이어졌지만 박 후보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꾹 닫았다.

언론과 악연

기자회견장에서 박 후보가 질의응답을 회피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기자들 사이에선 뒷말이 무성해졌다. "박 후보가 자꾸 사고를 치니 측근들이 아예 질의응답을 배제한 것"이라느니 "박 후보 스스로 지레 겁을 먹고 질의응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박 후보는 유독 언론과의 악연이 깊다. "병 걸리셨어요?" "저하고 싸움 하시자는 거예요?" "한국말 모르세요?" 등 박 후보의 불통이미지를 굳히는데 크게 기여한 이 같은 어록들은 모두 언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다.

때문에 박 후보는 이전에도 언론의 질의응답을 회피하다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박 후보 측은 지난 8월31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의원·당원협의회장 연찬회에서 기자들을 향해 박 후보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을 자제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으며, 지난 9월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찬회동 뒤에 질의응답을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다가 기자들의 반발로 이상일 대변인이 따로 시간을 내 질문을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대선주자가 언제까지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박 후보는 지난 9월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박 후보가 지난 2004년 4월9일 출연했다가 진행자인 손 교수에게 "저하고 싸움 하시자는 거예요"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던 프로그램이었다.

박 후보는 이날 인터뷰에서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인혁당과 관련한 질문에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제가 한 적이 있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는 유신시절 재판과 민주화 이후 재판의 판결에 동등한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사법체계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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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난 10월21일에는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서 "법원에서 유족에 대한 강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고 주장했지만, 회견이 끝난 뒤 박 후보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강압이 없었다고 얘기한 것은 잘못 말한 것 같다"며 "강압이 있었는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패소 판결을 한 걸로 알고 있다"고 자신의 발언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해 또 한번 구설에 올라야 했다. 박 후보가 최근 기자들의 질문에 유독 민감해진 것은 이 같은 연이은 사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박 후보의 이 같은 질문 트라우마는 네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박 후보 진영은 야권의 단일화 논의에 대해 후보의 정책이나 자질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로 만들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그런데 진짜 깜깜이 선거를 만들고 있는 주범은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하며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들을 차단하고 있는 박 후보 자신이란 지적이다.

두 번째는 각종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정치쇄신안에 대한 발표를 본인이 직접 하고, 질의응답은 안대희 위원장이 받았다. 외교·안보·통일 정책도 질의응답은 윤병세 외교통일추진단장이 받았다.

박 후보 측은 정책을 총괄한 실무자들이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세운 정책임에도 기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할 만큼 이해가 부족한 것이냐는 비판이 일었다. 또 이렇게 이해가 부족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한들 과연 실천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결국 박 후보는 힘들게 내놓은 공약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불통'이미지의 고착화다. 박 후보가 청년층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의 불통이미지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청년층이 원하는 리더십은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모습인데, 박 후보처럼 내가 할 말은 다했으니 끝이라는 식의 태도는 불통이미지를 더욱 고착화 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깜깜이 선거

네 번째 문제는 질문을 회피하는 행동이 자칫 국민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박 후보가 질문을 회피하는 행동이 이어지면 아무래도 국민들은 "정말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능력부족을 숨기려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박 후보가 정말 떳떳하고 준비된 후보라면 굳이 질문을 회피하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박 후보가 이처럼 질문을 회피하는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박 후보가 그동안 질의응답 과정에서 논란을 많이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라면서도 "또 한편으론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사소한 말실수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비판을 가하는 언론들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도 묻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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