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아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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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뒷담화> 속 보이는 '아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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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대기업…딸랑딸랑 회장님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는 지금 '눈치전쟁'중이다. 대기업들은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 실세들이 물갈이 되면서 일단 설설 기는 분위기. 뭣 모르고 나대다간 한방에 훅 갈 수 있어서다. 대통령 취임식 날 모든 신문의 지면을 채운 '아부성 광고'도 그래서 그랬다. 총수들의 취임식 참석 여부도 뒷말이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2월25일. 취임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내걸린 이날 일간지는 대기업들의 '아부성 광고'로 도배됐다. 주요 신문에 실린 박 대통령의 취임 축하 광고는 다음과 같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엔 농협, STX그룹, 우리금융그룹, 대한항공, 현대그룹, SK그룹, KT, IBK기업은행, 삼성그룹 등의 광고가 실렸다. <중앙일보>에도 농협, STX그룹, 우리금융그룹, 현대그룹, SK그룹, KT, IBK기업은행, 삼성그룹을 비롯해 두산위브·삼성물산 등 7개사 연합 광고가 게재됐다.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일간스포츠> 등 스포츠지 역시 SK그룹, 현대그룹, KT, 삼성그룹 등의 전면광고가 나갔다.

설설 기며 눈치

한 신문사 관계자는 "각 신문사들은 최근 극심한 광고 수주 하락으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태"라며 "그나마 가뭄에 단비 같은 이번 취임식 광고로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각 신문 1면을 차지하기 위해 '광고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농협이 승리했다. 농협은 일간지 12개, 경제지 10개 등 무려 22개 매체의 1면 하단 광고를 싹쓸이 했다. 농협은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참 좋은 날'이란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 농협이 함께 하겠습니다'는 구절도 달았다.

농협이 삼성그룹, 현대그룹, SK그룹 등 유수의 재벌그룹들을 제치고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를 선점한 비결은 발 빠른 준비였다. 일찌감치 예약해 놓은 게 주효했다. 대선 전인 지난해 12월 초부터 2월25일자 광고 수주를 위해 언론사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이름만 비워 두고 미리 광고 시안을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농협에 밀린 대기업들은 주목도가 떨어지는 안쪽 지면에 전면 광고를 실을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모았던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은 마지막 '빽면'에 광고를 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땐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주요 일간지 1면 광고를 차지했었다.

그렇다면 왜 대기업들이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를 내려고 열을 올리는 것일까.

모 그룹 직원은 그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일종의 '아부성 광고'란 것이다. 이 직원은 "대기업은 정권이 바뀌면 언제 어디서 돌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정부 눈에 들기 위한 몸사리기 차원에서 대대적인 축하 광고를 낸다"며 "재계는 지금 설설 기며 새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 뭣 모르고 나대다간 한방에 훅 갈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 경쟁 살벌
총수들 행사 참석 여부 두고도 뒷말 무성

박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해 주목된 대목은 또 있다. 대기업 총수들의 취임식 참석 여부였다. 지난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엔 재계 총수들이 참석해 새 정부 출범을 축하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강덕수 STX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김윤 삼양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취임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휴양차 해외 체류를 이유로 불참했다. 지난 1월11일 하와이로 출국한 이후 아직 귀국하지 않았다. 현재 일본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26일 전경련 회장단과의 면담 때도 해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었다. 삼성그룹은 이 회장을 대신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 김신 삼성물산 사장, 김석 삼성증권 사장, 김상항 사회공헌위원회 사장 등 경영진 5명이 참석했다.

신 회장도 해외출장중이어서 초청에 응하지 못했다. 최 회장과 김 회장은 구속 상태라 취임식에 가지 못했다. SK그룹의 경우 수감 중인 최 회장을 대신해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참석했다.

재계 총수들이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한 것은 이례적이다. 고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냉랭한 분위기

2003년 2월25일 노 전 대통령 취임식엔 주요 재벌 총수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당시 이 회장은 2개월 이상 해외에 머무르다가 귀국해 취임식장으로 향했다. 2008년 2월25일 이 전 대통령 취임식에도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재계 대표 7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그때 이 회장은 삼성특검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취임식에 참석했었다.

재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알면 서운할지 몰라도 과거에 비하면 이번 취임식엔 재계 핵심 총수들이 해외·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며 "과거 취임식과 분명히 대비된다. 재벌과 대기업 규제와 제한이 목적인 경제민주화 정책 때문에 생긴 새 정부와 재계의 냉랭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고 전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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