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황당 소송’ 사연

한국뉴스

코오롱 ‘황당 소송’ 사연

일요시사 0 720 0 0

234967517_b69cae1a_blank.jpg
설악산, 지리산…102개 산이 사유지?

[일요시사=경제1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황당 소송’이 시선을 끌고 있다. 해고 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불매운동을 막아달라며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등 전국 산 102곳에 가처분신청을 낸 것. 공공장소인 산이 소송 대상에 포함된 것은 유례가 없던 일. 노동자들은 “이러다 전 국토는 물론 ‘야호 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나올 판”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지리산과 설악산이 이웅열 회장 소유랍니까?”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02개 산 집회 금지’ 가처분 심리가 열렸다. 코오롱그룹의 패션과 화학, 산업자재 기업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5월, 최일배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장 외 2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지 못하게 해달라는 취지의 업무방해금지가처분신청을 접수한 데 따른 것이다.

혹 떼려다…

코오롱인더는 이들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전국 242개 코오롱 매장과 설악산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등 국립공원 15곳, 무등산 칠갑산 태백산 등 도립공원 16곳, 명지산 천마산 등 국립공원 9곳 등 전국의 유명산 102곳을 지정했다. 기업이 자사 건물 외에 공공 자산인 국립공원 등에서 특정인의 특정행위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또 최 위원장 등이 매장을 비롯해 전국의 유명산에서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피켓시위를 한다거나, 유인물을 불특정 다수에 나눠주는 행위를 할 경우 하루 100만원을 법원에 내도록 청구했다. 최 위원장 뿐만 아니라 제3자가 불매운동을 하는 것도 금지해달라고 했다.

이날 열린 심리에서 코오롱인더 측은 “불매운동으로 인하여 기업 신용과 명예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어 가처분신청이 불가피 하다”고 말했고, 최 위원장 측은 “불매운동은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를 제한할 만한 피보전권리는 물론 보전의 필요성조차 인정되지 않는 부당한 가처분 신청”이라고 맞섰다. 

코오롱인더스트리 해고노동자들이 모인 코오롱 정투위는 “코오롱이 계열사의 부실경영으로 야기된 경영위기 탓으로 78명의 노동자를 부당 해고했다”며 4월부터 전국 100여개의 등산로 등에서 불매 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주말마다 관악산, 도봉산 등지에서 ‘정리해고 하는 나쁜기업 코오롱스포츠를 입지 맙시다’는 문구가 담긴 조끼를 입거나 ‘부도덕한 기업’, ‘이상득’, ‘MB정권’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불매운동 내용이 담긴 리본을 나뭇가지에 매다는 등 불매운동을 진행해왔다. 또 SNS 등을 통해서 이 같은 소식을 알린 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코오롱 측은 “근거도 없이 기업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불매운동을 계속해 제품 매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룹 전체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며 “이미 4년 전 대법원에서 정당한 해고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해고자들이 영업방해 행위를 지속하고 있어 가처분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 측은 “이 불매운동의 목적은 복직을 위함이 아닌, 스스로 정리 해고의 희생자로서 정리해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회적 환기를 도모하려는 데에 있다”며 “등산객들에게 불매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을 권유하는 게 핵심”이라고 맞받아쳤다.

노조원 산 돌며 제품 불매운동 벌이자
플래카드·피켓시위 금지 가처분 신청

코오롱 노사는 지난 2004년 ‘임금은 절반으로 줄이 돼 구조조정이 없음’에 합의했지만, 그해 말 사측은 합의를 어기고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노동자 430여 명을 정리해고 했다. 갈등을 빚던 노사는 2005년 초 임금삭감을 전제로 ‘퇴직 강요 없는 희망퇴직’에 합의 했고, 그해 2월 78명을 추가로 정리해고 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지난 2009년 부당해고가 아니었다면서 코오롱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재판에서도 법원이 코오롱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코오롱스포츠에 대한 불매 내용이 담긴 옷을 입거나 물품을 소지하고 해당 102곳의 산에 등산하는 것이 금지된다.

불매 관련 플래카드를 설치하거나 스티커를 일반 공중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부착할 경우 하루 100만 원을 법원에 내야한다. 또 피켓 등에 ‘이상득’ ‘MB정권’ ‘박근혜’ ‘박지만’ ‘탐욕경영’ ‘부도덕한 기업’ 등의 문구를 사용할 수 없고, SNS와 인터넷 등에 관련 내용을 게시할 수 없다.

코오롱정투위 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최 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사업장이나 매장 앞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은 들어봤지만 개인 소유가 아닌 산까지 신청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엽기”라면서 “7월 말 다시 열리는 재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이런 재판을 한다는 자체가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역시 코오롱의 가처분 신청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이번 가처분 신청에 따르면 코오롱 노동자가 ‘박근혜’라고 쓴 피켓을 들고만 있어도 100만원씩 물리게 하라는 것”이라며 “정리해고 과정과 결과, 노사정책, 정권과의 유착관계 등 코오롱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기재한 문구는 거꾸로 검찰이 나서서 코오롱에 대해 조사해야 할 의혹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코오롱스포츠 불매를 알리는 물품을 소지하고 해당 산 입구까지는 갈 수 있으나 산은 오르지 못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라며 “산과 등산객까지 이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묶어두겠다는 ‘심술’로 보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류하경 변호사는 “전국매장과 전국의 주요 산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설정한 것은 그 자체로 피신청인들의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구인호 대구지부 대표 역시 “개인의 의사표현의 자유와 기업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놓고 어느 쪽이 공익에 우선하는 것인지를 판단할 것”이라면서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옷에 글자를 새기고, 알리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다. 만약 불이익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달 말 판결

어찌됐건 코오롱인더는 전국의 유명한 산에 가처분 신청을 하면 불매운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는 오히려 ‘황당 소송’으로 불매운동을 알리는 계기가 돼버렸다. 불매운동도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주말마다 전국 102곳의 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코오롱 불매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산행 인증샷을 올리며 해고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함께 7월 말 공개될 법원의 판단에 법조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0 Comments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