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류 ‘롯데가 형제’ 주판알 튕겨보니…
‘지분경쟁’ 아버지 재산 누가 더 챙길까
[일요시사=경제팀] 롯데일가에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그룹회장의 한 살 터울 친형이 갑자기 지분 매입에 나선 것. 기존 지분율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민감한 시기인 만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기업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왕회장’이 올해 91세 고령인 점도 두 형제 간 힘겨루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9일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겸 일본롯데상사 사장이 주식 643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6일부터 사흘간 이뤄진 이번 주식 취득으로 신 부회장의 보유주식수는 4만9450주에서 5만93주로, 지분율은 3.48%에서 3.52%로 늘었다. 투입금액은 10억원이다.
롯데제과는 롯데알미늄이 15.29%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뒤를 신격호 총괄회장(6.38%),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34%)이 잇고 있다. 신 부회장이 추가로 주식을 취득했다고 해서 기존 지분율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현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 수사 앞두고
계열분리 신호탄?
롯데그룹은 사상 최대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국세청은 얼마 전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통보도 없었고 150여명의 대규모 인원이 투입됐다. 특히 특별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이 동원됐다. 롯데그룹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특별 세무조사라고 볼 수 있다. 롯데쇼핑은 오너 일가가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실질적 지주사. 매출도 그룹 전체 매출액 82조원의 약 31%를 차지한다.
앞서 2∼6월에는 호텔롯데에 대한 세정당국의 조사가 있었다. 당시 국세청은 호텔롯데에 20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 재계 안팎에서는 CJ와 롯데그룹이 사정당국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따라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는 총수 일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을 이끌어내고 있다.
롯데그룹이 현 정부 들어서면서 사정당국의 주목을 받은 첫 번째 이유는 롯데그룹이 MB정부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MB정부 시절 롯데의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의 사업허가를 받았으며 맥주 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산롯데타운은 시작부터 특혜의혹에 휩싸였고 면세점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 독과점 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밖에 경남 김해유통단지, 대전 롯데복합테마파크, 경기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이 특혜설에 휘말리면서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해 ‘베이스캠프’로 사용한 롯데호텔은 ‘제2의 청와대’로 불리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MB정부와의 밀월 관계를 통해 무섭게 성장했다. 2007년 말 46개사에 불과했던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2011년 말 79개사로 크게 늘었다. 2008년 초 43조6790억원이었던 보유 자산 총액은 2012년 초 83조3050억원으로 늘었다. 5년새 2배가 불어난 셈이다.
경영권 승계 막바지…갑자기 변수 돌출
‘장남 일본 차남 한국’구도에 변화 감지
MB정부가 절정의 권력을 행사하던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성장폭은 더 크다. 2009년 계열사 54개, 자산총액 48조9000억원이었던 롯데그룹은 1년 뒤인 2010년 계열사 60개, 자산총액 67조2000억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재계 순위는 6∼7위권에서 단숨에 5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땅따먹기’도 수준급이다. 롯데그룹의 2008년 토지 보유액은 10조3153억원. 2011년 말 기준으로는 13조6245억원으로 10대 기업 중 토지 보유액 1위를 차지했다. 3년 사이에 무려 32.1%가 증가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룹 계열사 간 높은 내부거래 비중이다. 롯데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지난 2011년 14.19%에서 지난해 15.47%로 상승했다. 이는 10대 그룹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롯데는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를 의식해 지난 2월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에 맡겼던 영화관 매점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했지만 아직도 내부거래 비중이 과도한 계열사가 상당수로 파악된다. 롯데상사와 롯데정보통신, 대홍기획, 롯데닷컴, 롯데후레쉬델리카, 에스앤에스인터내셜날 등이다.
양측 지배력
강화에 촉각
롯데상사는 2011년 매출 9994억원 가운데 6510억원(65%)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으며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7497억원 중 4392억원(59%)을, 8029억원 중 4784억원(60%)을 계열사에서 올렸다.
롯데정보통신은 2009년 79%, 2010년 80%, 2011년 79%의 매출을 계열사들과 거래에서 올렸다. 대홍기획의 내부거래율은 2009년 96%, 2010년 92%, 2011년 67%로 조사됐으며 롯데닷컴은 2009년 49%, 2010년 53%, 2011년 66%에 달했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2009년 96% 2010년 93%, 2011년 95%의 내부거래율을 기록했으며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2010년과 2011년 매출 100%를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올렸다.
내부거래와 배당금 형태로 총수 일가에게 돌아간 자금 때문에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의 불똥은 오너 일가 쪽으로 튈 가능성도 보인다. 그룹 회장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6월 신 회장이 개인 돈 100억2300만원을 들여 롯데제과 지분을 4.88%에서 5.34%로 늘린 것과 신 총괄회장이 올해 91세의 고령이라는 점이 더해져 이번 신 부회장의 지분 매입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90년대 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동주·동빈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념겼다. 97년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캐미칼) 부사장에서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났고 당시 신 부회장은 일본롯데 전무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일본롯데는 신 부회장이 가져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상 이들 형제 중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를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는 호텔롯데가, 한국롯데는 롯데쇼핑이 각각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롯데쇼핑은 30여 개 계열사에 출자하며 신 회장이 이끄는 한국롯데의 중심이자 단순 계열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롯데의 주요 순환출자고리는 ‘롯데쇼핑→롯데카드→롯데칠성음료→롯데쇼핑’으로 이어진다. 롯데쇼핑은 롯데카드의 지분 92.6%를 보유하고 있고 롯데카드는 롯데칠성음료의 지분 1.5%를, 롯데칠성음료는 롯데쇼핑의 지분 4.3%를 갖고 있다.
실속계산 보니…형보다 아우
고령 ‘왕회장’지시 있었나
지난 9일 기업 경엉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롯데그룹 계열사의 순환출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계열사들의 지분 관계로 맺어진 순환고리는 51개. 이 중 43개 고리에 롯데쇼핑이 걸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쇼핑의 주요 주주는 신 회장(13.46%), 신 부회장(13.45%), 호텔롯데(8.83%), 한국후지필름(7.86%), 롯데제과(7.86%) 등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호텔롯데의 지분율이다. 일본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의 지분 19.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리고 신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다. 호텔롯데가 보유한 롯데쇼핑의 지분은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신 부회장이 롯데쇼핑 지분을 22% 정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호텔롯데는 롯데건설(38.34%), 롯데상사(34.64%), 롯데물산(31.07%), 롯데캐피탈(26.60%), 롯데손해보험(26.09%), 롯데닷컴(17.20%), 롯데케미칼(12.68%), 롯데쇼핑(9.58%), 롯데푸드(9.33%), 롯데칠성음료(5.83%), 롯데제과(3.21%) 등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롯데카드, 롯데리아,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산개발, 롯데로지스틱스, 롯데햄, 대홍기획 등 37개 계열사의 지분을 많게는 100%에서 적게는 1.24%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롯데건설, 한국후지필름, 캐논코리아, 롯데물산, 롯데손해보험, 롯데DF글로벌 등과 롯데쇼핑과 관계없이 호텔롯데가 독자적 출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StartFragment-->“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수도”
이러한 구조는 향후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깨질 경우 그룹 장악력에서 신 회장이 열세에 놓일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롯데그룹 전반을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질적인 경영권은 신 회장이 갖고 있으며 신 총괄회장이 일본롯데는 신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맡도록 교통정리를 해놨기 때문이다.
신 회장 스스로도 그룹 내 또 다른 주력계열사인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의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는 등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는 식품 계열사로서 유통 계열사와 함께 롯데그룹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그룹 내 51개 순환출자 고리 중 24개에 걸려있으며 롯데제과는 12개 고리에 들어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쇼핑 다음으로 덩치가 큰 계열사다.
신 회장은 지난 1월과 5월 롯데케미칼 주식을 202억원어치 매입했다. 지난 6월26일에는 롯데제과 주식 6500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 7580주를 각각 100억원, 99억원에 사들였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의 롯데케미칼 지분율은 0%에서 0.3%로, 롯데제과 지분율은 4.9%에서 5.3%로, 롯데칠성음료 지분율은 5.1%에서 5.7%로 높아졌다. 주목할만한 점은 신 회장이 개인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신 회장은 2003년 롯데제과 주식을 처음 매입한 후 지난 9년간 단 한 번도 개인 돈으로 지분 확장에 나선 적이 없다.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고리를 통해 2007년 말 46개였던 계열사 수를 지난해 말 79개사로 늘린 게 전부다.
신 회장의 이러한 움직임은 롯데그룹의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앞두고 경영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신 부회장이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롯데쇼핑은 제쳐두고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등 나머지 주요 계열사에서 우위를 점해 지배구조의 축으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계열분리 가능성도 점쳐진다. 신 회장은 IT(정보기술) 계열사인 롯데정보통신의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이다. 롯데그룹은 2006년 롯데쇼핑 이후 7년 동안 계열사를 증시에 상장한 적이 없다. 롯데정보통신의 최대주주는 롯데리아로 3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대홍기획(28.1%), 롯데제과(6.1%), 호텔롯데(2.9%), 롯데칠성음료(1.5%), 롯데장학재단(0.9%), 롯데삼강(0.4%) 등 계열사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그룹 오너일가는 신 회장(7.5%), 신 부회장(4%),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3.5%) 순으로 지분을 보유 중이다.
코리아세븐은 일본계 자금 유치를 위해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코리아세븐은 롯데쇼핑(51.14%)과 롯데제과(16.50%) 등이 대주주다. 전체 지분의 98.94%를 롯데그룹 계열사와 오너 일가가 소유 중이다.
롯데쇼핑은 싱가포르에 부동산투자회사(REITs)를 설립하고 기업공개를 통해 약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십년을 넘게 보유하고 있던 롯데카드 지분 1.24%를 지난 4월 293억원에 처분했고 최근에는 부산 국제빌딩 토지 및 건물을 121억원에 롯데케미칼에 매각했다.
MB정부 최대수혜
팔 걷은 국세청
이러한 롯데그룹의 움직임은 그간 롯데그룹의 보수적 경영방침과 비교했을 때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롯데는 기업공개를 꺼리고 외부투자 유치를 멀리하는 기업풍토로 잘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의 이러한 심상치 않은 최근 행보에 재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정기관의 관심이 롯데그룹과 오너 일가에 집중된 상태에서 돌출적 행동을 이어간다면 롯데그룹이 순환출자구조 해소와 계열분리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내 두 형제의 움직임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동주·동빈 승진 비교
신동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990년 일본롯데그룹 이사로 취임하면서 롯데그룹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같은 해 바로 일본롯데그룹 부사장 자리에 올랐고 2003년 롯데칠성의 해외담당 이사 및 롯데쇼핑 이사직을 맡으며 한국롯데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일본롯데상사 사장직과 함께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해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롯데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전에는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
91년 롯데 오리온즈(현·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 사장 대행으로 취임하고 95년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불러들이고 침체하던 팀을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
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롯데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 한국롯데의 경영권을 맡았다. 2004년부터는 롯데그룹의 정책본부장을 겸임하면서 케이피케이칼, 한화마트, 우리홈쇼핑, 대한화재, 마크로(중국), 마크로(인도네시아), 럭키파이(중국), 길리안(벨기에), 타이탄(말레이시아) 등을 인수하며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룹 회장에는 2011년 2월 취임했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