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과잉입법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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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과잉입법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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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실적주의 "일단 법부터 만들고 보자"

[일요시사=정치팀] 정치권의 과잉입법 폐해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현실을 외면한 포퓰리즘적인 과잉입법들이 남발되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과잉입법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가 하면 평범한 시민들을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도대체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시사>가 정치권의 과잉입법 천태만상을 살펴봤다.

과잉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지난 2011년 9월 개정돼 지난 2012년 3월부터 발효된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하 아청법)이다. 현 아청법 2조 5항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는 것을 모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 규정한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과 배포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8조 5항은 단순소지자도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날벼락 처벌

개정 아청법이 본격 시행된 이후 적발된 아동·청소년음란물사범은 지난해 3272명으로 전년도 대비 30배 이상 늘었다. 아청법 위반으로 신상정보등록 대상이 되면 20년간 경찰의 관리를 받고, 심한 경우 신상정보가 주위에 고지되기도 한다. 6개월마다 경찰관과 면담해 신상정보 변경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또 국가시험 응시자격이 박탈되고 10년간 교육기관과 의료기관 취업도 제한된다.

아동성범죄를 근절하겠다며 야심차게 시행한 법이었지만 아청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무심코 파일을 내려 받거나 업로드 하는 과정에서 범죄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또 아청법 시행 이후에는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성인영상물임에도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아청법과 관련해서는 신상정보등록 대상자를 관리하는 일선 경찰들도 사소한 위반자까지 등록해 관리하면서 정작 강력성범죄자 관리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서는 재계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계는 사실상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인 상속·증여세법 개정안도 과잉입법의 전형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대기업들을 제재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지만 이 법안은 황당하게도 중소·중견기업들의 반발로 현재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정작 과세대상자들을 추려놓고 보니 대상자의 절대다수가 중소·중견기업인이었던 것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은 기업현실을 모르는 탁상정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고, 당황한 정부와 정치권은 중소기업을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민주화 입법 중 일부는 헌법에 명시된 이중처벌금지 원칙을 어긴 과잉입법이란 지적도 있다. 일례로 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존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 행정명령, 업무상 배임죄까지 적용돼 무려 '4중 처벌'의 소지가 다분하다.

성범죄자 양산하고 경제 발목잡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

과잉입법이 국내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201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하 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이다. 화평법은 해외 선진국들과 달리 소량의 신규 화학물질이라도 의무적으로 정부에 등록하고 평가받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의 침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화평법이 시행될 경우 국내에서는 연구개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화관법의 경우 쟁점은 화학사고 발생 시 과징금으로 해당사업장 매출액의 5%를 내야 한다는 조항이다. 업계는 과징금으로 매출액의 5%를 내라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처벌을 당초 안보다 대폭 완화했다"며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화관법의 초안은 과징금을 매출액의 50% 이상으로 매기도록 규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고가 한번만 발생해도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화관법은 화학물질 사고 발생 시 '즉시'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즉시'라는 개념이 불확실해 이를 악용한 단속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서영교, 홍종학 의원이 발의해 정무위에 계류 중인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 개정안도 과잉입법의 한 사례로 지목되며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법안은 채무자가 변호사, 비영리 민간단체 등을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추심인(금융회사)이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도록 하는 취지의 법안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은 채무자와의 연락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채권자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금융권에서는 빚을 돌려받으려는 합법적인 행위가 가로막히면 대출 자체가 위축되고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되는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과잉입법이 남발되고 있는 것은 의원들의 입법실적주의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19대 국회는 개원한 지 불과 1년4개월 만에 6000건에 육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겉보기엔 19대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입법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법안 통과율은 1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어 부실입법이 남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일부 의원들은 법안을 시행하는 데 드는 필요예산을 전혀 산출해보지도 않고 법안을 만드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의원은 자신이 공동발의를 해놓고도 정작 표결 때는 반대표를 던져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입법공청회에 참석해보면 전문가들을 잔뜩 불러다 놓고 법안을 처리해야 할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의원들은 이미 법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 마쳤기 때문에 공청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졸속으로 법안이 처리되다 보니 과잉입법이 남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법'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권의 입법활동은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은 오히려 과잉입법으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남발되는 과잉입법을 막기 위해서는 법안 제·개정의 타당성을 미리 검토하는 사전평가제도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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