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불편한 '정치인펀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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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불편한 '정치인펀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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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치는 불법정치자금 모금 통로?"

[일요시사=정치팀] 지방선거의 해가 돌아왔다. 이맘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돈'이다. 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준 제도가 있다. 바로 '정치인펀드'다.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투명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는 정치인펀드.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올해는 빅3선거 중 하나인 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선거가 임박해오면 정치인들은 돈 걱정에 시달린다. 선거를 한번 치르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손해 없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 준 것이 바로 '정치인펀드'다. 정치인펀드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펀드를 만들어 무려 41억원을 모았다.

정치인펀드는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정치인펀드는 선거가 끝나면 후원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는 점에서 정치인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는 정치후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인펀드는 후보자들이 본인을 지지하는 시민들로부터 십시일반 선거자금을 마련하면서 선거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검은 돈이 개입될 여지를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조직 및 자금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과 무소속 후보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새로운 정치자금 조달 수단이다. 게다가 선거 출마자는 펀드 모금을 홍보하며 자연스럽게 이름을 많이 알릴 수 있고,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정치후원금(1인당 1회 500만원, 1년 2000만원 제한)과 달리 투자금액에 제한도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고, 돈도 돌려받으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물론 그렇다고 큰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정치인펀드를 개설한 후보자들이 내세운 수익률은 대부분 연 6% 정도로 은행 예금금리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실제로 돈을 빌리는 기간은 약 3개월이므로 이자 부담이 낮아진다.

정치인펀드의 경우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의 통상적인 이자율과 비슷하게 하면 문제가 없지만 이보다 낮거나 높은 이자율을 설정하면 정치자금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 시엔 법정선거비용이 보존되므로, 원금 손실 위험도 비교적 적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011년 10·27재보선에서 '박원순펀드'를 결성해 38억5000만원의 선거자금을 47시간 만에 모았다. 특히 대선이 열렸던 지난 2012년엔 정치인펀드를 통해 모은 자금만 1000억원대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야말로 정치인펀드의 전성시대인 것이다.

대부분 상환요구 안해, 정치후원금?
후보자가 '먹튀'해도 보상 길은 막막

따라서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수많은 정치인펀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치인펀드가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 부작용도 우려된다. 우선 정치인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우리나라만의 제도다. 최근에서야 투명한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아직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정치인펀드가 '유사수신 행위에 관한 법률(인가 받지 않고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안정성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선거 때마다 야권단일화 바람이 불면서 후보들이 중도사퇴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펀드를 모집하던 중 출마 포기선언을 했다. 선거 도중 후보가 사퇴하면 선거비용을 보존 받을 수 없다.




후보자가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지 못했을 경우도 문제가 된다.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법정선거비용이 전액 보존되고 10% 이상일 경우 반액이 보존된다. 그 이하는 선거비용을 보존 받을 수 없다.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보존 받지 못해 지급 불능 상태에 처하면 펀드투자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막하다.

만약 후보자가 자금부족을 이유로 펀드 환급 불가를 선언해도 이를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후보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민사 소송 등 법적 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른바 '먹튀'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소액투자자의 경우 사실상 지지후보를 위한 기부였다고 생각하는 만큼 투자금의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펀드자금을 모은 정치인은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셈이 된다.

정치인펀드가 투명한 선거를 만든다고 하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하면 오히려 합법적인 뇌물이 오갈 우려도 있다. 투자금액에 제한이 없고 돈을 돌려줄 때 법적으로 이 과정을 공개할 의무도 없어서 짜고 치는 불법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변질될 우려가 상존하는 것이다. 상환하지 않은 펀드자금은 부채로 잡히니 재산신고 때 정치인의 재산액을 크게 낮춰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잡음도 있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지난 2010년 창당한 국민참여당 조성 펀드에 돈을 투자했던 사람들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 참여당계는 서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투자금을 반환하지 않았다.

안전장치 없어

한편 정치인펀드를 통해 돈을 모은 정치인들은 득표율 15%에 울고 웃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법정 선거비용이 전액 보존되기 때문이다. 득표율이 낮은 후보의 경우 펀드 환급을 위해 사비를 털어야 한다. 법적 제도가 미비해 갚지 않아도 되지만 이른바 먹튀를 할 경우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차기 선거를 노리고 있는 정치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12년 4.11총선에서 낙선한 강용석 전 의원의 경우 2억원 가량의 강용석펀드를 개설해 모금 시작 5시간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었다. 하지만 득표율이 4.3%에 그쳐 자신의 사비를 털어 투자자 357명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줬다.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인펀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인데 법적 장치는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치인펀드의 모집과 환급 등에 대한 기준이나 금융당국의 검사권한 강화, 정치자금법에 근거한 법적 장치 등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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