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로 본 재벌가 비사 삼양그룹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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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금기어로 본 재벌가 비사 삼양그룹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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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완장' 떼고 싶지만…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그 세 번째는 삼양의 '친일'이다.

삼일절과 현충일·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뚜렷한 족적

물론 후손들에게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지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기업은 어디일까.

친일 논란 기업하면 삼양그룹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일제 때 '완장'을 찼던 고 김연수 창업주 때문이다. 고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의 동생으로 호남 대지주였던 김 창업주는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국내 기업에 근대적 경영기법을 처음 도입했다. 1924년 삼양그룹을 설립한 이후 1961년 전국경제협의회(전국경제인연합회 전신) 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문제는 '친일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일제 당시 주요기구 관직에 이름을 올렸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반민족위)에 따르면 김 창업주는 1941년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 참의로 임명돼 해방될 때까지 활동했다. 그는 중추원 회의에서 "일본정신의 체득, 황도정신의 삼투를 통해 정신적 방랑자인 반도 민중을 구제·재생시키자"는 취지의 참의답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창업주 일제 때 주요기구들 관직 맡아
친일반민족 행위자 낙인…재산 몰수도

또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의 '일제 직함'도 보유했었다. 게다가 1935년엔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에까지 등재됐다. 친일반민족위는 "김 창업주는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 거액의 국방헌금을 헌납하는가 하면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며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도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창업주는 1948년 시작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부터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정상참작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친일반민족위는 2009년 6월 일제에 적극 동참했다는 이유로 김 창업주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했다. 친일반민족위는 이어 2010년 2월 "친일행위로 얻은 재산을 몰수한다"며 김 창업주가 보유했던 전북 고창군 땅 1만여㎡(약 3030평)를 국가에 귀속했다.

김 창업주의 후손들은 발끈했다. 김 창업주의 손자 김모씨는 친일반민족위 처분에 불복, 고창 땅을 몰수한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김 창업주의 행위는 일제 말 총독부의 강요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극적·피동적으로 한 것"이라며 "오히려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만주에 농장을 개척해 유랑하는 농민들을 정착하게 하는 등 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발끈한 후손들 
소송서 모두 패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창업주의 땅을 친일재산으로 분류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김 창업주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돼 재직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본 것은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2심 재판부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임명돼 실질적으로 활동한 것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며 "기업가나 유력인사로서의 통상 범위를 넘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고도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었다.

김 창업주의 일제 당시 행적을 둘러싼 친일 관련 소송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친일반민족위가 김 창업주를 친일인사로 지명하자 그의 후손 30여명은 2009년 9월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김 창업주는 일제의 침략전쟁이나 황국신민화를 위해 나선 적이 없다"며 "김 창업주가 일제 총독부의 강요로 민족기업인 경성방직 이름으로 국방헌금을 낸 적이 있지만, 이는 일제의 강요해 의한 것으로 민족기업 존립과 종업원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박했다.

친일반민족위가 국방헌금을 낸 행위를 법인이 아닌 김 창업주 개인의 행위로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친일의 낙인을 찍었다는 것. 따라서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한 친일반민족위의 처분이 취소돼야 한다는 게 유족들의 요구였다. 유족들은 오히려 김 창업주가 독립운동을 지원한 민족기업가인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김 창업주는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대는가 하면 독립운동가에게 자금과 도피처를 제공하고 징병을 피해 온 수많은 젊은이들도 공장에 숨겨줬다"고 항변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법원은 2010년 12월 "김 창업주의 친일행위가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에도 재판부는 "기업인으로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해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 등 일제하의 권력자의 위협이나 강압에 못 이겨 일제의 식민통치에 가담했다는 사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양그룹 측은 친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난감할 수밖에 없다. 자칫 불똥이 튀어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역사가 깊은 기업 치고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없지만, 그래도 '일본'얘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란다"고 귀띔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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