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무죄, 무려 23년만에 누명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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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무죄, 무려 23년만에 누명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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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사회2팀] 강기훈 무죄, 무려 23년만에 누명 풀었다

강기훈 무죄 소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지 23년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13일,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복역한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고(故) 김기설이 분신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의 필적이 김기설 본인의 것이 아니라 강씨의 필적이라고 판단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결과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글은 문자형태가 단조롭고 쓰기가 쉬워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유사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희소성 있는 특징이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판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강씨의 필적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감정인은 또 '해보지'의 '보'자를 '오'자로 잘못 판독했는데 이는 오히려 강씨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고 봐야할 유력한 자료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기설의 필적이 아니라는 당시 감정 결과에 대해서도 "정자체로 이뤄진 기존 필적과 속필체로 된 유서를 단순 비교·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기설이 주변인에게 분신자살을 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등 자살 전에 보였던 행적 등과 당심에서 새로 감정한 감정결과를 종합하면 이 유서는 김씨가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과 함께 심리돼 하나의 형이 선고된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며 "이미 복역했던 형에 산입되므로 다시 형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첨언했다.

판결 선고를 마치고 나온 강씨는 "재판이라는 게 진실을 전부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당시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잘못됐다고 고백한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나는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았지만 어쩌면 옆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들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위안과 도움을 준 수 많은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명지대 1학년생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고, 이 사건으로 대학생들의 항의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국면전환용 사건이 필요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8일 김기설이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한 뒤 투신해 숨지자 그 배후로 강씨를 지목, 국과수 필적 분석 결과를 내세우며 강씨를 구속기소했다.

사건 발생 16년만인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강씨가 아닌 김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법원도 재심 개시를 결정했지만 검찰의 재항고와 3년이 넘는 대법원의 장고 끝에 재심은 2012년 10월19일에서야 최종 결정됐다.

재심 공판에서도 검찰과 강씨는 유서의 실제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을 재감정했고 "유서는 김씨가 작성한 것"이라는 취지의 결론이 담긴 감정서를 받았다.

(사진=뉴시스)


김해웅 기자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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