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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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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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윤병세-남재준 '셋중 하난 날아간다'


[일요시사=사회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또다시 정쟁의 한가운데 섰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댓글을 통한 선거 개입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구나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문서는 모두 중국 정부가 직접 발행해 온 문서여서 현 정부는 외교적인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서의 입수 경위를 놓고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의 해명은 서로 엇갈리는 상황. 국정원발 '북풍'은 2년 사이 메가톤급 '역풍'으로 돌변, 박근혜정부의 도덕성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진상조사에 착수하면서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이번 증거조작 의혹의 '몸통'으로 거론되면서 또다시 정쟁의 격류에 휘말렸다.

공무원 간첩사건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이른바 '북풍'을 겨냥, 화교 출신 공무원을 간첩으로 지목한 공안사건이다.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에 근무했던 유모(34)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에 따라 탈북자 리스트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지난 1월13일 긴급 체포된 뒤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계속 말바꾸기


그러나 유씨는 지난해 2월 1심에서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항소했고, 재판 과정에서 유씨가 북한에 드나들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중국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는 출입경기록 등이 재판부에 제출됐다.

그런데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문서에서 위조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14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검찰이 유죄의 증거로 제출한 출입경기록 등은 중국 정부에 확인한 결과 모두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국정원과 검찰, 외교부까지 동원돼 사건의 진상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고, 지난 19일 검찰은 진상조사팀을 구성했다.

검찰은 먼저 중국 당국이 실제로 문서를 발급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더불어 국정원이 어떤 경로로 문서를 입수해 검찰로 넘겼는지, 전달 전후로 위조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사실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진상조사의 핵심은 유씨가 북한을 출입한 기록이 기재된 출입경기록과 출입경기록을 발급한 공식기관 명의로 된 사실확인서, 유씨가 북한을 드나든 경위가 설명된 중국 당국의 회신문 등 3가지 문서의 진위 여부다.
이중 출입경기록은 "북한에 가지 않았다"는 유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검찰이 공을 들인 문서로 전해진다. 그러나 재판의 핵심 증거인 출입경기록은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급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한 내막을 조금 더 살펴보자.


문서입수 경위 놓고 해명 서로 엇갈려
국정원-법무부-외교부 진실게임 비화


민변은 중국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 공안국 명의로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았으며, 검찰은 허룽시 공안국 명의로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민변은 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하는 공식기관이 아니라는 점과 지린성이 허룽시보다 상급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자료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아울러 민변이 입수한 자료에는 '출경-입경-입경-입경' 순으로 유씨의 출입국이 기재된 반면 검찰 쪽 자료에는 '출경-입경-출경-입경' 순으로 유씨의 행적이 적혀 있다. 얼핏 보면 검찰 쪽 설명이 사실과 부합해보이지만 민변은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사무소)을 통해 당시 출입경기록 발급 시스템상 오류가 있었음을 확인했고, 세 번째가 '입경'으로 기록된 문서가 진본이라는 정황설명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상황이다.

때문에 검찰이 증거로 내세운 세 번째 기록(출경)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혹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검찰은 "중국 정부가 출입경기록을 발급했다"는 사실확인서를 재판부에 냈다. 지난 17일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사실확인서에 출입경기록이 첨부된 상태로 문서를 전달받았으며 중국 선양주재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문건(회신문 포함)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장관의 말은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지난 18일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대검찰청의 요청에 따라 한국총영사관으로부터 입수한 문서는 사실확인서 단 1건이었다"고 밝혔다. 즉 황 장관이 언급한 출입경기록 등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황 장관은 다음날인 19일 "수사기관으로부터 출입경기록과 회신문을 받아 검증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문서를 보내 답변을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황 장관은 '그 수사기관이 어디냐'는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국정원"이라고 뒤늦게 배후를 밝혔다. 정리하면 증거로 제출된 출입경기록을 검찰에 넘긴 조직은 중국 정부가 아닌 국정원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국정원 직원과 함께 해외에서 탈북자 호송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부장(국정원 직원)이나 영사관을 오고가는 삼촌(국정원 직원)들이 기록을 일부 손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로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 이번 '문서 작업'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그러나 의혹의 중심에 있는 국정원은 아직까지 어떤 반박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국정원은 "3가지 문건 모두 정식 외교루트(총영사관)를 거쳐 획득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3가지 문서 모두 발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민변이 공식기관을 통해 발급받은 문서와 국정원이 입수한 문서는 공증처 도장 양식이 다르고, 맞춤법도 다르며, 심지어는 본인이 아니면 발급할 수 없는 출입경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단 한·중 각 기관이 정상적인 수사공조를 거쳤다면 중국 측은 수사협조를 했을 터.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주중대사관이 직접 발급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국정원의 문서 입수 경위도 논란의 대상이다.


외교문제로 가나


이 같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진실이 완벽히 규명되기까지는 여러 난제가 예상된다. 특히 유씨를 기소한 검찰은 '셀프조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만약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검찰에 불어 닥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때문에 일종의 '출구 전략'을 구상 중이란 전언이 검찰 안팎에 들린다.

가장 설득력 있는 건 황 장관의 사퇴다. 이미 국회 본회의에 해임안이 상정될 정도로 미운털이 박힌 황 장관의 용퇴는 역풍을 최소화하는 시나리오다. 일각에선 남재준 국정원장의 동반사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의 시각이다.

청와대가 직접 사건을 챙길 경우는 윤 장관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국 정부가 먼저 책임자의 형사 처분까지 들먹이며 강경한 태도를 취한 만큼 외교적 결단이 수반되지 않겠냐는 것. '양치기' 국정원이 지핀 불씨가 이곳저곳에 잿밥을 뿌리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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