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신흥재벌 '왕서방'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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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흥재벌 '왕서방'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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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부호와 모종의 거래


[일요시사=사회팀] 개인자산만 3조원이 넘는 중국의 대부호가 케이먼 군도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부호와 함께 나란히 유령회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한 사업가가 있었다. 최초 중국인으로 알려졌던 이 사업가는 확인 결과 한국인 왕모씨로 밝혀졌다. 서울과 중국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하고 있는 왕씨. 왕씨는 왜 중국인과 함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던 것일까.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재계를 아우르는 유명인사들은 케이먼 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여기서 조세피난처는 실제 발생한 법인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또 대부분의 조세피난처는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법인 입장에서 '검은돈' 조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때문에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적인 비자금 운용이나 탈세를 위한 창구로 의심받는다.


중국인? 한국인!


앞서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작업한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은 모두 245명"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명단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씨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이수영 OCI 회장, 연극배우 윤석화씨 등 각계 유력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사회 고위층의 집단 탈세 의혹에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모르는 일”이라고 혐의를 잡아뗐다. 또 이들은 "명의만 빌려줬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세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들은 왜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나라에 계좌를 개설해야 했을까.

지난달 24일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32명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가된 한국인 명단에는 선궈쥔 인타이그룹(이하 인타이) 회장과 함께 케이먼 군도의 유령회사 '이소 인터내셔널(ESSO International (Group) Ltd)' 공동 이사로 등재된 한국인 왕모씨가 있었다. <뉴스타파>는 왕씨를 서울 강남에 있는 수출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인타이는 중국 내 유통·부동산 업계의 강자로 국내에선 롯데그룹의 중국 현지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 롯데그룹은 인타이와 합작으로 '인타이롯데백화점'을 베이징 등에서 운영했지만 실패한 뒤 지금은 파트너십을 해지한 상황이다.

인타이그룹의 총수 선궈쥔 회장은 개인자산만 29억달러(약 3조1000억원)로 추정되는 중국 내 손꼽히는 갑부다. 지난해 그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알려진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과 함께 물류회사 '차이냐오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를 설립,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선궈쥔 회장은 마윈 현 차이냐오 회장이 만든 중국 내 그룹 총수들의 사교모임 '강남회'의 창립멤버로 소개됐다. 중국 재계에서 선궈쥔 회장의 남다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류무역업자 왕모씨 수상한 행보
3조 갑부와 손잡고 유령회사 설립


그런데 한국인 왕씨는 이런 선궈진 회장과 어떤 연유에서인지 2007년 5월 케이먼 군도에 '이소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이소 인터내셔널'의 이사는 법인을 빼고 모두 3명이며, 이 가운데 왕씨가 포함됐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또 <뉴스타파>는 "왕씨의 주소지가 중국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JR28'로 시작되는 한국 여권번호(종로구청 발행)를 확인했고, 여권에 기재된 왕씨의 국적이 한국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왕씨는 도대체 누구일까. <일요시사>는 왕씨가 무슨 연유로 유령회사를 설립했는지 궁금했다. 우선은 왕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수출업체 A사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A사는 '영 캐주얼 여성복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해당 브랜드는 중국 내 서버로 운영되는 자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적힌 브랜드 소개를 보면 '한국 브랜드'라고 명시돼 있다. 즉 왕씨는 자신이 런칭한 브랜드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의류·무역업자다.

패션계 복수 관계자에게 A사를 물었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는 답을 들었다. 대신 그들은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가 꽤 많다"고 말했다.

A사는 2006년 2월 서울 강남에서 자본금 30억원 규모로 도매업을 시작했다. 사원수는 200명, 업종은 의류·원단·무역으로 소개됐다. 이로부터 1년 뒤 A사는 인근 건물 3층으로 등록주소를 옮겼다. 그리고 현재는 다른 법인명으로 고급 빌딩 2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사의 설립과 법인명 전환이 페이퍼컴퍼니가 설립된 2007년 전후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정리하면 왕씨는 ▲2006년 2월 A사를 설립한 뒤 ▲2007년 5월 페이퍼컴퍼니의 등기이사가 됐고 ▲2008년 4월 국내 법인명을 전환했다. 여기서 A사의 법인명과 역외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법인명은 동일했다.

또 2008년 4월 왕씨는 A사의 법인명을 변경한 것이 아닌 자본금 1억원 규모의 다른 회사(이하 B사)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A사의 업무가 B사로 이관된 것으로 보인다. 즉 국내에 있던 A사를 해외로 넘긴 뒤 이름만 다른 B사를 새로 만들면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2013년 기준 B사는 등록된 회사 규모가 A사보다 1/20로 작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유명 성형외과가 밀집한 강남의 한 번화가. 기자는 A사가 최초로 임대했던 건물을 찾았다. 그러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곳은 의류업체였다. 이후 기자는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지만 "모른다"는 말만 들었다.

B사가 사무실로 썼다던 다른 건물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B사는 건물 2층과 3층을 사용했는데 건물 3층은 비어있었으며, 중국집 전단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2013년 10월부터 전기료가 일부 미납된 것도 보였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해당 건물 임대료가 "보증금 2000만∼2500만원에 월 150만∼200만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B사가 있는 빌딩을 찾았다. 직원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다. "말할 게 없다. 빨리 나가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말할 게 없다"


B사의 브랜드는 중국내 70∼80개의 매장에 입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대량 입점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인이) 중국산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와 역수출하는 건 흔한 경우지만 한국인이 중국 현지에서 시장을 직접 노리는 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왕씨는 현재 중국 현지에 수백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사세를 확장 중이다.

한국에서 A사가 설립될 당시 실무를 맡았던 ㅅ씨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중국인이란 의혹을 샀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왕씨와 비슷한 경우다. ㅅ씨의 유일한 연락처로 남아있는 이메일은 없는 계정으로 확인됐다. 이어 기자는 A사와 B사에서 일했던 복수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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