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헛발질' 대기업 외식업 굴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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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헛발질' 대기업 외식업 굴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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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한 회장 딸…사업 말아먹고 자숙중

[일요시사=경제1팀] 박민우 기자 = 외식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재벌 기업들이 울상이다. 야심차게 출시했던 신규 브랜드들이 적자에 허덕이다 못해 줄줄이 간판을 내리고 있어서다. 외식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치던 재벌 2∼3세들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초라한 성적표에 경영 능력까지 도마에 오르면서 안팎으로 심란한 상황. '외식업 굴욕'을 맛본 재벌가들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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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푸드빌 외식브랜드 '씨푸드오션'

CJ푸드빌, 신세계푸드, 매일유업, 대상 등. 내로라하는 식음료 업체들이 잇따라 외식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한때 앞 다퉈 패밀리 레스토랑, 씨푸드 레스토랑과 같은 외식업에 진출했지만, 요란했던 시작에 비해 결과는 초라할 정도다. 전반적인 경기불황에 따른 외식수요의 감소에 따른 원인도 있지만 대기업들이 너무 획일화된 고급화 전략에만 치중한 나머지 고객범위를 넓히지 못해 경쟁력이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꿈 품은 사업
애물단지 전락

매일유업은 재계 미식가로 소문난 김정완 회장 주도하에 야심차게 외식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최근 폐점하는 브랜드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매일유업이 운영하던 스시 전문점 '하카타 타츠미'가 지난해 문을 닫은 데 이어 인도요리 전문점 '달(Dal)'과 일식 전문점 '만텐보시' 사업도 철수했다.

만텐보시는 지난 2010년 경기도 일산 현대백화점 킨텍스 1호점을 시작으로 수도권에 4개 매장을 운영해왔다. 2012년 12월과 지난 1월 잇달아 매장을 철수한 데 이어 지난 3월21일 마지막 남은 매장인 을지로 페럼타워점도 영업을 종료했다.

김 회장이 2007년 외식사업에 본격 진출하면서 가장 먼저 론칭한 '달' 역시 강남권에 5개까지 매장을 늘렸다가 현재는 역삼점 1개만 남아 있다. 이 매장의 영업권도 최근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두 브랜드 매장은 주요 상권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입점했지만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해 적자폭을 키웠고 결국 폐점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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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유업 외식브랜드 '달'

현재 남아 있는 매일유업의 외식브랜드는 프리미엄 커피 전문점 '폴바셋', 샌드위치카페 '부첼라' 등을 포함해 7개뿐이다. 남은 브랜드의 매장 수도 대부분 1∼3개 수준에 그치고, 분기마다 수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지만 김 회장의 '외식업 의지'가 워낙 확고해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리온그룹 외식사업부가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 '마켓오' 여의도점도 지난 3월14일부로 문을 닫았다. '직장인들의 랜드 마크가 되겠다'며 개점한 지 2년 만이다. 이로써 '마켓오' 매장은 도곡점과 압구정점 2곳만 남게 됐다.

오리온은 한때 '외식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2000년대 초 패밀리레스토랑 붐이 일던 당시 롸이즈온 베니건스를 국내 첫 오픈했다. 현재 바른 손에 매각됐지만, 당시 베니건스 브랜드 위상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재벌가 2∼3세 외식사업 성적 '마이너스'
매일유업·오리온…잇달아 폐점해 '망신'

이 사업의 성공을 이끈 주역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딸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이 부회장은 베니건스 성공에 힘입어 2004년 패밀리 레스토랑 '마켓오'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국내 최초로 유기농 퓨전 레스토랑 개념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후 수익성이 악화되자 '유기농' 식재료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버렸고,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동시에 이 부회장은 마켓오 비즈니스룸, 하우스웨딩 등 부대서비스로 눈을 돌렸고 정체성을 잃고 말았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푸드의 외식브랜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006년 브랜드 명품화를 외치며 시작한 해산물뷔페 '보노보노'는 지난 3월22일 성수점을 폐점했다. 지난해 10월 홍대점을 접은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보노보노 매장은 서초점, 삼성점, 마포점 등 3개 뿐이다. 

CJ그룹 계열사인 CJ푸드빌 역시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쳤다. 해산물 레스토랑 '씨푸드오션'이 폐점한 데 이어 '피셔스마켓'이 지난달 문을 닫았다.

  
 ▲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가 운영 중인 '메종 드 라 카테고리'

2006년 론칭한 씨푸드오션은 한 때 점포수를 15개까지 늘렸지만 지난해 12월31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당시 녹번점, 대림점, 구월점, 천안점 등 4곳만이 남은 상태였다.

또 다른 해물 레스토랑인 피셔스마켓 매장 2곳은 차별화를 강화시켜 유지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문을 닫았다. 해산물 시장 수익이 좋지 않은 데다 일본 방사능 수산물 우려 등으로 더욱 실적이 악화된 탓이다.

이와 함께 실적이 부진한 차이나팩토리 일부 영업점도 올 상반기 폐점설이 도는 등 외식 사업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6년 말 오픈한 차이나팩토리는 현재 7개 매장이 운영 중이며 2010년 이후 신규 출점이 전무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인천예술회관점이 문을 닫았다.

복합외식공간을 모토로 운영했던 CJ가로수타운의 부진도 마찬가지다. 이곳 2층과 3층에 입점했던 브랜드 비비고와 로코커리는 지난해 말 폐점됐다. 로코커리 서울 건대점도 지난달 문을 닫으면서 이 브랜드는 CJ건물 지하에 단 하나의 매장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고급화 명품화
고집하다 낭패

구설에 오르다 결국 외식사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상무가 추진한 퓨전레스토랑 '터치오브스파이스'가 대표적. 지난 2010년 9월 선보인 '터치오브스파이스'는 불법 영업 논란이 일면서 출점과 동시에 잡음에 시달렸다. 종로점이 옥상 부지를 불법으로 증·개축해 메인홀로 활용, 건축법과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사실이 알려진 것.

급기야 대상 측은 1호점인 종로점을 폐점하고 당초 2호점으로 예정됐던 명동점만 운영해오다 그마저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현재는 터치 앤 스파이스 점포 하나만 운영 중이다. 오픈 당시 내세웠던 '5년 내 매장 50개, 연매출 500억원' 목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불법영업 논란
골목사업 침해

외식업에 미련이 남은 임 상무는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본인 소유 건물 1, 2층에 캐주얼 프렌치 레스토랑인 '메종 드 라 카테고리'를 선보였다. '메종 드 라 카테고리'는 이미 인기가 높은 라 카테고리의 인지도에 힘입어 초반에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가격 대비 질이 떨어진다는 불만과 함께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새롭게 전개한 외식사업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임 상무의 외식 사업 경영 능력에는 또 한번 물음표가 찍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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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온 외식브랜드 '마켓오'

대명그룹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고 서홍송 대명그룹 창업주의 아들인 서준혁 대명코퍼레이션 사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떡볶이 사업 '베거백'이 대표적 사례다. 서 사장은 지난 2009년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 진출을 본격 선언하며 강남역 인근에 떡볶이 전문 레스토랑 베거백을 오픈했다. 서 사장은 '베거백' 오픈 당시 "한국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떡볶이 요리를 고급화·다양화한 베거백 브랜드로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베거백은 이내 구설에 휩싸였다. 대기업이 분식집에서나 팔 법한 떡볶이 사업에 착수했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관계당국이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진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비난의 수위는 더욱 높았다.

서 사장은 아랑곳 않고 꿋꿋이 사업을 벌였다. 비발디파크, 목동, 강남 등 모두 3곳에 매장을 냈다. 그러나 따가운 눈총을 받은 사업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목동점과 강남점이 문을 연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매출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적자에 점포수 정체…명품전략 발목 잡아
대상·대명·사보이…구설 시달리다 철수

사보이상사 창업주의 손자인 조현식 사보이호텔 대표는 미국에 본사를 둔 테마 레스토랑 '카후나빌'을 국내에 들여왔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2002년 문을 연 카후나빌은 당시 음식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화해 매장 내에 야자수나 폭포 등으로 열대 분위기를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올림픽공원 1호점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 가맹업을 시작했고 런칭 1년도 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등 젊은 고객층을 사로잡았다. 단기간에 '외식업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카후나빌은 그러나 2008년 돌연 매각됐고, 수많은 뒷말을 남긴 채 현재까지 자취를 감춘 상태다.

재벌 2∼3세들이 외식 비즈니스에서 잇따라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음식의 유행 패턴에 따라 외식업의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88올림픽 이후 이탈리아, 중국, 일본음식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다 90년대 말 퓨전음식이 등장하더니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기본'에 충실한 각국의 '정통요리'나 '웰빙요리'가 대세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화' '명품화' 전략에만 치중한 재벌가의 외식 브랜드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브랜드 마케팅 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재벌 기업들의 외식 사업은 '강남권에 위치하면서 고급화'만을 고집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점이 폐점으로 이어지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없이도
돈 되는 사업?

오너들의 전문성 부족도 실패 원인으로 꼽혔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외식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단시간에 투자 대비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분야여서 지식을 딱히 필요로 하지 않았다"며 "대규모 공장이 필요 없는 데다 외상도 없어 현금 확보가 수월했고 수요도 확실했다. 재벌가 입장에서는 비교적 '우아하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으로 통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외식업에 뛰어들어, 급변하는 변수에 대응할만한 차선책이 없다보니 적자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외식업으로 대박을 터뜨리고자 하는 재벌은 거의 없겠지만, 사업이 잘 안되면 조용히 털어버리고 철수하면 된다는 식은 이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철저한 마케팅 전략과 품질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pmw@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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