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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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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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환 지존파 두목 <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인육을 먹는다"는 '연쇄살인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다. 지존파로 명명된 이들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로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터졌고, 의기양양한 20대 초중반 사내들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 1994년 9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이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이들의 말이 저릿저릿한 이유다.

지난 7월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관객과 만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1994년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당시의 시대상과 세월호가 침몰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여러모로 대비되고 있다.

공포의 1994
혼돈의 2014


문제의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19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김현양(당시 22세·사망)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검거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히 (돈) 없는 사람은 항상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돈 없는 놈 무시한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제외하고 살인을 위한 집단을 만들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긴 조직은 그 사례가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지존파 조직원은 불특정 부유층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TV드라마 덕분에 1994년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 해를 '공포의 해'로 부른다. 1994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하면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였다.

20년 전 9월 연쇄살인 소식으로 '발칵'
1994년 박한상·온보현 사건 등 잇달아

실제로 1994년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2명)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 무렵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8일)했고, 성수대교가 붕괴(10월21일)해 49명의 사상자(32명 사망)를 내는 등 대한민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0여명이 다치고 12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존파 사건은 김일성 사망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각 신문 머리꼭지를 장식했다. 시기적으로는 박한상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터진 대형 살인사건이었다. 패륜범 박한상씨는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는데 지존파가 증오한 대상과 정확히 들어맞아 화제가 됐다.

부자를 증오한다
범행을 계속한다


당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등을 참고한 지존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4월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사망)은 중학교 후배 강동은과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을 만나 "더러운 인간들을 청소하자"고 제의했다.

포커를 치고 있던 이들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을 가진 범죄조직을 결성했다. 후일 이들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고병천 수사관은 강동원 등이 김기환을 '지존'으로 부른 것에 착안해 지존파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 붕괴된 삼풍백화점 현장 <사진=뉴시스>

김기환은 "세상이 오염됐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지도의견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김기환은 두뇌가 나름 명석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났고, 바둑은 프로에 준하는 1급이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신연령(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이 낮았던 조직원들이 김기환의 꾐에 이용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같은 해 김기환은 강동은의 소개로 강문섭을 영입했고, 전남 영광에서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김현양을 조직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스무살 백병옥까지 모두 6명이 지존파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조직원 이모(23세)씨도 있었지만 그는 법원에서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사유가 참작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존파 일당은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5명을 살해·유기하는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충남 논산에서 최모(당시 23세·여)씨를 윤간 및 살해·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조직자금을 빼돌리려 한 같은 조직원 송봉은을 살해·암매장했다. 이 가운데 최씨는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예행연습의 희생양으로 이유 없이 살해돼 안타까움을 줬다.

비슷한 시기 지존파는 '돈 있고 백 있는 놈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강령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다.

지존파 일당은 대전·분당 등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각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부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은 돈은 수천여만원에 이르렀다. 범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마저 걸렀다고 하니 이들의 집요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살인공장서
차례로 죽였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는 '살인공장'이 들어섰다. 지존파 아지트였던 그곳에는 창살감옥과 사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시설(화덕)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도끼 등 다양한 살인도구가 구비됐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구정 한 유명백화점의 VIP명단을 입수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하루 600만∼700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1000여명이 적힌 우수고객명단에는 정·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사건으로 일부 부유층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 감독이 쓴 연출의도를 인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됐다.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의 범행은 처절함을 넘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 4월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진=일요시사 DB>

살인공장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목 김기환은 고향 선배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지존파 일당은 김기환의 옥중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속했다.

1994년 9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모 여인은 카페 밴드 마스터이자 애인인 이종원(당시 36세·사망)의 그랜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가 지존파에게 납치됐다. 지존파 일당은 이 여인을 윤간한 뒤 이종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종원의 시신을 차량 운전석에 앉히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최초 음주운전에 의한 단순사고로 오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 여인의 처리를 놓고 김현양과 다른 조직원들은 심하게 다퉜다. 당시 김현양은 이 여인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 됐다.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여인은 살아남아 지존파와 함께 생활했다.

1994년 9월13일 경기도 성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납치됐다. 소윤오 부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지존파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소윤오는 개인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지키려던 성실한 사업가였다. 고급차도 회사영업용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존파로부터 1억원 가까이 갈취당한 뒤 무참히 살해됐다. 살해 과정에는 미리 준비한 공기총과 도끼가 동원됐다. 소윤오 부부의 사체는 소각됐다.

백화점 고객명단 유출
정재계 유명인사 벌벌


1994년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폭발해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면서 이 여인과 동행했다. 당시 "이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여인은 병원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 김현양 등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탔다. 이 여인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9월17일 이모 여인의 자리는 강동은의 애인이었던 여성조직원 이씨가 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틀 뒤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을 조직에 끌어들인 '5명의 악당'과 함께였다. 당시 감옥에 있던 두목 김기환은 "녀석들, 여자는 어머니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지존파의 범행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밖에 없었다. TV화면에선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이들의 악다구니만 생중계됐다. 주류 언론은 지존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그렸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1994년 10월3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당시 이광렬 부장판사)는 김기환, 김현양 등 지존파 일당 6명에게 살인·사체유기·범죄단체조직 및 가입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25일 만에 1심 재판이 끝난 것이다.

다음해인 1995년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3%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돈'을 첫손에 꼽았다. '권력'은 39.1%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존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8%가 '사회구조의 잘못'을 짚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8.3%, 가정환경은 27.9%였다.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한상씨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관에게 "오늘(조간신문)은 내가 톱이냐, 지존파가 톱이냐"고 물었던 온보현은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과 함께 사형된 죄수 중에는 가정집에 침입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부녀자를 다섯 차례 강간한 배모씨, 김모씨 등이 눈에 띄었다.

지존파사건 직후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사상 유례가 없는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예는 없었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경우엔 징역 7년6월이 선고됐다.

이례적 사형집행
부자는 솜방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은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올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근로 및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1.3%가 '부자는 극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답했다. 또 올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존경할 만한 부자가 많지 않다’고 답했다.

지존파는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부정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지존파의 강령이 오늘날에도 저릿저릿한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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